성과별 지불제는 언제나 의사의 중심 관심사여야 할 환자 복지를 직접적으로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할 수 있다. 환자가 의사에게 독감 예방 접종을 받아야하는지 여부를 묻는다면 그것은 의사의 전문적인 견해와 지식에 근거한 객관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환자들이 독감 예방주사를 맞을 때마다 내가 얼마간의 돈을 받고 있다고 말하면, 설사 그 금액이 적다하더라도, 환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환자-의사 관계의 기본이 되어야 하는 바로 그 신뢰가 약해질 것이다. _39쪽 “2장 고용되는 의사들”
의료-산업 복합체의 금융화는 연결되는 몇몇 경제 전략에 의존한다. 밸리언트 사례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한 가지 전략은, 직원을 해고하여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다. 수술을 아웃소싱하고, 직원을 통제하고 속도를 다그치며, 노조원을 비노조원으로 대체하려는 다양한 시도에서 병원 운영에 적용되는 이러한 접근법을 볼 수 있다.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의료기관에서 청소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흔히 서류미비 노동자이며, 전문직 직원 중에도 특히 간호사나 의사의 경우, 출신국의 재화가 투자된 인력 중 많은 수가 미국으로 유출되고 있다. _93쪽 “5장 의료-산업 복합체의 변환”
유럽 3개국에서 일어난 공공 보건의료체계에 대한 공격은 보수 정당들이 국제금융기관들과 협력하여 추진한 것으로 경기 침체와 그에 따른 긴축정책을 지지하는 정권이 동반되었다. 세 국가 모두에서 보건의료 신자유주의는, 보건의료 지출 긴축, 보편주의로부터의 역행, 사용 시 요구되는 부담금 인상, 보건의료전달 체계의 민영화 네 개의 축을 따라 전개되었다. 우리는 이 네 개의 축을 ‘반대의’ 관점에서도 볼 수 있다. 즉, 보건의료체계에 적절한 공적 자금이 투입되고(축 ①), 보장 대상이 되는 인구군, 서비스 접근성 및 제공되는 혜택이 보편적이며(축 ②), 서비스 이용 시 재정 장벽이 없고(축 ③),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의 영향력이 제거되는(축 ④) 것이 한 나라의 건강이라는 사회적 권리의 척도가 될 수 있다. 한 쪽에서는 공공재로서 보건의료를 수행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상품으로서 판매하는 이원화된 체계보다는 다각적으로 보건의료체계를 이해하는 것이 더 유용할 수도 있다. 건강에 대한 사회적 권리는, 돌봄을 사회재로 다루는 보편적인 보건의료체계를 필요로 하며, 또한 네 개의 축에서의 ‘탈상품화’도 필수적이다. _163쪽 “8장 긴축정책과 보건의료”
게이츠 재단이 취한 환원주의적인 접근법은, 2005년 5월 열린 제 58회 세계보건총회World Health Assembly(매년 WHO 가입국들이 모여 정책을 정하고 주요 현안을 결정하는 회의)에서 빌 게이츠가 연사로 나선 기조연설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빌 게이츠는 국제보건의 우선순위를 언급하며, 특허가 만료되어 가격이 낮아진 백신 덕에 천연두 퇴치가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어떤 사람들은 … 가난이 해소되어야만 건강도 개선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가난을 퇴치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입니다. 하지만 천연두를 퇴치하기 위해 가난을 해소해야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말라리아를 줄이기 위해서도 가난을 해소할 필요가 없는 거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백신을 생산하고 보급하는 것입니다.” 말라리아에 얽힌 복잡한 문제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한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빌 게이츠의 주장은 사회 정의에 바탕을 둔 방식들이 쉽게 간과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국제보건 계획의 ‘위대한 도전Grand Challenges’ 프로그램은 약 40개국의 과학자들이 진행하는 ‘대담하고’ ‘정통이 아닌unorthodox’ 연구 프로젝트에 기금을 지원하고 있는데, 전례 없는 부의 집중과 축적 등 질병을 일으키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인 원인에 대한 고려는 거의 없다. _197쪽 “10장 미국 자선자본주의와 세계 건강 의제”
우리는 극단적이고 비정상적인 행동이 정상적인 문제보다 더 파괴적이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이는 생물의학 모델이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병리적 정상은 이 관계를 역전시킨다. 병리적 정상 범주의 폭력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은 비정상적인 폭력의 영향보다 훨씬 크다. 병리적으로 정상적인 폭력에는 전쟁도 포함된다.
전쟁을 승인하고 계획하는 국방부 장관이나 비서관들은 정신질환을 가진 이들이 아니다. 전쟁터에서 싸우고 적을 죽이는 군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들이 초래하는 피해는 ‘광포한’ 총잡이가 저지르는 비정상적인 폭력이 일으키는 피해를 능가한다. 병리적 정상 범주의 경제 관행, 매일 같이 일어나는 조작, 부정행위, 투기, 탈기술화, 아웃소싱, 세제 개편, 착취는 범법자인 도둑보다 더 파괴적이다. _263쪽 “13장 병리적 정상 극복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