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탄생, 부모형제, 삶과 죽음, 그리고 기독교의 탄생과 〈성경〉의 역사에 관한 자세하고 정확하며 숨김없는 이야기
-신학박사 이종범과 함께 가는 예수 바로 알기의 길
이 책의 제목을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인류가 예수를 안 지 2000년이 다 되었는데 아직도 잘 모르는 것이 있었나? 그런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면 몰랐던 것이 있었다는 자각이 든다. 예수는 전 세계 22억 인구가 ‘주님’으로 모시는 존재다. 그들이 알고 있는 예수는 모두 하나같이 〈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기독교 교회가 들려주는 예수 이야기를 〈성경〉에서 찾아보려면 누구나 어려움에 당면하게 된다. 교회에서 가르쳐준 예수는 신과 같은 존재인데 〈성경〉에서 만나는 예수는 꼭 그렇지는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묘사하는 예수는 매우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성경〉에서 예수는 나자렛이라는 볼품없는 작은 마을에서 잡부로 살았던 요셉과 그의 아내 마리아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서른 살 무렵에 출가할 때까지의 자세한 행적은 안 나온다. 그저 12살 때 유대 율법에 따라 성인식을 치르고자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에피소드만 잠깐 나온다. 그러다가 서른이 다 되어 이른바 ‘출가’한 이후 예수는 신의 뜻과 자신의 사명을 완전히 깨닫고 나서 사람들에게 하늘나라, 곧 신이 세상을 통치하는 때가 임박했으니 회개하고 신을 믿어야 한다고 선포하였다. 그의 말을 믿고 따르는 자들의 숫자도 상당했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선포와 행적이 결국 예수의 죽음을 재촉하는 일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 당시 중범죄자들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 그런데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 제자들과 다시 만난 다음 재림을 약속하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런데 이 책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가 죽고 난 다음 탄생한 교회는 원래 에클레시아, 곧 믿는 이들이 친교를 이루는 공동체였으나 예루살렘의 멸망 이후 제도화된 교회가 되면서 예수에 관한 ‘전설’을 만들어 냈다. 〈신약성경〉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에 이미 예수의 직제자들이 세운 것과는 전혀 다른 제도적 교회가 세워진 셈이다.
그리고 그 교회는 예루살렘이 초토화된 이후 소아시아 지방에 흩어져 각자 나름대로 예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그 과정에서 예수에 대한 기억과 묘사가 서로 차이가 나게 되었다. 게다가 교회가 정치적, 경제적 갈등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예수에 대한 해석도 달라졌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여러 책을 모아 〈성경〉을 만들어 내었다. 이 책이 비록 예수와 그 제자들이 이야기를 담았다고 하지만, 기억이 희미해진 다음에 예수는 물론 그의 제자를 직접 만났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이들이 적은 글을 모아서 예수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더구나 예수에 관한 여러 글 가운데 기독교 교회 권위자들의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서 정경, 곧 참다운 〈성경〉으로 삼았다.
그러다 보니 예수에 대한 이해가 결정적으로 왜곡된 채 긴 역사가 진행되었다.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예수를 스승이 아니라 숭배의 대상으로 몰아 버린 점이다. 예수는 자신을 숭배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제자들과 추종자들에게 끊임없이 요구한 것은 개인과 집단의 회개와 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인간 사이의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런 길을 가는데 바로 다름 아닌 예수의 언행을 모범으로 삼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가 초토화되고 나서는 바울이 소아시아에서 세운 이방 교회만 남으면서 예수에 대한 이해가 왜곡되어 ‘라뿌니’, 곧 스승이 아니라 신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원래 친교 모임의 의미를 지닌 에클레시아로서의 교회를 신을 숭배하는 제도로서의 교회로 변형시켜 그 교회의 실질적 ‘주인’인 성직자가 예수와 신자들 사이에 일종의 중계자로 자처하며 이른바 ‘예수 팔이’로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독점해 오게 되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기형적인 기독교 역사를 바로 보기 위한 작업을 〈성경〉을 바탕으로 잘 전개하고 있다.
이런 〈성경〉에 담긴 예수에 관한 이야기가 과연 얼마나 정확할 수 있을 것인가? 바로 그런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책은 구하고 있다. 물론 그런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이 책에서도 정답이 아니라 적어도 그동안 기독교 교회가 현실적인 이익을 위하여 왜곡시켜온 예수의 본모습을 최대한 밝혀내 보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더 나아가 교회가 예수를 신격화하는 과정에서 제도 교회가 감추고 싶었던, 지상에서 예수가 살아간 모습, 그의 형제자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죽음과 부활과 관련된 뭔가 ‘어설픈’ 이야기가 매우 적나라하게 분석되어 있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이들 가운데, 특히 자신이 신앙심이 깊다고 여겨온 신자는 매우 불편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끝까지 예수에 대한 신뢰를 놓지 않으려 애쓰는 저자의 뜻을 행간에서 읽어내는 것이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결국 기독교는 예수에서 시작해서 예수에서 끝나야만 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2000년 가까운 세월을 통해 ‘가려져 온’ 예수의 진면목을 들여다보는 데 이 책이 좋은 지침서가 되리라고 확신한다. 그러니 중간 중간에 조금은 불편한 마음이 들더라고 꼭 완독하고 나서 판단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예수가 신적 본질을 지녔을 뿐 아니라 ‘라뿌니’, 곧 우리의 아픔에 함께하며 우리와 더불어 먹고, 마시고, 울고, 웃고,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나가야 할 새생명의 길을 알려주는 스승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를 이 책의 저자도 바라고 있다. 부디 그런 저자의 뜻이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