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RPI 구술집 1964-1967』을 펴내며
‘주택·도시 및 지역계획 연구실’(Housing, Urban and Regional Planning Institute, 이하 HURPI)은 1965년 5월 아시아재단(The Asia Foundation)과 건설부의 협정에 의해 설립되어 건설부 산하에 소속된 도시설계조직이었다. 한국 도시계획의 형성기, 도시설계라는 말도 통용되지 않았던 시기에 설립된 도시건축 분야의 선구적인 연구기관이었다.
HURPI는 냉전기 미국의 전략적 원조 정책의 한 발현이면서 당대 한국 도시계획의 흐름과는 결을 달리했다. 지역성과 토착 문화를 중요시하고 인본주의적인 설계 방법론을 개발한 HURPI의 접근법은 경제 발전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던 한국은 물론 당시 서구에서도 낯선 것이었다. 불과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활동했지만, 이런 사실만으로도 HURPI는 역사적인 주목을 받아야 할 조직이다.
HURPI는 지역 주민의 삶을 존중하고 소프트한 계획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도시 인프라와 주택 공급에 힘을 쏟는 물리적인 개발 방식과 달랐다. HURPI는 한국적인 생활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도시 조사를 진행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주거 및 도시계획을 제안하고자 했다. 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동네에 대한 치밀한 사회적·공간적 조사를 펼쳤고 디자인 영감을 얻고자 지역에 기반한 접근을 시도했다. 또한 여러 분야의 전문가, 관료, 학자 들을 모아 장차 도시, 건축, 조경, 계획 등 각 분야의 전문가로 키우기 위한 다양한 실무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 구술집에는 1964년부터 1967년 사이에 활동했던 아시아재단 위촉 자문 건축가 오스왈드 네글러, 도시계획 분야 행정가 황용주, HURPI의 실질적인 디자이너로 활동했던 우규승 외에 국내외에서 건축, 조경, 도시정책, 교육 분야에서 큰 기여를 한 홍성철, 김진균, 고주석이 참여했다.
HURPI가 생산했던 각종 자료 수록
HURPI 구술채록 과정에서 관련 자료의 기증과 정리 작업이 함께 진행되었다. 우규승은 가장 많은 자료를 기증했다. 네글러는 “한국과 관련된 자료는 다시 본국으로 반환되어야 한다”2는 생각으로 HURPI와 관련된 상당의 자료를 우규승에게 전달했다. 채록팀은 2019년 10월, 미국 보스턴 근교 워터타운에 있는 우규승의 사무실에서 HURPI 시기에 생산된 다량의 원자료들을 확인했다. 청사진, 문서, 사진, 슬라이드 필름 등으로 구성된 자료는, UDT 시기에 작도하였던 다양한 조사서를 비롯하여, 최소주택의 단위평면도, 금화지구 주거 및 커뮤니티 시설 계획, 남서울개발계획, 남산공원계획, 수원재정비계획, 도시설계 교육작품전, 인물 사진 등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우규승은 이 원자료를 모두 디지털 파일로 전환하고, 목천건축아카이브가 출판과 웹서비스를 통해 자료를 공개할 수 있도록 사용을 허가했다.
문신규는 구술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1965년부터 1967년까지 HURPI의 활동 연혁이 정리된 브로슈어를 기증했다. 이 자료는 구술채록의 사전 준비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강홍빈도 구술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한국 도시설계 분야의 형성 주역으로서 HURPI에 대한 예리한 평가를 전해주었다. 고주석은 구술채록 편집 과정에서 남서울개발계획도, 남산공원계획의 모형사진, 대구 달성공원과 중앙공원의 모형사진을 디지털 파일로 기증했다. 김진균은 HURPI의 훈련 과제로 진행되었던 만리동 재개발계획의 모형사진과 기타 인물사진을 기증했다.
또한 채록연구자 강난형은 2018년 3월 26일부터 5월 2일까지 미국 스탠퍼드대학 후버연구소의 문서고(Hoover Institute Library & Archives)를 방문하여 아시아재단의 기록물을 열람했다. ‘사회와 경제’(Social & Economic)에 관한 문서철에는 HURPI의 ‘도시계획’(Urban Planning)에 관한 기록물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보고서신, 참조문서, 다른 원조기구의 관련 문서, 내부보고서, 관련 기사의 스크립트, 승인문서, 한국 정부의 기관문서, 연구보고서 등의 기록물이 보존되어 있다.3 채록팀은 강난형이 열람한 아시아재단 자료의 일부를 HURPI 구술집에 수록하였으며, 상세 정보는 목천건축아카이브의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목천건축아카이브는 HURPI 구술집의 발간에 맞추어 구술자가 기증한 자료와 아시아재단의 문서를 아카이빙했다. HURPI 아카이브를 UDT-URPI-HURPI 시리즈(기록물 철)로 분류·정리하여, 목천건축아카이브 웹사이트에 등록했다. 연구자들은 웹사이트를 통해 각 시리즈별로 기록물 철의 내용과 범위를 열람할 수 있고, 각 시리즈의 폴더를 열면 개별 아이템(기록물 건)의 현황과 세부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