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르트헤이트 이후 ‘역사’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독창적 서사 문법
“빼앗고 빼앗기고 억압과 수탈이 반복되는 야만의 역사에 대한 우화.”
데이먼 갤것은 남아공 출신 선배 작가인 네이딘 고디머와 J. M. 쿳시처럼 부커상에 이어 노벨문학상까지 석권할 가능성이 높은 포스트-아파르트헤이트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부커상 시상식에서 “아직 아프리카에서 전해지지 않은 이야기들, 아직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한 작가들”을 언급하며 “아직 들려줄 것이 많으니 계속 귀 기울여달라”고 밝힌 바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선배 작가들과 달리 젊은 시절에 아파르트헤이트 이후의 세대 단절과 혼란상을 경험한 ‘제3세대’ 남아공 작가라고 할 수 있다.
폐지된 지 30년이나 되어가는 아파르트헤이트와 남아공의 현실에 관해 얘기할 것이 아직도 더 남아 있는가? 이는 물론 아파르트헤이트가 남긴 암울한 유산이 여전히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흑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로도 백인의 경제 독점은 심각해서 흑인 중산층의 비율이 남아공 전체 인구의 10%에 불과하고, 극심한 부정부패와 빈부격차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최근에는 아파르트헤이트의 또 다른 버전인 제노포비아, 즉 국내 흑인 대 돈 벌러 온 외국 흑인 간의 갈등마저 불거져서 사회 혼란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적하는 갤것의 서사 전략은 역사적 현실의 직접 인용을 통한 폭로나 고발, 풍자와는 거리가 멀다. 역사적 배경이 괄호 안에 들어간, 즉 (역사 속에서의) 개인과 도덕의 문제를 돋을새김함으로써 역사의 무게를 실으면서도 실존적이고 보편적인 서사의 의미망을 짜나간다. 아파르트헤이트 전후의 남아공 역사를 자세히 알면 더욱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하겠지만, 굳이 많은 것을 알지 않아도 충분히 이야기의 맥락을 짚어낼 수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다. 초반에는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겠지만, 하나의 ‘약속’을 둘러싸고 약속한 자, 약속의 이행을 대수롭지 않게 무시하는 자, 순전한 마음으로 약속을 지키려 하는 자 간에 벌어지는 심리적 갈등 관계에 집중해 읽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에 푹 빠져들게 될 것이다.
또한 특기할 만한 것은 주제를 드러내는 고차적 서술 기법이다. 『약속』은 시점이 일관되게 진행되지 않고 여러 등장인물의 시점이 동시다발적으로 중층적으로 제시되는 다성적 소설이다. 작가는 ‘의식의 흐름’뿐 아니라 자유 간접 화법과 영화적 카메라 아이 기법을 능란하게 사용하여 등장인물들의 다양하고 심층적인 의식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하는데, 이는 현실에 붙박여 있지 않고 부유하는 자아의 불안정한 상태를 보여 주기 위함이다. 이는 무거운 주제를 무겁지 않게,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소설에 생기를 불어넣을 뿐 아니라 문체적으로도 독특한 미학적 깊이를 부여한다. 부커상 심사위원들을 매료시킨 결정적인 이유다.
작가는 말한다. “소설의 힘은 역사적인 순간에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낱낱이 기록하는 데 있다. 그 감정 속에서 인간성을 발견해내는 것이 소설가의 책임이다.”
순전한 마음의 소유자에 의해서만 이뤄질 수 있었던 약속의 힘!
“사랑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오로지 친절만 남았지만
어쩌면 이것이 더 강할지도 모른다.”
『약속』은 네 번의 장례식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1986년 암에 걸려 죽은 엄마(레이철)의 장례식, 1995년 괴이한 도전의 결과로 독사에 물려 죽은 아빠(마니)의 장례식, 1999년 흑인 강도에게 총을 맞아 죽은 언니(아스트리드)의 장례식, 2017년 무료한 삶에 질려 자살한 오빠(안톤)의 장례식. 이 네 번의 장례식에서 일관되게 등장하는 핵심 주제가 바로 작지만 소중한 한 번의 ‘약속’이다.
30여 년 전 아모르의 엄마가 자신을 돌봐준 흑인 하녀 살로메에게 한 약속은 방 세 칸짜리인 허름한 양철 판잣집을 주겠다는 것일 뿐이었다. 사실 이 집이 자리한 땅은 본디 흑인들의 것이었고 그들의 땅을 백인 농장주 조상이 빼앗은 것이었다. 그런데도 스와트 가족은 30여 년의 시간 동안 네 번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와중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살로메는 그들의 눈에 띄지 않는 유령과도 같은 존재라서 그따위 약속은 무시해도 좋은, 무시하면 그만인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유령처럼 항상 주변에 있으므로, 당신은 그들을 보지 못한다. (413쪽)
“만약 예전에 살로메의 고향이 언급된 적이 없었다면 그것은 당신이 한 번도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신은 궁금해하지 않았으니까.” (473쪽)
실제로 소설 속에서 농장에서 일하는 흑인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스와트 집안을 위해 평생을 일해왔으며 레이철과 아모르에게는 누구보다도 고맙고 살가운 존재인 살로메조차 제 모습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유령처럼 취급받는 그녀/그들의 처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작가의 의도적 서사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이 약속은 가족들의 이기적 행태에 환멸을 느끼고 집을 떠나 지금은 중증 환자들을 돌보며 간호사로 사는 아모르가 집으로 돌아와서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게다가 아모르는 그동안 자신에게 배당되었던 가족 사업의 수익금마저 살로메 가족에게 전부 넘겨준다. 그런데 마치 성녀처럼 느껴질 법도 한 아모르의 선행 동기는 전혀 거창하지가 않다. “그냥 그러고 싶어서요.” 이는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아모르가 시간이 흘렀어도 지키려고 노력한 ‘약속’은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이행의 길이 보이지 않는 공동체적 약속에 대한 소설적인 표현이다. 살로메의 아들은 아모르에게 이렇게 반문한다.
“우리가 너한테 감사해야 하는 거야? (…) 부서진 지붕에 망할 놈의 방이 세 개인 집. 우리가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고?” (473~474쪽)
“아직도 네가 모르고 있는 게 있는데, 네 것을 주는 게 아니야. 이 집은 이미 우리의 것이니까. 이 집뿐만 아니라 네가 사는 그 집도 그렇고, 그 집이 서 있는 땅도 그래. 우리 거야! 네가 정리해서 호의로 나눠 줄 수 있는 네 소유물이 아니라고. 백인 아가씨, 네가 가진 모든 것은 이미 내 것이야. 내가 요청할 필요도 없이.” (475쪽)
원래 그들의 땅이었던 것을 돌려주는,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도 이렇게나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다. 게다가 어머니의 뜻에 따라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아모르 개인의 순전한 마음과 결단에 의해서 말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현실 세계에서 그 가능성은 요원하기만 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한편에서는 극장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데, 대본의 대사는 변하지 않고. 메이크업과 의상과 화려한 몸짓은 말할 것도 없고…… 내일 또 내일 또 모레도…….”(411쪽)
약속이 지켜지는 소설의 결말을 단지 훈훈한 휴머니즘적 해피엔딩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아모르의 개인적 선행은 암울한 미래에 빛을 비춰주는 작지만 큰 발걸음임이 분명하다. 작으나마 우리 하나하나의 선한 마음과 실천이 쌓여 결국 세상에 균열을 만들고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다. 이 소설을 말할 때 언급되곤 하는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가 미국 남부 지주계급의 타락과 붕괴를 다룬 파멸의 비가라면, 『약속』은 이에 작은 희망의 불씨를 더한 미래에 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