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서구 지식의 수용과 변용’은 서구 지식이 어떠한 의도와 맥락에서 번역되고 이해되었는지를 살펴본다. 김태진의 글은 ‘society’가 일본사회에서 번역되는 과정에서 ‘사회(社會)’라는 용법으로 정착된 맥락에 착목했다. 이 글은 동아시아 지식인이 무엇을 ‘사회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묘사하고 있었는지에 주목함으로써, society의 번역이 전통적 용어의 용법을 변화시키는 형태로 새로운 용법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김도형의 글은 메이지 초기 서구사상의 도입에 큰 영향을 끼친 가토 히로유키(加藤弘之)의 진화론 수용 문제에 주목한다. 특히 가토의 진화론 수용을 그의 사상적 연속성이라는 점에 착목하여, 막말에서 메이지로 이어지는 시대 상황 속에서 가토의 사상적 과제가 어떻게 서구사상과 매개되는지를 분석하였다. 김현의 글은 기존 유길준 자유주의 사상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간과된 ‘윤리적’ 국면에 착목했다. 저자는 웨일랜드 및 버튼과 비교를 통해 후대 시각에서 보면 ‘비자유주의적’으로 보이는 유길준의 사유가 당대 윤리적 자유주의자들의 맥락에서는 ‘자유주의적인’ 것으로 수용 가능한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소진형의 글은 전병훈의 『정신철학통편』의 분석을 통해 서양식 교육을 받지 않은 조선 지식인의 서양 서적의 독해방식을 규명했다. 저자는 전병훈이 서양사상을 그 자체로 이해하기보다는 기존 번역서 중 전통사상 개념으로 번역된 부분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자의적으로 독해했음을 지적한다.
제2부 ‘일본의 정치와 종교, 문화유산’에서는 정치적 권위와 통치를 둘러싼 국가와 종교의 문제, 그리고 일본 근대화의 유산을 검토한다. 김태진의 글은 메이지 일본의 통치성 담론을 신체정치의 측면에서 살폈다. 곧 메이지기 여러 텍스트에서 보이는 바디폴리틱적 요소들이 서양적 근대 통치 개념과 전근대적 사유가 접합되면서 새로운 통치성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박은영의 글은 천황에 대한 극도의 신격화를 바탕으로 침략적 내셔널리즘을 드러냈던 15년 전쟁기 일본 기독교의 전쟁 협력 문제에 주목했다. 이 글은 일본 기독교가 천황에 대한 절대성을 강제하는 국가에 협력을 맹세하고, 국가의 전쟁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이유와 협력의 구체적 양상을 밝히는 한편, 전후 일본 기독교의 전쟁책임에 대한 문제를 환기하였다. 박삼헌의 글은 일본 근대화 산업 유산과 도시재생의 관계를 고찰했다. 일본의 ‘근대산업유산’으로서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도미오카 제사장이 비서구 국가 중에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한 국가라는 선전물이 투사된 최초의 근대화 유산으로 인식되는 과정을 밝혔다.
제3부에서는 ‘냉전과 탈냉전기 문화지형’을 살펴본다. 손민석의 글은 냉전의 국제질서라는 특정한 맥락 안에서 형성된 복음주의운동의 태동기를 추적했다. 먼저 대공황과 2차 대전 시기에 시류를 따라 변화하는 근본주의 운동과 근육질 기독교 문화를 살펴본다. 또한 전후 세계에서 미국 패권이 확산되는 경로를 따라 복음주의 종교문화가 확산되는 과정을 살피면서 한반도의 분쟁 상황이 패권국 미국의 종교담론 안에서 소비되는 차원을 검토했다. 정주아의 글은 냉전기 디아스포라 문학이 지닌 정치성을 김은국 소설을 통해 탐색했다. 저자는 한국전쟁 시기 월남한 이후 미국으로 망명한 김은국의 독특한 삶의 자리에 주목하고, 그가 미국에서 영어로 작품 활동하는 행위의 정치성을 다층적으로 분석하여 디아스포라 문학이 실향민의 문학뿐 아니라 정착민의 문학으로도 읽힐 수 있는 복합적인 양상을 드러냈다. 이헌미의 글은 냉전사와 남북한사 모두에서 누락된 디아스포라의 경험과 기억에 주목했다. 저자는 기존의 도식화된 방식의 재현을 넘어 무국적자들의 역사적 재현의 다양한 감각을 되살려낸다. 이를 통해 탈냉전기 중앙아시아는 다양한 정체성이 교차하면서 주체의 위치성이 지속적으로 재형성되는 공간임을 보여준다.
제4부에서는 ‘정치담론의 역사성과 동시대성’의 문제를 다룬다. 먼저 김현과 송경호의 글은 안보 개념의 역사성을 논했다. 국제정치에서 안보문제가 핵심개념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정치이론과 정책 분과에서 축적된 안보연구에 비해 정작 시큐리티(security) 개념이 한국 사회에 수용된 과정에 대한 개념사 연구는 상대적으로 불충분하다. 이 글은 19세기 동아시아에서 시큐리티 개념의 초기 수용 과정에서부터 해방 이후 ‘안보’라는 용법이 일반적인 번역어로 자리 매김되는 과정을 추적했다. 이어지는 두 편의 글은 동시대 민주주의 담론에서 논쟁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포퓰리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홍철기의 글은 오늘날 다양하게 제기되는 정치논쟁 가운데 포퓰리즘 논쟁의 독특성을 주목하고, 현대 포퓰리즘 개념의 원형이 발견되는 미국의 냉전자유주의 시대의 논쟁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저자는 호프스태터, 실스 등의 저작에서 관찰되는 포퓰리즘 개념을 검토하고 그들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탈 이데올로기적 지식인 정치의 구체적인 내용을 비판적으로 톺아본다. 끝으로 이관후의 글은 현대 포퓰리즘이 정치의 핵심적인 물음인 누가 통치할 것인지를 질문하고 있음을 주지시킨다. 이 글은 르네상스 이전의 상황에서부터 근현대사상가들에 이르기까지 서구지성사 풍경을 폭넓게 조망하면서 통치 주체의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저자는 포퓰리즘 문제는 민주주의가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홉스의 문제의식을 심화시켜 우리가 결정한 것에 우리가 따른다는 집단적 결정을 보다 잘 내리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