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길러지지 않고 사는
야생 인간이다
어린이는 시끄럽다. 할 말도 많고 깔깔 웃을 일도 많고 엉엉 울 일도 많다. 어린이는 주로 뛴다. 발바닥을 땅에 붙이고 있을 때보다 떼고 있을 때가 더 많다. 어린이는 궁금한 게 많다. 세상만사 별별 일에 호기심을 갖는다. 그래서 어린이는 어른 말을 잘 안 듣는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려고 하고, 알고 싶은 걸 알려고 한다. 이 모든 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한때 어린이였던 어른들은 자주 그걸 잊는다.
아바이 마을 골목에는 목소리 큰 아이들이 씩씩하게 뛰어논다. 온실에서 곱게 크는 화초가 아니라, 야생에서 길러지지 않고 자라는 아이들이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매일 만나고, 매일 기록해 온 작가 탁동철은 당당하고 씩씩한 아바이 마을 아이들을 이야기로 불러 왔다.
작은 것이라도 놓치지 않고 챙길 줄 아는 은서, 거칠지만 마음 따뜻한 해주, 비 알레르기가 있는 곱게 자란 주몽이, 입은 좀 가볍지만 머릿속에 든 게 많은 이랑이, 이름처럼 다정한 다정이, 단순하지만 밝고 쾌활한 한결이와 흥원이, 그리고 아바이 마을이 낯선 전학생 새봄이까지. 누구보다 당차고 씩씩한 아이들이 여기 있다.
주몽이가 토란잎을 머리에 이고 빗속으로 들어갔다. 지난번 비 올 때는 새 옷이라서
안 된다더니 이번에는 비 알레르기란다. 비 알레르기는 말이 안 된다. 그런 게 있으면 나무나 새처럼 맨몸으로 비를 맞는 것들은 어떻게 살겠나. 노루나 수달이나 다람쥐처럼 길러지지 않고 자연에서 사는 야생동물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나.
여기 남은 우리는 길러지지 않고 사는 야생 인간이다. - 본문 10쪽
우리 모두의 고양이
비 오는 날에 깡통 차며 놀던 은서는 기울어진 창고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를 놓치지 않았고, 단짝 해주와 창고에 들어가 새끼 고양이를 구한다. 할머니랑 둘이 사는 은서네도, 아빠랑 둘이 사는 해주네도 고양이를 키울 형편이 안 된다. 은서는 겨우 살려 낸 새끼 고양이를 학교에 데려가고, 아이들은 교실에서 고양이를 키우기 위해 선생님을 애써 설득한다. 혼자 힘으로는 고양이를 키우기 어려웠던 은서는 친구들과 함께 답을 찾아간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면 뭐가 되든 된다는 걸 배운다.
“선생님, 작은 생명 하나 못 키우는 교실에서 우리들의 생명은 제대로 자랄까요?”
고개를 젓는다. 우리는 선생님에게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줄기차게 쏟아 냈다.
“내가 편하려고 남을 못 본 척하면 결국 나도 버림받는 거예요.”
“동물한테 좋은 사람이 사람한테도 좋은 사람 아닌가요?”
“공부 두 배로 잘할게요.”
“세 배로요.”
선생님은 흔들리지 않겠다는 듯 절레절레 젓는다. 젓고 젓고 또 젓는다. - 본문 62쪽
가만히 있지 않고 돌아다니는 고양이 때문에 학교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고, 고양이는 결국 쫓겨나고 만다. 아이들은 다른 방법을 찾는다. 학교 한 구석에 고양이 집을 새로 지어주고, ‘달님이’라는 예쁜 이름도 지어 주며 함께 돌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걱정이 있다. 달님이 밥그릇은 무엇으로 채우나. 비싼 고양이 사료는 무슨 돈으로 사지?
누구나 자기 길이 있는 거야
아이들은 모두의 고양이를 위해 함께 돈을 벌기로 한다. 자기들 손으로 돈을 벌어 정정당당하게 키우기로 한다. 아이들은 아바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돈이 될 만한 것을 찾는다. 폐지를 모아다가 고물상에 가져가 팔고, 고기 그물 떼러 항구에도 가 보고, 토란도 캐고, 민들레, 냉이도 캐고, 바다에 들어가 조개도 잡는다. 그렇게 다니면서 전쟁 때 아바이 마을에 정착해 오래 살아온 할아버지 할머니 들의 가슴 아픈 사연도 듣는다.
고양이 사룟값을 모으는 데 드디어 성공한 아이들이 사료를 사서 신나게 학교로 돌아갔는데, 달님이가 또 사라졌다. 아바이 마을 아이들처럼, 달님이 역시 길러지지 않고 살아가는 존재였는지 모른다. 아이들은 달님이를 곁에 붙잡아 두는 대신, 어떻게 먹이를 구해 왔는데 먹지 않고 가느냐고 다그치는 대신, 자유롭게 가는 달님이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독립할 때가 됐나 봐.”
“맞아, 누구나 자기 길이 있는 거야.”
어디를 가더라도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저들끼리 편 가르지 않고 담쌓지 않고 오순도순 살아갈 것이다. - 본문 162쪽
이 아이들이 자기들보다 더 작고 어린 고양이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어른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작고 어린 존재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닌 아이들, 소리치고 주장하는 아이들, 자기 길을 찾아가는 아이들을 따뜻한 눈으로,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면 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