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케미스트리는 다음 세 가지 가치로 나눌 수 있다. 서로 존중하고, 믿으며, 돌보는 것이다.”
_토니 라 루사(명예의 전당 헌액 감독)
팀 케미스트리는 실제로 존재하는가?
2000년대 초 《머니볼》로 유명해진 빌리 빈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세이버메트릭스로 대변되는 데이터 야구가 메이저리그를 휩쓸기 시작됐다. 이후 ‘팀 케미스트리’나 ‘기세’, ‘집중력’ 같은 정량화할 수 없는 가치들이 점점 힘을 잃는 상황을 맞이했다. 과연 눈에 보이지 않고, 숫자로 나타낼 수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이에 대해 저자는 팀 케미스트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한다.
첫째, 인간은 개방형 존재이자 독립적인 존재이기에 외부의 영향을 통해 완성된다. 또한 호흡과 호르몬 생성, 활력, 감정, 생산력 등 모든 면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에 팀의 분위기와 케미스트리가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둘째, 우리는 각각의 자리에서 공동체로서의 팀 케미스트리를 경험해왔기 때문에 그 존재를 알 수 있다. 식구들과 함께 있을 때나 친구들 사이에서, 직장이나 종교 활동, 팀 스포츠에서 많은 이들이 팀 케미스트리를 경험해왔다.
셋째, 선수와 지도자의 증언을 통해 팀 케미스트리의 존재를 알 수 있다. 그들은 최전선에서 팀 케미스트리를 목격하고 체험한 사람들이다. 물론 팀 케미스트리가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상당수 존재하지만 특정 분야의 수많은 전문가들이 팀 케미스트리는 있으며, 이를 경험했다고 한다면 일단 믿어봐야 하지 않을까? 19세기 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는 “과학은 잘해야 상식일 뿐”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저자는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팀 케미스트리를 정량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신경과학·심리학·진화생물학·조직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 그들의 연구를 추적했다. 또한 실제 야구나 농구팀 감독, 선수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팀 케미스트리의 영향력에 대해 조사했다.
팀 케미스트리의 정의와 그 기능은 무엇인가?
선수의 가치나 구단의 성패를 분석할 때 실물 지표에 의존하는 일은 충분히 납득이 된다. 인간의 마음은 상당히 편파적이어서 신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이버메트릭스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팀 케미스트리가 측정할 수도, 정의를 내릴 수도 없으므로 팀 케미스트리로 승패의 결과를 논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팀 케미스트리가 그렇게 강력하다면, 팀 케미가 심각하게 안 좋았던 팀이 우승을 하거나(1970년대의 오클랜드 애슬래틱스와 뉴욕 양키스), 반대로 팀 케미는 좋은데 성적이 나빴던 팀(2007년의 워싱턴 내셔널스)들은 그 원인이 무엇일까? 저자는 이에 대한 대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팀 케미스트리의 기능과 정의가 명확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신뢰심과 이타심을 강화하는 것이 팀 케미스트리의 기능’이라고 말하는데 저자는 신뢰심과 이타심은 팀 케미스트리의 특성이지 기능이 아니라고 말한다. 마치 ‘날카로움이 칼의 특성이지 기능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팀 케미스트리의 유일한 기능은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팀 케미스트리의 정의는 무엇일까? 저자는 팀 케미스트리의 기능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정의 내렸다. “팀 케미스트리란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생리학적·사회학적·정서적 효력 사이의 상호 작용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팀 케미스트리가 ‘높은 수준’의 경기력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상승된’ 경기력을 만든다는 점이다. 높은 수준의 경기력은 재능이 따라줘야 한다. 하지만 팀 케미스트리는 재능을 창출할 수 없다. 다만 팀이 이미 보유한 재능에 불을 붙여서 선수들이 최선을 다할 때 전체적인 경기력을 상승시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팀 케미가 좋지 않아도 어떤 팀은 우승할 수 있고, 또 팀 케미가 좋아도 어떤 팀은 우승하지 못하는 것이다. 저자는 팀 케미스트리는 만능이 아니며, 단지 재능을 극대화해 이기는 야구를 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라고 말한다.
누가 팀을 화합하게 만드는가(팀 케미스트리의 슈퍼 매개자)
어떤 팀이든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팀원들의 사기를 상승시키는 인물이 있다. 2012년 오클랜드 애슬래틱스를 진두지휘했던 조니 곰스가 그런 사람이다. 곰스는 메이저리그 11년 동안 여러 팀들을 떠돈 저니맨(여러 팀에서 뛰어본 선수, 또는 성적이 준수하나 더 우수한 수준으로 치고 올라가지 못하는 선수)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느 곳을 가든지 그곳을 자신의 집처럼 생각했으며, 소속팀의 팀원들을 가족처럼 대했다. 시합에서는 가장 크게 동료를 응원했으며, 실수한 이들에게는 격려하고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또한 슬럼프에 빠진 동료에게는 조용히 조언해주었다.
곰스는 수비도 나쁘지 않고, 장타력도 조금 있으며, 발도 느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가장 큰 재능은 사람들에게 순수하고, 철저하며, 적극적으로 마음을 쓰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가 소속된 팀은 항상 이기는 야구를 했다. 10년 동안 거의 꼴찌만 하다 2008년에 구단 사상 처음으로 월드 시리즈에 진출한 탬파베이 레이스가 그랬고, 전문가들이 시즌 100패를 예상했던 2012년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그랬으며, 월드 시리즈를 우승한 2013년의 보스턴 레드삭스와 2015년의 캔자스시티 로열스가 그랬다. 당시 예상치 못한 성과를 거둔 팀들에는 조니 곰스가 있었다. 곰스의 통산 타율은 0.242였지만 그와 함께 뛰었던 동료들은 그가 있어서 이기는 야구가 가능했다고 입을 모았다.
조니 곰스와 같은 사람이 팀 케미스트리를 형성하는 슈퍼 매자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슈퍼 매개자는 보통 현역 슈퍼스타가 아니다. 오히려 비주전 선수, 혹은 하락세에 접어든 노장 스타 선수처럼 전통적인 스포츠 영웅과는 거리가 먼 선수 중에서 나온다. 이들은 명예와 지위보다는 관계와 목적을 지향하며, 공감 능력이 있고, 사람들과 터놓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또한 스스로를 유머 있게 비하할 줄 알고, 자신 혹은 타인의 농담 대상이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선수들로는 앞서 말한 조니 곰스뿐 아니라 제이슨 지암비, 에릭 힌스키 등이 있으며, 전설적인 여자 농구 선수 수 버드 역시 이런 슈퍼 매개자에 속한다.
팀을 분열시키는 이들은 누구인가(팀 케미스트리의 슈퍼 교란자)
미국의 정보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 적군 점령지에서 활동하는 요원을 위한 대외비 훈련 교범을 발간했다. 그 안에는 적의 군수품 공장 노동자들 속에 숨어든 비밀 요원들이 적을 붕괴시키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 담겨 있는데, 그중 하나가 부정적인 태도였다. 비밀 요원들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불편한 상황’을 조성하도록 지시받았고, 최대한 다혈질적이고 언쟁을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면 다른 동료들이 그러한 태도를 따라하면서 적의 생산력이 저하되어서 전쟁 지원 속도를 늦추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정보국은 한 사람의 부정적인 태도가 공장 전체의 생산력에 영향을 줄 만큼 전염력이 강하다고 믿었다.
이를 ‘썩은 사과’ 이론이라고 한다. 사과는 익으면서(썩으면서) 에틸렌을 배출한다. 이는 주변에 있는 다른 사과가 익는 것을 촉진하는데, 이 하나의 사과 때문에 바구니 안의 모든 사과가 모두 빨리 익어서 쉽게 썩어버린다.
팀을 화합시키는 슈퍼 매개자가 있다면, 팀을 분열시키는 슈퍼 교란자도 존재한다. 좋은 영향을 미치는 한 선수보다 나쁜 영향을 미치는 한 선수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렇기에 조니 곰스와 같은 슈퍼 매개자들이 팀을 화합하려 해도, 한 사람의 슈퍼 교란자가 있으면 팀 케미스트리는 형성되지 않는다.
저자는 슈퍼 교란자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추종 세력을 두는 불평분자다. 이들은 어느 팀에서든 가장 위험한 인물이다. 야구에서는 이런 사람을 ‘클럽하우스 변호사’라고 표현한다. 클럽하우스 변호사는 대개 입지가 점점 줄어들어서 벤치 신세를 지는 노장 선수로, 자신의 불평불만에 남을 끌어들인다. 두 번째 슈퍼 교란자는 ‘꾀병자(일명 뺀질이)’다. 꾀병자는 상대팀 에이스가 등판할 때마다 휴식을 취하려고 한다. 자신의 스탯을 관리하기 위해서다. 이런 모습은 동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력을 전가한다. 마치 미국 정보국 요원이 적국 군수 물자 공장의 노동자들에게 끼쳤던 것과 같다.
팀 케미스트리는 스포츠뿐 아니라 모든 조직 문화에 적용된다
이 책 《팀 케미스트리》는 스포츠뿐 아니라 조직 문화의 형성에도 중요한 깨달음을 준다. 결속력이나 화합을 가장 중요시하는 집단 중 하나는 바로 군대다. 전우가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전우를 돕겠다는 의지 등 군대 조직은 ‘팀 케미스트리’를 가장 중요시한다. 이에 저자는 스탠리 매크리스털 전 미국 육군 대장을 통해 그들의 결속력과 팀 케미스트리가 어떻게 형성되고 쌓여가는지 확인한다.
요즘 조직 문화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MZ세대의 개인주의, 혹은 개성에 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기성세대는 MZ세대가 너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 공동체라는 가치를 등한시한다고 말하고, MZ세대는 기성세대의 그런 사고 자체가 구태의연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시각차는 조직 사회에서 세대 간의 갈등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것은 과거부터 우리가 중요시해오던 팀워크나 단결력을 팀 케미스트리와 혼동해서 생긴 것일 수 있다.
조직을 위한 맹목적이고 획일적인 충성이 팀 케미스트리가 아님에도 조직 내 집단에 충성하지 않으면 조직의 화합을 저해하는 일처럼 여긴다. 하지만 저자는 “팀 케미스트리는 사람들 간의 상호 작용”이라고 말한다. 즉, 개인이 희생해서 조직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이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상대를 신뢰하면서 일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팀 케미스트리다.
상하 위계가 그대로 존재하는 상태에서 조직의 단합을 추구한답시고 회식을 하고, 함께 등산을 가고, 같이 구호를 외치는 것은 팀 케미스트리를 이루는 일이 아니라 조직의 구성원을 괴롭히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저자가 정리한대로 팀 케미스트리의 유일한 기능이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것(조직 업무의 성과를 높이는 일)’이며, 팀 케미스트리의 정의가 ‘경기력(업무 효율)을 끌어올리는 생리학적·사회학적·정서적 효력 사이의 상호 작용’이라면 팀 케미스트리를 위해 조직이 해야 할 일은 이 ‘생리학적·사회학적·정서적 효력 사이의 상호 작용’이 잘 이루어지도록 돕는 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