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키 산주고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竜之介)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문학상(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상, 나오키 산주고 상)으로 우리나라에까지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작가다.
그런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우리나라에도 많은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으나, 나오키 산주고는 작품이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아쿠타가와의 작품은 아직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며 감동을 주고 있으나, 나오키의 작품은 찾아보기조차 힘들 정도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테지만 가장 커다란 이유는 두 사람의 이름을 딴 문학상의 성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쿠타가와는 예술성 높은 작품을 남겼기에 그의 작품이 오늘날까지도 생명을 유지하고 있으나, 나오키는 대중성 높은, 즉 그 시대에 유행하는 작품을 주로 썼기에 지금의 독자에게는 외면 받고 있는 것인 듯하다. 무릇 시대의 유행을 따라간다는 것은 그 유행이 지나면 곧 잊혀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대성이 강한 작품은 그 시대가 지나고 나면 하나의 문학작품으로서 생명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을 테지만, 나오키 산주고의 작품 가운데는 지금의 우리가 읽기에는 조금 유치하고 내용이 치밀하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다수 있다.
나오키 산주고가 잊혀진 또 다른 이유를 한 가지만 더 들자면, 당시 나오키 산주고가 품었던 사상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나오키 산주고는 작품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기행과 낭비벽으로도 당시 문단에서 유명했는데, 1932년 1월에 신문을 통해서 이른바 파시즘 선언이라는 것을 행했다. 물론 이는 진지하게 파시즘을 선언한 것이 아니라, 당시 그에게 가해졌던 몇 가지 공격에 대해서(계급투쟁을 쓰지 않는다는 등의), 특히 이 책에도 수록한 「전쟁과 꽃」이라는 작품에 대해서 ‘파시즘’이라는 비평이 가해졌기에 거기에 불끈하여, ‘너희들이 그렇게 얘기한다면 파시스트 정도는 언제든지 되어줄게. 이에 나는 1932년 1년 동안이라는 유효기간을 두어, 좌익에 대해서 투쟁을 개시하겠다. 자, 덤벼봐. 다가오면 베어버리겠어. 어때 무섭지? 라고 만국에 선언한다.’라고 참으로 장난스럽게 행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파시즘 선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테지만, 이후 그는 국책적 성격이 강한 『일본의 전율』이라는 글을 써서 문단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 외에도 비슷한 성격의 작품을 몇몇 남겼으니 아무리 본심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 진위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더구나 당시의 ‘파시즘 선언’이라면 우리나라 독자에게는 더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아니 그렇기에 우리나라에서는 나오키 산주고라는 작가에 대해서 더더욱 알아둘 필요가 있는 것 아닐지?
나오키 산주고에 대한 평가는 그의 작품을 읽은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이 책에는 작품의 교졸을 생각하지 않고 나오키 산주고의 여러 작품을 실어놓았으니 읽어보시고 나오키 산주고라는 작가에 대해서 각자가 한 번쯤은 생각해보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