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창작의 자리에서 생각하는 예술
낯설게 감각하고 사유하는 과정
“예술은 언제나 내가 들어갈 자리를 준다”
《예술이 내 것이 되는 순간》에서 박보나는 자기 몸에 자리한 흉터의 역사를 되짚다가 흉터를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며 생일 축하 영상을 찍었던 리사 스틸의 비디오 작품을 끌어오고,(p.11) 새로 이사할 집에 여분의 책상 놓을 자리가 없어 고민하다가 미술관 앞에서 청소 퍼포먼스를 했던 미얼 래더먼 유켈리스의 작업을 떠올리며,(p.21) 조카와 떠난 바다 여행에서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마르셀 뒤샹이 했던 실험적인 선택을 곱씹는다.(p108) 작가는 이렇게 전혀 미술적이지 않은 순간을 미술적인 순간으로 뒤바꾸며 일상을 낯설게 감각하고 사유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밖에도 그는 자신에게 영감을 주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가로 양혜규, 홍이현숙, 권용주, 김아영, 김경묵,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발터 드 마리아, 요셉 보이스 등을 소개하며, 창작자로서, 순수하게 작품을 즐기는 관람자로서 ‘예술 안의 나의 자리’를 찾아가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이 책에서 박보나 작가는 자신의 몇몇 작품 이야기도 직접 들려준다. 2010년 첫선을 보인 후 두 차례 더 선보였던 퍼포먼스 〈봉지 속 상자(La Boîte-en-Sac Plastique)〉와(p.88), 2019년 열렸던 전시 ‘블랙홀은 머리털이 없다’ 이야기는(p.118) 그간 예술과 노동, 역사와 개인 서사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해온 박보나 작가의 예술 세계가 궁금했던 독자들에게 매우 반가울 것이다.
박보나는 자신의 일상과 예술을 고찰하는 동시에 동시대 미술 작가들의 놀라운 작업과 지금 이 세계의 면면을 매혹적으로 연결하고 읽어낸다. 사건과 대상을 비껴 선 태도로 바라보려는 작가의 변함없는 노력이 우리를 ‘나’라는 테두리 밖으로 확장시켜 다양한 타자와의 연결을 경험하고 사유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