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떨어지길 기다릴 건가, 아니면 감 따러 올라갈 건가?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 지구촌 경제는 파국의 공포에 떨었다. 그러나 미국을 필두로 각국 정부가 엄청난 재난지원금을 각 가정의 주머니에 직접 꽂아주면서 지구촌 자산 시장(증시와 부동산)은 유례없는 붐에 휩싸였다. 천문학적 액수로, 전대미문의 초고속으로 꽂힌 돈이 넘치는 데다 금리까지 0%에 근접하도록 낮춰졌으니 현금을 들고 있으면 바보요,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투자 대상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그간 주식시장을 강 건너 먼 일, 또는 투전판 정도로 취급하던 많은 한국의 보통사람들이 “누구도 주식을 해서 얼마를 벌었다더라”는 들불처럼 번지는 소문에 휩쓸려 주식 시장에 새로 뛰어들었다. 이런 열기에 힘입어 한때 2021년 한국 증시의 코스피 지수는 3000선을 돌파하며 올라갔고, 예측 기관들은 “곧 3400 또는 3800까지 올라간다”며 군불을 지폈다. 그러나 곧이어 10월 이후 한국 증시는 “바닥인 줄 알았는데 지하가 또 있더라”는 식으로 끊임없이 꺼져가기만 했다.
이렇게 한국 증시는 오르고 내렸지만, 한국 증시의 참여자들, 특히 ‘개미’라 불리는 소액주주들은 대개 이른바 ‘모멘텀 투자자’들로서, 그저 사놓고 주식 값이 오르기만을 기다리는, 즉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천수답 농사꾼’처럼 주식 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다.
소액 투자자가 빠지기 쉬운 ‘천수답 식 주식 투자’라 해도, 미국 증시에서라면 큰 문제가 안 된다. 소액주주 친화적인 선진 자본시장과 제도를 갖춰놓았기에 오르내림은 있지만 길게 보면 결국 주가는 우상향하게 돼 있고, 그래 왔던 게 미국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증시는 완전 딴판이다. 2023년 4월 현재 한국 증시는 2,500선을 뚫지 못해 안간힘을 쓰고 있고, 2022~23년 연말연시엔 “2,000선 밑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기도 했다. 코스피 지수가 2,000선을 처음 돌파한 게 지난 2007년, 즉 16년 전이라는 점을 되돌이켜본다면 한국 증시는 ‘코로나 특수’라는 잠시를 제외하고는 16년간 지겹도록 2,000~2,500 사이를 오락가락 제자리걸음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지지부진한 한국 증시에 붙은 별명 중 하나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한국이니까 무조건 후려친다는 의미다. 후려치기의 원인을 북한의 남침 공포 등 지정학적 요인에 돌리는 의견도 있지만, 북한 대포가 남한 섬을 포격해도 주가가 거의 요동치치 않았음을 보면 이건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 최고의 금융 조사 전문 검찰 조직으로 수원지검이 꼽힌다. 이곳에서 금융 범죄를 수사했고, 이후 19대 국회의원으로 진출한 데 이어 현재는 보수 대표 논객으로서 TV와 유튜브에서 활발히 발언하는 김용남 전 의원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을 ‘후진적인 증시 환경’에서 찾는다.
지구촌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유일하게 기업 오너(대기업 총수)만을 위한 물적분할을 무제한으로 허용하는, 그래서 기업에는 유보금이 1000조 원을 넘지만, 배당금 지급율은 지구촌 꼴찌 수준인 한국이다. 그렇기에 미국인이 미국 증시에서 거두는 수익을 한국인은 한국 증시에선 절대로 바랄 수 없다. 이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보통사람은 주식시장에서 돈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주주 행동주의로 운동장부터 평평하게 만들자는 게, 즉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만 기다리지 말고, 감 따러 나무를 타든, 긴 작대기를 집지러 가든 하자는 게 김 전 의원의 제안이다.
방송 출연에 바쁜 ‘셀럽’이 투자자산운용사 자격을 따기까지
이렇게 판단한 김 전 의원은 한국 증시 문화의 개혁에 나서기 위한 사전 준비로 투자자산운용사 자격까지 땄다. 주식 투자에서 수익을 올리는 방식-비법은 가치 투자니, 모멘텀 투자니, 퀀텀 투자니 다양하지만, 검사-정치인 출신으로서 저자는 “상법-자본시장법 등을 개정해 운동장을 평평하게 고르고, 정부는 소액 투자자 보호 전담 기구를 신설하고, 민간은 소액주주들의 뜻을 모을 플랫폼을 구축한다면?”이라고 묻는다. 이런 개혁을 이룬다면 후진국 정도의 평가를 받게 만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을 바로잡고, 2,500선 아래를 16년이 넘도록 장기간 맴돌고 있는 코스피 지수를 단번에 5,000~10,000대로 올릴 수 있지 않겠냐는 질문이다.
거대 주주만을 위하고 소액주주의 피해에는 눈감는 여러 법들, 법원의 편파적 판결들, 언론의 한쪽 편들기 등을 소액주주들이 힘을 모아 돌파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코스피의 더블, 트리플 폭풍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게 김 전 의원의 제안이다.
왜 ‘10대 행동강령 룰’을 제시했나
이 책의 백미는 저자가 제시한 ‘10대 행동강령’에 있다. 여태까지 국내외 펀드와 개인 투자자들의 수많은 제안과 시도가 있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치료할 정답은 이미 충분히 나와 있다는 말이다. 정답은 있되 상법의 ‘기업 이사의 책임’ 조항은 옛날 그대로 ‘회사에만 충성하면 된다’인 채로 개정되지 않으며(즉, 소액주주에 피해를 주는 결정을 이사회가 내려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 조항이 없고), 상장 기업의 향방을 결정짓는 주총장에는 소수의 ‘거인들’(거액 주주들)만이 모여 결정을 내리고 소액주주들이 참여할 통로인 전자투표제는 ‘기업이 적용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로 남아 있다.
그간 주주 행동주의는 ‘증시 사람들’ 차원에서 이뤄져 왔다. 이들이 해결책을 제시하고 행동하자고 외쳐왔지만, 목소리는 작았고 널리 퍼지지 못했다. 이는 정치권이 이들의 움직임을 강 건너 불 보듯 했기 때문이다. “주식 투자는 각자 책임 아래 하는 것이고, 정치가 끼어들 일이 아니다”라는 게 여태까지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이제 월급만 모아서는 평생 집 장만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집값이 비싸진 이 나라에서 주식 투자는 상식이 돼 가고 있으며, 그래서 주식 투자 인구는 1,400만 명을 돌파했다.
사회를 쩍쩍 가르며 양분시키는 이슈가 있을 때 치료사로 나서는 것이 정치다. 경제와 정치를 분리해 보는, 즉 “경제에 왜 정치가 끼어들어?”라는 핀잔은, 1980년대 이후 거의 40년 간 이어졌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타당했었다. 그러나 이제 경제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의 경제 수도 뉴욕보다는 정치 수도 워싱턴의 말발이 더 잘 먹힌다는 이른바 ‘2020년대 경제안보의 시대’에는 경제학만으로는 부족하고 정치경제학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런 시대를 맞아 법대를 나와 검사로 활약했고, 국회의원으로서 입법을 했으며, 현재는 방송인으로 활약 중인 김용남 전 의원이 주주 행동주의를 되돌아보고 행동을 촉구하는 ‘10대 룰’을 제안하는 책을 내놨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간 일부 한국인 소액주주들이 촉촉하게 다져온 주주 민주주의라는 토양에, 주도하는 정치인이 법 개정과 방송 출연이라는 비료를 뿌려준다면 ‘한강의 기적’에 견줄 ‘한국판 주주 민주주의의 둘불’이 붙을 수도 있다. 이 책의 출판에 뒤이을 김 전 의원의 방송을 통한, 그리고 입법 무대로의 복귀를 통한 활약에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품을 만한 이유다.
책의 구성
1장은 ‘상장기업 오너들의 꼼수’로, 그간 한국 대기업의 이른바 ‘오너들’이 주식시장을 갖고 어떤 장난을 쳐왔는지를 고발한다. 저자는 ‘한눈에 보는 한국과 미국 기업 거버넌스 비교’(34쪽), ’구글과 LG의 지배구조 차이’(42쪽) 등을 통해 왜 미국 기업은 주주 중심으로 운영되는지, 그리고 구글은 수많은 알짜배기 자회사를 거느렸으면서도 지주사(모회사)인 ‘알파벳’만 상장돼 있는데, 한국의 대기업들은 모회사와 자회사가 무대(증시)에 모두 올라 스스로의 몸값(주가)를 평가절하시키는지를(즉, 소액주주에게만 손해를 주고 오너는 달콤한 더블 이익을 얻는지) 보여준다.
‘물적분할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60쪽)와 ‘인적분할과 자사주의 마법이 결합한 대사기극’은, 원래 IMF 외환 위기 이후 곤경에 빠진 국내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도입된 ‘물적분할’이라는 한국 특유의 제도가 어떻게 소액주주들에게만 피해를 전가하는 효과를 빚고 있으며, 흔히 ‘물적분할은 나쁘지만 인적분할은 괜찮다’고 소액주주들이 알고 있지만 한국 대기업들이 인적분할에 ‘자사주의 마법’이라는 편법을 섞음으로써 교묘하게 소액주주들의 뒤통수를 치는 양태를 파헤친다.
2장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선수로 뛰는 당신!’에서 저자는 소액주주들에게 직접 말을 건넨다. ‘노력이 오히려 당신의 발목을 잡는다’(138쪽)는 한국의 기울어진 주식시장에서는 계곡 아래의 소액주주들이 ‘노오력’을 하면 할수록 손해가 더 커지는 구조를 보여준다. ‘스키너 상자 속 쥐의 의사결정 실험모델’(143)에서는 환경이 유해하면 실험 쥐들이 맑은 물을 있는데도 마약 물을 찾아 마시듯 소액주주들이 자포자기에 스스로 빠져들어가게 된다고 설파한다.
이 장의 백미는 ‘베이스캠프를 높은 곳에 설치하라!’(178쪽)다. 저자는 1988년을 기점으로 그전에는 1년에 불과 몇 명밖에 오르지 못했던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그후 수십 명에서 100명 단위까지 오르게 된 비결을 ‘베이스캠프의 위치’에서 찾는다. 후진적인 한국 증시에 비유하자면, 소액주주가 빈약한 자본을 들고 에베레스트산의 아래쪽부터 꼭대기까지 무리하며 올라가다가는 좌절하기 십상이지만, 1988년 이후의 에베레스트산 등정처럼 베이스캠프가 정상 부분까지 바짝 끌어올려진 환경(주주 중심의 미국 증시 같은)이라면 정상 정복이 훨씬 수월해진다는 비유다. 저자는 주주 행동주의에 더 많은 소액주주가 동참한다면 산 아래쪽에 낮게 위치한 한국 증시의 ‘개미 베이스캠프’를 정상 가까이로 바짝 높일 수 있으며, 이게 바로 코스피 5,000, 1만 시대를 앞당겨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동참을 제안한다.
3장 ‘설국열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한국의 그간 주주 행동주의 역사를 정리해 보여준다. 칼 아이컨, 소버린 펀드, 엘리엇 펀드 등 외국 자본들이 2000년대 초부터 후진적인 한국 증시에 주주 행동주의의 씨앗을 심으려 기획했지만, 대기업과 연합한 언론, 법원 등의 방어막에 막혀 번번이 좌절됐던 역사, 그리고 이를 뒤이어 한국인들이 만든 토종 주주 행동주의 펀드들이 오너들의 철옹성 공격에 나섰지만 성공 사례는 극소수에 그쳤던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저자는 검사-정치인 출신답게 ‘변하고 있는 연기금과 정치권의 태도’(231쪽), ‘정부 기관의 자본시장 정책 발표와 보완점’(237쪽) 등을 통해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주 행동주의 지원 입법으로 독자의 눈길을 끌어간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변화의 바람 앞에서’(244쪽)를 통해서는 어차피 다가올 변화지만 소액주주와 정치가 힘을 합치면 변화의 바람을 지금 당장 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설득한다.
4장 ‘주가 2배 뛰게 만들 주식시장 10가지 룰 제안’은 구체적인 행동 강령의 제시다. ‘룰 1. 전자투표제, 전자위임장의 적극적인 활용’(254쪽)은 주주라면 누구나, 어디서든 주총에 참여할 수 있도록 상법 제368조와 자본시장법 시행령 160조 등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금처럼 회사 측이 전자투표제를 자기들 입맛에 맛도록 선택적으로 채용하거나 말거나 하게 내두지 말고 ‘의무화’하도록 개정한 뒤, 소액주주들이 열심히 주총 의결에 전자투표로 참여하자는 제안이다.
‘룰 2. 연기금의 태도 변화와 주주 민주주의 철학’(259쪽)은 거의 모든 대기업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의 소액주주 친화적 태도 변화를 촉구한다. ‘룰 3. 자사주 소각 의무화’(264쪽)는 현재 자사주를 사들이기만 하고 소각은 하지 않는 한국 상장사들의 이상한 태도를 미국의 현실(자사주를 사들이는 것은 곧 “소각을 위해서”)과 비교하면서 소각 의무화를 제도화할 방법을 찾고자 한다.
‘룰 4. 이사의 주주 이익 확인’(268쪽)은 현행 상법이 기업 이사의 책임을 ‘회사에 충성해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는 것을 ‘회사 그리고 주주에 충성한다’고 개정함으로써 회사의 사실상 주인인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못하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룰 6. 집단소송 제도의 개혁’(276)과 ‘룰 7. 증거개시제도(discovery)의 도입’(280쪽)은 현재 영미권에서 행해지는 소액주주 보호 제도를 한국도 도입하도록 소액주주들이 나서자는 것이다. 집단소송 제도는 기업의 잘못된 결정에 피해를 입은 단 한 사람이라도 소송을 걸어 승소하면 동일한 피해를 입은 모든 소비자(주주)에게 동일한 피해 배상이 이뤄지도록 한다. 증거개시제도(discovery)는 영미권은 물론 유럽, 일본에서도 일부 도입된 제도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마치 검사와 같은 자격을 갖고 증거를 제출하도록 명령할 수 있게 한다. 피해를 당하고도 피해 증거를 거대 기업집단에 맞서 소액주주 개인들이 직접 찾아 제출하도록 하는 한국과는 완전 다른 제도이다.
‘룰 8. 경영권 지분 매각 때 의무 공개매수 제도 적용’(285쪽)은 최근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에서도 드러났듯 기업 오너는 경영권을 넘길 때 이른바 ‘경영권 프리미엄’을 통해 웃돈(프리미엄)을 충분히 받지만, 소액주주들은 프리미엄은커녕 손해만 덤터기쓰기 쉬운 한국의 현행 제도를, 미국-유럽은 물론 아시아 나라들에도 도입돼 있는 ‘의무 공개매수’ 제도를 통해 M&A(기업 인수-합병) 때 소액주주도 대주주와 같은 프리미엄을 받으며 주식을 넘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룰 9. 주주 민주주의 전담 부서와 소액주주 피해 예방 기구 신설’(291쪽)과 ‘룰 10. 집단지성 소액주주 플랫폼 구축’(294쪽)은, 정부는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민간은 집단지성을 공유할 플랫폼을 구축해 주주 행동주의, 주주 민주주의를 앞당기자는 행동강령이다.
5장 ‘당신이 바로 소액주주 행동가!’는 저자가 소액 주주들에게 보내는 초청장이다. 코너에 서서 후진적이었던 한국 증시의 과거를 뒤돌아보고, 동시에 코스피 10,000 시대가 열릴 미래를 바라보면서 ‘1,400만 주주가 함께 만드는 성공 공식’(339쪽)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