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아시아인 사진신부는 어떠할까? 20세기 초 미국과 일본의 신사협정(Gentlemen’s Agreement)을 통해 시작된 일본인 사진신부의 미국으로의 이주는 이후 한인 사진신부의 이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일본 식민지 정부는 한인의 미국으로의 이주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피식민지민인 한인 사진신부들이 일본제국의 여권을 발급받는 것도,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미 영사관으로부터 비자를 발급받는 것도 녹록지 않았다. 어떤 신부들은 중국으로 건너가 밀항을 통해 이민국으로부터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아 미국으로 이주하기도 하였다. 미국으로 이주하기까지 한인 사진신부가 미국의 이민법과 일본의 식민지적 통제를 통과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앞서 소개한 유럽인 사진신부들, 특히 난민으로 이주한 아르메니아 출신 사진신부들에 비해 한인 사진신부의 수는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그 수가 턱없이 적다. 이처럼 인종차별이 노골화되었던 20세기 초 백인 남성 중심의 인종적 위계질서 속의 미국 사회에서 피식민지 출신 한인 사진신부들은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 이 책에서는 인종, 민족, 젠더의 교차라는 맥락에서 한인 사진신부의 이주와 삶에 대해 논의하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20세기 초반 한인 사진신부들의 미국 이주, 도시와 농장에서 새로운 가족 형성, 도시로 이주한 뒤 노동시장에 진입, 한인사회와 관계 그리고 태평양전쟁 시기 미국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한 일련의 선택을 일상사의 시각에서 재구성한 것이다. 기존 한인 사진신부 연구에서 민족의식에 기반한 행위자로서 이들의 능동성을 강조했다면, 이 책에서는 한인 사진신부에게 중요한 것은 이주국 미국에서 안정적인 정착과 생존이었음을 논의하였다. 특히 사진결혼을 통한 미국으로의 이주, 집단농장 생활의 적응, 도시로의 이주와 정착, 태평양전쟁 시기 등을 거치면서 한인 사진신부들은 가부장제와의 타협, 주변화된 미국 내 노동시장에서 경쟁과 생존, 지배적 인종적 관계에서 인정받기 위한 노력 등 자기보호적 실천을 통해 미국 사회에서 생존하고자 했음을 설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