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후기
《부산문화지리지》는 이래저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마지막 교정을 보기 위해 신문사 경력 30년 차 필진 3명이 출판사로 가는 깜깜한 골목길에서 차량 접촉 사고가 났다. 사람은 다치지 않았지만, ‘新문화지리지 액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A 기자는 ‘新문화지리지-2009 부산 재발견’ 신문 연재 당시 첫 회 취재 차 문화재 발굴 현장을 찾았다가 다쳤고, 아직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함께 차에 탔던 B 기자는 ‘新문화지리지-2022 부산 재발견’ 연재 도중 가족을 잃는 아픔을 겪었고, 동승했던 C 기자 역시 연재 막바지에 크게 다치는 바람에 게재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 뻔했다. 다른 취재와 달리 이번 기획은 하나의 항목에 근 한 달가량 취재 공력을 들여야 하는 데다 각자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진행한 거라 순번을 바꾸거나 누군가 대신하는 게 쉽지 않았다. 30년 차 필진 3명에겐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울고 웃으며 만들었던 신문화지리지 시즌2를 마무리했다. 《부산일보》 신문 연재와 책 만들기 작업을,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진행하면서 격세지감을 느꼈다. 무엇보다 이번 시즌2에선 집필진을 꾸리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부산문화재단의 제안과 지원으로 13년 만에 신문화지리지 수정 증보판을 만들기로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글을 쓸 사람을 모을 수 없었다.
시즌1을 문화부원끼리 ‘으쌰 으쌰’ 했던 것과는 천양지차였다. 궁여지책으로 시즌1을 함께했던 기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문화부 근무 이력이 있는 후배 기자들을 설득했다. 그들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금 하는 일만으로도 벅찬데, 가욋일로 무언가를 할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두어 달이 흘렀고, 포기해야 하나 싶던 찰나, “저라도 힘을 보태겠다.”며 한 명이 나섰다. 그리고 또 한 명, 또 한 명. “선배가 이렇게 하시는데요.” “시간은 없지만 의미 있는 일이니 해보고 싶네요.” 이렇게 9명의 필진이 꾸려졌다.
정말이지 ‘특별’한 취재팀이 되었다. 근무 부서도 다르고, 입사 연도도 달랐다. 팀원 대부분이 20~30년 차 기자라는 점은 더 특이했다. 문화부장을 역임한 기자가 3명, 30년 차 이상만 3명, 합산 기자 경력이 200여 년에 달한다. 오죽했으면 한국기자협회에서 우리 특별취재팀을 인터뷰해 기사화했다. ‘2030이 대세? 여기 부산일보 20년·30년 차가 나섰다네’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우리에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문화부 취재 경험이 많아 누구보다 이번 기획 취지를 잘 이해하고, 부산 문화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마음도 같다. 토론 과정을 통해 기획 방향도 새로 정했다. 단순히 2009년 이후의 변화상을 업데이트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춤, 음악, 건축, 영화제 등 앞서 다루지 않았던 분야를 추가했다.
시즌1보다 취재 꼭지가 줄어들긴 했지만, 내용을 채우는 일은 여전히 힘들었다. 시즌1과 달리 선택과 집중으로 부산 문화 본질을 드러내고자 했지만, 미흡한 점도 있을 것이다. 달라진 부산 문화 풍경과 새로운 흐름을 포착하는 작업이 생각만큼 간단치 않아서다. 그래서 발품과 손품을 톡톡히 팔았다. 겪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자료를 모으고, 확인하고, 분석하는 데 들어가는 품이 만만찮다는 것을.
기획 단계부터 출간 작업까지 치자면 열 달가량 걸렸다. 열정을 가진 후배들 덕분에 힘든 시간을 잘 헤쳐 나올 수 있었다. 나도, 그네들도 왜 그렇게 매달렸을까 싶지만, 감히 말하건대, 부산문화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애정 덕분일 것이다.
좋은 소식도 있었다. 이번 기획보도 ‘新문화지리지-2022 부산 재발견’이 한국기자협회 제388회 ‘이달의 기자상’(지역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을 받았다. 수상 소감에 썼던 말인데 가져와 본다. 우리가 하고 싶었던 말이어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왜 그랬냐고요? 속보 경쟁에 지친 지금은, 하나의 아이템 취재를 위해 한 달 이상 매달리는 작업은 좀체 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부린 오기였을 겁니다. 적나라한 지역 문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싶었지만, 모든 결과가 다 만족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지역별 불균형이 여실히 드러난 불편한 현실도 직면했습니다. 그런데도 또 하나의 구슬을 뀄다고 자부할 수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다시 10년의 시간이 흘러서 세 번째 수정 증보판을 낼 즈음에는-이번 특별취재팀 참여 기자의 절반 넘게 퇴직을 한 상황이겠지만-남은 후배들이 더 나은 기획으로 뒷받침해 줄 걸로 믿습니다.”
이만하면 해피 엔딩이라 할 만하다. 제법 근사한 기억으로 오래오래 남을 것 같다. 인사치레가 아니라 이번 책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 이들이 너무나 많다. 〈부산일보〉 김진수 사장과 김수진 편집국장에게 감사한다. 전성록 문화사업국장, 노정현 전 편집국장, 이호진 전 편집국 부국장의 ‘결단’이 없었으면 시작도 못 했을 것이다. 기획보도를 지원해 준 부산문화재단 이미연 대표·박소윤 기획경영실장·김두진 예술진흥본부장, 멋진 그래픽과 책을 만들어 준 비온후 출판사 김철진 대표, 사진으로 도움을 준 윤민호 사진가, 기획 취지를 이해하고 응원 차원에서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까지 제공해 준 부산영상위원회, 현장 실무를 지원한 김상훈 문화부장과 천영철 전 문화부장이 있다. 마지막으로 한 땀 한 땀 수놓듯 자기 생각을 글과 자료로 풀어준 이상헌 편집 파트 선임기자, 오금아 문화부 에디터, 정달식 경제·문화 파트장, 김효정 스포츠라이프부 에디터, 박세익 기획취재부 부장, 윤여진 사회부 차장, 김동주 스포츠라이프부 차장, 남유정 문화부 기자 이름을 불러 본다. 감사합니다.
2023년 3월 마지막 교정을 보고 온 날 밤에
집필진 대표 / 문화부 선임기자(부국장) 김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