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은 선거였지만 ]
이야기의 화두가 학급 임원 선거였고, 2학년 2반의 선거 풍경이 다채롭고 속도감 있게 전개되어 이야기에 푹 빠진 채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보기도 했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줄기가 점점 친구로 향하고 있었다. 다연이가 스스로를 뽑지 않았기 때문에 유일하게 다연이를 뽑은 ‘한 표’의 주인공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게다가 겨 묻은 개가 똥 묻은 개 나무라는 격으로, 한 표도 얻지 못한 은혁이라는 친구가 한 표 얻은 다연이를 놀리고 있으니 다연이로서는 한 표 친구 찾는 일이 더 급할 수밖에 없다. 어딜 가나 은혁이 같은 친구가 하나쯤 있지 싶고, 혹시 이 녀석이 다연이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눈초리가 가늘어지면서도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라고 정신을 차리게 됐다. 다연이에게 한 표를 던진 친구를 찾아야 하니까.
다연이는 배려심 있는 어린이로 친구 관계가 무난하지만 처음부터 용기 있게 다가서는 성격은 아니라서 친구 사귀는 속도가 느린 편이다. 그런데 한 표 친구를 찾고 싶은 마음에 저절로 적극성을 발휘하게 된다. 자기를 뽑았을 것 같은 친구를 찾아가 묻기도 하고, 어렵사리 떠오른 단서를 손에 쥐고 그에 부합한 친구를 찾아 말을 걸어 본다. 그러면서 새 친구에 대한 관심도 생기고, 조금씩 가까워지는 모습도 눈에 띈다.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 김지영 작가도 조카의 선거를 지켜본 뒤 이야기를 쓰게 되었지만, 이 동화에는 어린이들에게 학교가 즐거운 곳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뿍 담겨 있다.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 주는 친구’가 많다면 학교는 즐거운 곳이 되지 않을까?
[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해 가는 아이들 ]
학교에 따라 빠르면 초등 2학년, 아니면 3학년 때 처음으로 학급 임원을 뽑는다. 학교생활을 1~2년 경험한 아이들에게 새로운 장이 펼쳐지는 것이다. 임원이 되고 싶은 아이도, 관심이 별로 없는 아이도 있겠지만 생애 첫 선거인 만큼 다연이처럼 엄마가 적극 권하는 경우도 많다. 리더십이 사회생활의 중요한 덕목이기도 하니 직접 임원이 돼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더불어 이 이야기는 선거의 과정과 결과를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 주어 좋았다. 우선 꼬물꼬물 아기 같은 아이들이 스스로 임원이 되고 싶다고 손을 번쩍 드는 모습, 친구 옆구리를 찔러 자기를 후보로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는 아이를 보면서 무척 귀여웠다. 나름 선거 공약도 준비해 친구들 앞에서 자기를 홍보하는 모습도 보였다. 세세하게 소개되진 않았지만 선거에 임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진지할까 생각하니 그냥 ‘요 녀석들 귀엽네!’ 하고 웃을 일만은 아니었다. 도장 찍힌 투표용지와 선거 관리 위원이 있고 비밀 유지 임무가 적용되는 이 선거
판은 결코 장난 같지 않았다. 다연이가 회장으로 누구를 뽑을까 고민하고 선출된 친구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대견하다. 과자 파티 약속보다 학급에 의미 있는 공약을 중요시하고, 공약이 아무리 좋아도 평소 언행이 반듯하지 않다면 임원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믿는 2학년이라니! 다연이와 친구들의 선거 이후 학교생활이 사뭇 궁금해진다. 스스로 느끼고, 판단하고, 함께 조율해 가면서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해 갈 아이들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 좋은 친구 찾기 VS 좋은 친구 되기 ]
은채가 다연이를 부회장 후보로 추천할 때, 다연이는 착하고 친구와 선생님을 잘 도와준다고 말했다. 짝꿍 재민이도 다연이를 착한 친구라고 여긴다. 실제로 다연이는 자기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남기고 친구에게 빌려주기도 하고, 편식하는 친구를 대신해 가지를 먹어 주기도 한다. 가지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데도 자기가 참을 수 있는 선을 넘지 않으면 친구를 돕는다.
우리는 착한 사람을 좋아한다. 어린이들에게 어떤 친구를 좋아하냐고 물어보아도 상당수가 ‘착한 친구’를 뽑는다. 그런데 스스로 착한 친구가 되고 싶다는 어린이를 만나는 건 쉽지 않은 듯하다. 물론 스스로의 언행을 점검할 때 ‘선’이라는 잣대를 적용하겠지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중요함의 순서를 보여 주는 게 아닐까 싶어 조금 씁쓸하다. 어른들은 가끔 바보같이 착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가르친다. 내 아이가 손해 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십분 이해하지만 아무도 손해 보지 않는 관계가 존재할까. 서로 조금씩 손해를 보면서, 배려하면서 좋은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면, 내 곁에 항상 좋은 친구가 함께할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