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통일운동 단체와 통일운동가의 투쟁기
『호산 전창일과 통일운동 77년사』 제2부 통일운동
『호산 전창일과 통일운동 77년사』는 1, 2, 3부(각 1권)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2부 ‘통일운동’(1960~1997)은 ⑦4월 혁명 후 직장과 혁신운동을 병행하게 된 공영토건 사장의 배려, 민자통 중앙위원으로서 2대 악법 투쟁의 선봉에 선 과정 ⑧반민주악법반대공동투쟁위원회 선언문에 전창일(全昌一)이 김창일(金昌一)로 인쇄된 민족일보의 오기로 인해 5.16 쿠데타군에 의한 구속 모면과 도피생활 ⑨유신반대운동 그리고 긴급조치 4호 위반혐의로 구속, 중앙정보부의 고문, 극동건설 사장의 구명운동으로 사형을 모면한 사연, 단식과 아내의 구명운동, 아내의 구속, 출옥과 사상전향서 문제 ⑩6월 민주항쟁과 학생들의 희생, 범민족대회와 황석영·문익환·임수경의 방북,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의 발족, 노태우 정권의 탄압과 범민련의 투쟁, 북쪽의 초안을 배제하고 남쪽의 수정 제안으로 채택된 범민련 강령 제정과정(종북이 아니고 친북이라는 증거), 김영삼의 당선과 문익환의 범민련 이탈 과정, 문익환과 전창일의 회담, 문익환의 죽음과 프락치 사건의 진실, 조문단 사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창일은 백수(99세)에 가까운 고령임에도 정확한 기억과 놀라운 정열로 100회가 넘는 구술대담과 회고록을 통해 증언했으며, 그동안 간직했던 자료- 북녘 가족과 주고받은 편지, 남북 해외 동포들이 연대한 범민련 관련 자료, 투옥 중 받은 편지,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동지들이 보낸 편지- 등을 공개했다.
『호산 전창일과 통일운동 77년사』 1, 2, 3부 전권은 2,000페이지에 이른 방대한 분량도 놀랍지만, 400여 개의 주석, 300개가 넘는 그림(이미지), 32개의 표, 49개의 자세히 보기 등이 수록되어 자료집으로서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