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이 만개하고, 벚꽃이 흩날리는 봄이 돌아오면 유독 더 아픈 사람들이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다. 보상금을 더 챙기기 원한다는 항간에 떠도는 오해와 달리 그들이 아직도 고통을 품고 살아가는 이유는 단 하나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요원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올해로 9년째다.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고, 그 죽음의 진실을 알지 못하는 부모들이 아직도 거리에 서 있다. 참사 초기 몇몇 개신교 목사들의 망언으로 교회는 유가족들은 물론 온 국민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 그에 반해 유가족과 함께 비를 맞으며 곁을 내어주고 위로가 되어준 그리스도인들도 있었다. 이 책은 그 긴 시간을 유가족 곁에서 함께 걸어온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다. 어떤 이들은 예배와 기도로, 어떤 이들은 노래로, 또 어떤 이들은 노란 리본을 만들어 나누고, 피켓을 들었다.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오랜 시간 그렇게 곁을 내어줄 수 있었을까 진심으로 궁금하다. 네 자식도 아닌데, 언제까지 울 거냐는 비난에도 서명을 받고, 팽목항에 찾아가고, 자원봉사를 하고, 시위 현장과 예배의 자리에 나아간 사람들이 참사 후 9년의 시간을 이야기한다.
엘리 위젤은 ‘고통받는 자’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했다. 그들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은 십자가에서 시작했다. 다른 생명의 고통까지 짊어지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그리스도를 말하는 신학이라면, 고통의 현장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울고 있는 이들과 함께 울지 않는 신학은, 몸부림치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들을 외면하는 신학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 있기 원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고난당하는 자들을 외면할 수 없다. 9년 가까이 세월호 가족들 곁에서 함께하며 삶의 한 부분을 기꺼이 내어준 사람들은 그런 그리스도인들이었다. 그들은 ‘빚진 마음’을 가지고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끝까지 세월호 유가족 곁을 지켰다. 재난 속에서 서로 위로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의 예배와 기도회는 리베카 솔닛이 말하는 “재난 유토피아” 같았다. 부모들의 당면 투쟁, 아이들에 대한 슬픔과 기쁨의 기억, 하나님에 대한 항의와 신앙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은 함께 눈물을 흘렸고 분노했고 미안해했다.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것, 함께 아파하며 말없이 그 곁을 지키는 것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책은 그 행함을 보여준다. 2014년 4월 팽목항 유가족 대기실에서 봉사하며,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서명을 받으며, 자기 몸보다 더 큰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어머님 옆에서 함께 서서, 길어진 투쟁에 예배를 원하는 유가족들을 위해 매주 같은 시간에 모여서 기도하고 예배하는 자리에서 이 책은 쓰였다. 오래도록 4월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절절함에 목이 메이고 눈물이 흘러도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을 똑똑히 마주하려는 독자들에게 이 책이 오랜 증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