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생성한 차가운 텍스트에
온기를 불어넣은 7인의 소설가
김달영, 나플갱어, 신조하, 오소영, 윤여경, 전윤호, 채강D. 이 일곱 명의 작가가 ChatGPT와 함께 쓴 일곱 편의 소설은 다음과 같다.
황량한 풍경 속 비밀스러운 소녀가 살고 있는 메타버스 세계를 그린 「텅 빈 도시」, 기후변화로 인해 바다에 잠긴 인천 송도를 배경으로 한 「희망 위에 지어진 것들」,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과 공존하는 미래의 어느 날 신문에 기고된 ‘인간’ 단체와 ‘외계인’ 연합의 입장문을 옮긴 「매니페스토」, 남한에 살고 있는 북한이탈주민이 갑자기 북한의 오빠로부터 온 문자 메시지를 받으며 시작되는 이야기 「그리움과 꿈」, 인간의 뇌와 연결된 인공지능 스피커가 감정과 무의식까지 읽어내는 무서운 일상을 그린 「감정의 온도」, 인간보다 똑똑하게 개발된 AI 시스템이 개발자에 도전하며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는 「오로라」, 부상으로 위기에 빠진 한 야구 선수에게 일어난 꿈같은 성공기를 담은 「펜웨이 파크의 행운」.
SF 요소와 현실이 적절히 섞인 소설들 속에는 ‘지금’과 ‘곧 다가올 미래’, ‘조금 더 먼 미래’가 저마다 다르게 그려져 있다. 어떤 작가는 그 안에서 삶의 희망을 찾고, 어떤 작가는 닥쳐올 불행을 예고하고, 어떤 작가는 우리의 잠재된 불안을 자극한다. 그저 소설일 뿐인 흥미로운 세계로 읽어도 좋고, 언젠가 현실이 될 수 있는 무서운 경고처럼 읽어도 좋다. 어떤 문장이 작가가 쓴 것이고, 어떤 문장이 AI가 쓴 것인지 알아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맑은 눈의 인공지능과 부대낀
희로애락의 과정을 있는 그대로……
『매니페스토Manifesto』의 가장 특별한 점은 ChatGPT와의 협업 과정이 드러나 있는 것이다. AI와 함께 소설을 쓴 소감과 작가로서 갖는 이 프로젝트의 의미, 작업 중에 겪은 에피소드 등을 ‘협업 후기’에 담았다. 에세이 형태로 쓰인 이 글에는 작가들의 소설에 대한 진심과 AI에 가졌던 반감, 작업 이후 느낀 동료애까지 편안한 문체로 녹아 있다.
처음 합을 맞춘 동료 AI와 어떤 대화를 나누며 소설을 완성시켰는지는 ‘협업 일지’를 통해 보여준다. 저마다 다른 생각과 관심사를 가진 것은 물론 글쓰기 요령도 제각각인 작가들은 자연히 ChatGPT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소설 작법의 단계를 물으며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어떤 소재를 다루면 좋을지 상의하기도 하고, 소설의 재료가 될 자료를 조사시키기도 하고, 문장을 더 유려하게 만들거나 길게 늘여달라고 부탁하기도 하는 등 다채로운 활용법이 세세히 적혀 있다.
때로는 조수가 되어, 때로는 구세주가 되어 작가들을 도운 ChatGPT는 종종 배신자가 되어 작가들을 힘들게 하기도 했다. 부적절한 소재라며 문장 생성을 거부하기도 하고, 요구한 것과 전혀 딴판인 이야기를 내놓기도 하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뻔뻔하게 거짓말을 해대기도 하는 등 말 안 듣는 ChatGPT를 어르고 달래며 소설을 쓰느라 애먹은 작가들의 사연도 이 ‘협업 일지’에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이 일지에는 실제 작가들이 이용한 ChatGPT 대화 화면이 그대로 담겨 있어 그 과정의 생생함을 독자들이 고스란히 읽을 수 있다.
KBS에서도 주목한 전혀 새로운 프로젝트
작은 지혜의 시작, 작지만 확실한 선언!
우리의 협업 과정은 KBS 〈다큐 인사이트〉에서도 만날 수 있다. 4월 13일 방영 예정인 해당 방송에는 ChatGPT와 함께 소설을 써본 작가들의 작업 과정과 감상, 그것이 응축되어 완성된 이 책의 제작 과정과 의미가 담긴다. 실제로 글 쓰는 데 AI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보여주고, 이것이 창작의 영역을 지키던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보는 내용이 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과연 창작이란 무엇이고 또 인간이란 무엇인지 성찰하는 시간까지 선사할 것이다.
『매니페스토Manifesto』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쓴 소설들의 모음이 아니다. AI와 공존하는 삶을 더는 피할 수 없는 시대에 창작, 문학의 영역에서 고민해야 할 작은 지혜의 시작이다. 인간다움의 길을 찾는, 인간다움의 가치를 역설하는 작지만 확실한 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