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에서 성소수자와 젠더 문제는 오랜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간 서구 중심적, 가부장적, 남성 중심적, 권력 지향적, 이성애 규범적인 특성 때문에 평등과 불평등의 문제보다는 권력의 문제에 집중하거나 의학적인 접근으로 이해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이런 환경으로 인해서 국내에서는 라틴아메리카의 성과 젠더를 다룬 서적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학문적 영역에도 국내의 사회적 인식이 깊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라틴아메리카 지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들이 남성 중심적, 이성애 규범적 특성이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자리잡고 있어 비슷한 양상들을 보였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론적인 접근에서는 라틴아메리카 페미니즘의 발전과 그 과정(1장), 성소수자들의 권리 보장 제도의 발전 과정(2장)을 다룬다. 사례 중심의 접근에서는 콜롬비아의 무력분쟁과 젠더박해에 대해 살펴보고(3장), 브라질의 흑인 여성, 쓰레기를 줍는 여성들의 힘을 조망하며(4장), 멕시코가 시도하고 있는 페미니즘 외교를 분석(5장), 과테말라 원주민 여성들의 젠더화 과정들을 통해 사회적 변화들을 추적하고 그과정에서 확대되고 있는 젠더 불평등을 재조명한다(6장).
이순주는 제1장 「라틴아메리카 페미니즘의 발전」에서 라틴아메리카의 페미니즘과 페미니즘 운동이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발전해 왔는가를 밝히는 동시에 서구의 페미니즘과 어떤 차이점을 지니는지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 페미니즘은 식민주의, 아프리카 민족의 노예화, 원주민의 주변화 등으로 말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 맥락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라틴아메리카의 정치·경제·사회적 변화는 대단히 역동적이었고, 이는 이 지역 페미니즘의 이슈와 전략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즉, 아프리카계 라틴아메리카 여성, 원주민 여성, 레즈비언, 노동자 여성, 빈민 여성, 노조 여성 등 다양한 집단이 각자의 특성을 반영하여 정체성과 권리 인정을 요구했고, 젠더, 시민권, 인종과 민족, 섹슈얼리티, 계급, 공동체, 종교, 환경 등 다양한 페미니즘의 관점과 이슈, 행동 영역을 만들어 냈다. 저자는 그 결과 라틴아메리카 페미니즘을 가리킬 때는 복수형인 ‘feminismos’를 사용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처럼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페미니즘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살펴본다.
김영철은 제2장 「라틴아메리카의 성소수자와 권리」에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성소수자들의 권리가 개별 국가들에서 어떤 수준에 있는가를 톺아본다. 특히, 그는 이론적인 논의들은 가능한 배제하고, 어떤 법과 제도가 변화되었고, 사회문화적으로는 어떤 경향들이 주도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양상들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의 역동적인 역사적 흐름은 LGBTQ의 권리 증진과 운동의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의 모습을 보인다. 더불어, 저자는 라틴아메리카에서의 LGBTQ 권리 증진을 위한 과제를 제시한다.
차경미는 제3장 「콜롬비아의 무력분쟁과 젠더박해」에서 세계 최대 국내 실향민을 유지하고 있는 콜롬비아의 사례를 중심으로 여성 강제 이주 원인으로서 무력분쟁의 확산과 젠더박해에 대해 살펴본다. 특히 강제 실향민 규모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국내 실향민에 주목하여 무력분쟁 전개 과정에서 발생한 젠더박해의 주요 특징을 고찰한다. 그에 따르면 콜롬비아의 강제 실향민 대부분이 원주민과 아프리카에 뿌리를 두는 여성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그는 강제 실향민이 라틴아메리카 사회의 불평등에 관한 논의를 심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양은미는 제4장 「브라질 흑인 여성 쓰레기 수집노동자와 새로운 시민성 논의의 가능성」에서 현대 브라질 흑인 여성이 처한 소외와 폭력의 현실을 쓰레기와 브라질의 여성 쓰레기 수거노동자 ‘까따도라(catadora)’를 매개로 이해하고자 한다. 즉, 쓰레기와 쓰레기 수거자, 흑인 여성, 소외와 폭력이라는 화두들의 연결을 시도한다. 이를 위해 그는 먼저 브라질 흑인 여성 쓰레기 수집노동자들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폭력과 소외에 대한 그들의 해석과 대처를 조명한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직면하는 소외와 폭력의 성질을 점검하고 현재의 맥락에 맞는 까따도르라는 직업의 정의와 이들의 시민성에 관한 논의의 방향을 전망한다.
강경희는 제5장 「라틴아메리카의 페미니스트 외교: 멕시코」에서 서구권 국가와 비교해 멕시코 페미니스트 외교가 갖는 특징과 멕시코 정부가 페미니스트 외교를 채택하게 된 요인을 살펴본다. 이때, 그는 상황적 요인보다 ‘내재적 요인’, 다시 말해 멕시코 여성과 페미니스트들의 역할, 외교 분야에서 멕시코 여성의 대표성 확대, 멕시코 페미니스트 운동의 제도화 등의 영향을 정당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 그는 멕시코 페미니스트의 외교 선언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면서, 젠더 인권 취약국임에도 멕시코가 어떻게 페미니스트 외교를 선택할 수 있었는가 하는 관점으로 멕시코의 페미니스트 외교에 대해 고찰할 것을 제안한다.
김유경은 제6장 「과테말라 원주민 여성운동의 젠더화: 세푸르 자르코 사례를 통해 본 내전 시 성폭력에 대한 투쟁과 성과」에서 전시 성폭력 문제가 어떻게 젠더 이슈화되며 현재의 구조적 성폭력 문제에 대한 운동으로 이어지는지를 중심으로 과테말라 원주민 여성운동을 살펴본다. 과테말라에서는 현재까지 많은 원주민 여성이 내전 시기부터 여성이기에 겪어야 했던 과거의 피해를 적극적으로 증언하고 관련자 처벌과 기소,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활동을 계속해 오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 같은 과테말라 여성, 특히 원주민 여성들의 노력은 원주민 운동 및 인권 운동 안팎에서 젠더 이슈를 부각시키며 과테말라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 저자는 세푸르 자르코의 성공 사례가 갖는 의미와 남은 과제들을 일별하며, 과테말라 사회가 주는 교훈들을 제시한다.
이와 같이, 이 책은 라틴아메리카의 성·젠더 차별과 불평등을 정치사회적으로 톺아봄으로써, 흑인, 원주민, 노동자, 빈민으로서의 라틴아메리카 여성과 성소수자들의 현실을 포착한다. 또한 그들이 연대와 협력을 통해 라틴아메리카에서 페미니즘과 성소수자의 권리를 발전시키고, 성폭력에 투쟁하며 새로운 시민성의 가능성을 창출해 온 과정을 그린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성·젠더에 관한 라틴아메리카의 차별과 불평등의 문제,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역동적인 역사의 모습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라틴아메리카를 ‘젠더’라는 관점에서 다양하게 조명함으로써, 이 대륙(사회)에 대한 이해를 객관적ㆍ입체적으로 시도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 총서는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의 인문한국플러스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중남미지역원은 2008년 인문한국 사업에 이어 2018년 9월부터 ‘신전환(New Transition)의 라틴아메리카 L.A.T.I.N+를 통한 통합적 접근과 이해’라는 어젠다를 수행하고 있으며, ‘라틴아메리카 평등과 불평등의 변증법’이라는 연구 어젠다를 진행하고 있다. 중남미지역원은 평등과 불평등이라는 화두를 바탕으로 라틴아메리카의 인종과 이주, 종교, 젠더, 개발과 환경 등 다양한 주제 영역을 총서로 엮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책은 그 연구 성과의 일부를 일반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쉽게 풀어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