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인생에 대한 통찰
평생 단행본 한 권, 논문 한 편, 서평 한 편만을 발표했지만 20세기 최고의 천재 철학자로 꼽히는 비트겐슈타인. 그러나 정작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자기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평생 자기 삶의 윤리적 완성을 위해 분투한 그는 제자 노먼 맬컴에게 “철학을 공부해서 얻는 효용이 그저 난해한 논리적 문제들을 그럴싸하게 말할 수 있게 될 뿐, 일상의 중요한 문제들에 관한 생각을 개선시켜주지 못한다면, 우리를 더 양심 있게 만들지 않는다면, 철학을 공부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반문한 바 있다.
오스트리아 철강 재벌 가문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약관 20대에 전쟁터에서 완성한 『논리철학논고』로 논리실증주의에 큰 영향을 미치며 철학계의 총아로 떠오른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철학의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며 상속받은 전 재산을 던져버리고 철학계를 떠난다.
『논리철학논고』에서 선언한 대로,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그 문제가 사라지는 방식으로 살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삶의 형식을 바꿔야 한다고 깨달은 그는 자신의 깨달음을 실천하기 위해 일평생 ‘올바른 삶의 형식’을 찾아 헤맸다. 공학에서 철학으로, 전쟁터로, 초등학교 교사로, 건축가로, 수도원으로, 교수로, 노동자로, 은둔자로 전전했으며, 심지어 죽기 2년 전 일기에서도 ‘다른 삶’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었다. 그는 죽기 이틀 전까지 철학 연구를 멈추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다음과 같았다. “그들에게 전해주시오. 나는 멋진 삶을 살았다고!”
비트겐슈타인의 아포리즘과 천재의 어조
비트겐슈타인의 글은 대부분 체계적인 서술이 아닌 철학적 단평의 형식으로 쓰였다. 그는 철학이 어떤 하나의 관점을 정당화하는 이론이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에, 체계적인 설명이나 논증을 피했다. 논증으로 주장을 뒷받침하라는 러셀의 충고에 “논증은 아름다움을 훼손한다. 마치 진흙투성이 손으로 꽃을 더럽히는 것처럼”이라고 답할 정도였다.
비트겐슈타인의 글은 짧은 토막글의 형식이라 아포리즘의 성격이 짙은 것들이 많다. 니체가 아포리즘으로 유명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의 토막글이 뿜어내는 아우라도 만만치 않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이다” 등 여러 문장들이 명언처럼 숱하게 인용된다. 그는 “올바른 문체로 쓴다는 것은 차량을 철로 위에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올려놓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문체에 상당한 공을 들였고, 자신의 문체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그는 결코 논문을 쓰듯이 글을 쓰지 않았으며, 철학은 본래 시처럼 써야 한다고 말했다. 제자이자 문헌관리자인 폰 브릭트에 따르면 비트겐슈타인은 철학뿐만 아니라 독일 산문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된다. 러셀이 단 한 줄만 읽고도 천재성을 알아봤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비트겐슈타인의 글은 강한 개성이 있다. 이 책을 통해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천재의 어조를 일부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은 철학에 앞선다
비트겐슈타인은 1913년 러셀에게 보낸 편지에서 “인간이 되기 전에 어떻게 논리학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훨씬 더 중요한 일은 나 자신과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1937년 3월 1일자 일기에서도, “우리는 먼저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 다음에야 비로소 철학을 할 수 있다”라고 쓰고 있다. 인생이 철학에 선행한다는 생각은 비트겐슈타인의 일생을 관통하는데, 심지어 1947년에는 “삶의 방식을 변혁하여 이 모든 물음들을 쓸데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보다 나의 작업을 다른 사람들이 계속 이어가기를 더 바라고 있는지가 나로서는 전혀 분명치 않다”고 하면서 그 때문에 자신은 철학의 “학파를 세울 수 없을 것”이라고 토로한다.
이 책은 비트겐슈타인의 삶과 사유 가운데서 전문적인 철학보다는 “일상의 중요한 문제들에 관한 생각을 개선시켜주”는 말과 글들을 모은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저작과 일기, 편지, 지인의 회고록 및 그에 관한 2차 저작들에서 약 300여 개의 단평들을 선별해, ‘인생의 의미’, ‘행복’, ‘삶의 자세’, ‘고독’, ‘충고와 조언’ 등 15개의 주제별로 분류하였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된 배경 상황을 해설로 덧붙이고 원문 출처를 명기했다. 또한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의 변화를 살펴보려는 독자를 위해 해당 연도도 가급적 모두 밝혔다.
특히 레이 몽크의 『비트겐슈타인 평전』 출간 이후에 새로이 발굴된 1930-32년 및 1936-37년 사이의 일기인 일명 ‘코더 다이어리(Koder Diaries)’에서 많은 부분을 인용하였다. 비트겐슈타인의 일기는 지금까지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중년 비트겐슈타인의 내밀한 자기와의 대화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일기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나 키르케고르의 『두려움과 떨림』을 연상시킬 정도로 영적,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으며, 그야말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할 정도로 양심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비트겐슈타인의 처절한 자기반성을 담고 있다. 평생 동안 ‘올바른 삶의 형식’을 찾아 고독과 고통 속에서 길어 올린 비트겐슈타인의 인생에 대한 성찰은 읽는 이에게 어떤 빛과 함께 예상치 못한 위로를 준다. 인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