횔덜린은 〈반평생〉, 〈빵과 포도주〉, 〈평화의 축제〉 등의 많은 서정시와 서정적 소설 《휘페리온》, 미완성 비극 《엠페도클레스의 죽음》,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과 《안티고네》, 핀다르의 송시 등을 남겼다. 〈판단과 존재〉, 〈비극적인 것에 관하여〉 등 철학과 문학에 대한 여러 편의 에세이와 현실 체험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300여 통의 편지도 전해진다. 그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정신질환에 시달리면서도 시 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그 열정과 의지는 방대한 작품이라는 귀중한 유산을 남겼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횔덜린의 시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이 책에서 횔덜린의 귀중한 유산 중 그의 시학적 사상이 짙게 배어나는 시 26편을 골라 ‘원문과 함께’ 배열하고 해설했다. 시의 운율 구조나 형식 등 감상의 중요한 요소를 제대로 음미하려면 원문이 꼭 필요해서다. 본문의 구성을 살펴보면, 횔덜린의 시문학 세계를 개관하는 글을 1장에 두었다. 그의 시 세계의 변화를 볼 수 있도록 시대순으로 설명했다. 2장의 시 26편 역시 창작연대순으로 배열하고 해설했다. 튀빙겐 찬가에 속하는 〈인류에 바치는 찬가〉를 시작으로 6운각 시행의 시 〈떡갈나무들〉, 송시 〈저녁의 환상〉과 〈하이델베르크〉을 거쳐 비가 〈빵과 포도주〉, 그리고 〈반평생〉과 〈하르트의 골짜기〉 같은 ‘밤의 찬가들’, 후기 시 〈회상〉과 〈므네모쉬네〉, 정신착란기 작품인 〈이 세상의 평안함…〉이 그 대상이다.
횔덜린에게는 “현대 서정시의 선구자”, “고유한 표현예술의 때 이른 완성자”라는 수식어가 붙듯이 그의 시는 광기와 사랑, 슬픔, 자유 등을 넘나들며, 전통 규범에서 탈피한, 관념적이고 과감한 은유가 넘쳐나 해설하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
“나의 해설이 횔덜린 시의 심오한 의미에 독자들을 얼마나 가까이 접근케 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텍스트라는 근원지를 멀리 떠나지 않으려고 주의했다. (중략) 이런 과정에서 작품이 지니는 구성의 모호성을 섣불리 취급하진 않았나 걱정이 앞선다. 시의 모호성은 파헤치고 극복해야 할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옹호해야 할 특권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무런 해설도 필요 없는 예술작품은 없다. 모든 작품은 감상과 공감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더욱이나 민중을 대신하여 ‘민중의 혀’를 자처한 횔덜린은 어느 시인보다도 공감을 갈망한 시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해설로도 해소되지 않는 모호한 부분은 앞으로 탐구해야 할 과제일 뿐, 수용과 감상의 한계를 의미하진 않는다. 오히려 독자의 능동적인 참여를 호소하는 것으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노파심에 당부의 말을 남기지만, 저자는 당시의 문학적 배경과 횔덜린을 오랜 시간 연구한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자세하고 깊이 있는 해설을 해주고 있다. 이 책은 독일 현대문학의 선구자, 횔덜린 시의 정수를 온전히 감상해볼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