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자유로움과 대지의 단단함을 아우르는
생텍쥐페리의 ‘수직적 시선’
마음산책 ‘문장들’ 시리즈의 매력은 한 작가의 총체적인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어린 왕자』 속 문장(“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게 돼.”) 다음에 『인간의 대지』의 문장(“인간이 된다는 것은 정확히 책임을 지는 것이다.”)이 나오는 식이다. 한 작가가 남긴 이질적인 작품을 나란히 읽음으로써 독자는 작가의 세계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생텍쥐페리를 이야기할 때 비행 조종사라는 그의 직업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비행기 조종석에 앉아 드넓은 하늘을 누비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는 매번 땅으로 착륙하는 사람이었다.
생텍쥐페리의 작품 세계는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과 이착륙을 반복하는 시간 속에서 탄생했다. 하늘을 날면서 바라보는 대지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지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오해와 미움, 다툼 들이 사소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한편 땅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별빛 가득한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인간의 대지』가 하늘에서 땅을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쓰였다면, 『어린 왕자』는 땅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감각으로부터 나왔다. 신유진 작가는 이를 ‘수직적 시선’이라는 말로 정리한다. 생텍쥐페리의 수직적 관점에서 삶을 가로막는 벽은 작은 점이 되고, 현실은 상상의 재료가 된다.
실제로 생텍쥐페리는 하늘뿐 아니라 사막도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막에서 1년 반 동안 비행장의 책임자로 근무했으며, 1935년에는 파리-사이공 노선을 운행하다 불시착해 리비아사막에서 5일간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 사막은 『어린 왕자』 『인간의 대지』 등의 작품에서 중요한 무대로 등장한다.
비행을 하던 밤과 수없이 많은 별들, 그 고요함, 몇 시간 동안 누렸던 통치자의 힘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어려운 고비를 넘긴 후 만난 새로운 세상, 그 나무들, 그 꽃들, 그 여인들, 새벽이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온 생명으로 채색된 그 상쾌한 미소들, 우리에게 보상으로 주어지는 그 사소한 것들의 합주, 돈으로는 그런 것들을 살 수 없다.
-『인간의 대지』 중에서
‘그것’이라는 사물을 ‘너’라는 유일한 존재로 바꾸는 관계라는 마법
생텍쥐페리의 문장들을 따라 다시 읽는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의 문장들』은 ‘사랑과 우정과 연대’, ‘인생의 의미’, ‘자기만의 별을 찾아서’, ‘석양이 질 때’,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에는 누군가와 만나 우정을 나누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 방황하다, 자기만의 별을 발견한 뒤, 그 별과 서서히 이별하는 과정이 펼쳐진다.
『어린 왕자』에는 어린 왕자와 여우, 장미가 등장한다. 지구라는 별에 불시착한 어린 왕자는, 사막에서 우연히 만난 여우와 대화를 나누면서 관계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다. 관계란 서로가 시간을 들여 길들이는 과정이라는 것, 그 과정을 통해 다른 사물과 구별되는 유일한 존재가 된다는 것, 끝내 모두는 이별하게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은 영원히 남는다는 것을 어린 왕자는 배운다. 그렇게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에 두고 온 장미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그가 현실에서 경험한 우정으로부터 길어 올린 것이다. 생텍쥐페리에게는 같은 비행 조종사로서 생사고락을 함께한 기요메, 메르모즈 등의 동료들이 있었다. 이들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늘 마음속에 살아 있는 존재들이었다. 생텍쥐페리는 나무, 정원, 마을, 호수 같은 대상에서도 의미를 발견해낸다. 사물이던 ‘그것’들은 ‘너’라는 존재가 된다.
『생텍쥐페리의 문장들』은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라는 페르소나 대신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어린 왕자』이다. 생텍쥐페리가 남긴 문장들을 통해 인생과 관계, 우정과 꿈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한테 밀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지. 밀밭을 봐도 아무 생각이 없어. 그게 얼마나 슬픈 일이니! 그렇지만 네가 금발머리잖아. 그러니 네가 나를 길들이면 환상적일 거야! 황금빛으로 물든 밀을 보면 네가 떠오를 테니까. 나는 밀밭을 지나가는 바람 소리도 좋아하게 될 거야…….
-『어린 왕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