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문서보관소에서 발굴한 자료를 통해 격변의 시대를 살아간 한인들의 삶을 조명한다, 『러시아문서보관소 자료집』1~5권
『러시아문서보관소 자료집』에 번역되어 실린 문서들은 식민지 시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분투했던 한인들의 활동상을 엿볼 수 있는 매우 가치 있는 자료들이다. 2020년 출간된 1, 2권에서는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재학하며 항일 혁명운동에 헌신하고자 했던 한인들을 조명했고, 3, 4권에서는 조선 청년들의 사회주의 비밀결사인 ‘고려공산청년회’와 관련된 사료들을 엮었다. 이번에 출간되는 5권은 1920~1930년대 극동러시아에 살던 한인들과 관련한 문서들을 엮은 것으로, 당시 일본 경찰들의 추적을 피해 러시아로 피신해 온 한인 사회주의 혁명가들의 활동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더 나은 삶을 위해 러시아로 이주해 온 일반 이주민들의 삶을 보여주는 문서도 수록했는데, 1917년 러시아혁명 발발 이후 사회주의체제 건설기에 적응해서 살아야 했던 이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다섯 권에 담긴 수많은 문서들을 통해 그동안 한인 공산주의운동사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을 마주하고, 한·러 관계와 공산주의운동사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귀중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혁명과 사회주의체제 건설의 소용돌이가 일던 곳, 극동러시아
그곳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분투했던 한인 혁명가들,
그리고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이주해 온 자들
1890년대 동학혁명, 청일전쟁 이후부터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이 점차 확립되면서 한인들이 러시아로 정치적 망명을 떠나는 경우가 점차 늘어 1900년대 초 러시아 극동지역은 중국, 만주, 간도 지역과 함께 항일운동의 전초 기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한인 혁명가들은 낯선 땅 극동러시아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했는데, 이 책에 실린 문서 중 극동러시아 한인들의 러시아 내전 참전에 관한 문서는 한인들이 일본군에 대항하여 쫓고 쫓기는 빨치산 활동을 전개한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이렇듯 한인 공산주의자들은 볼셰비키 군대에 합류하여 일본 간섭군 세력과 용감히 싸웠지만, 한편으로는 자체 내 노선상의 분열로 민족운동과 사회주의운동에서 결집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치명적인 약점도 지니고 있었다. 극동지역 러시아 한인들의 분파 간 마찰, 반목, 분열과 관련된 문서, 1920년대 전체의 분파 간 알력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문서 등이 이를 보여준다.
1937년에 이루어진 한인 강제이주와 관련하여 제3부에서는 이주 과정을 다룬 문서를 비롯하여 극동 한인들이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한 이후 극동지역에 두고 온 자산에 대한 보상 처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강제이주 이후의 상황을 담은 문서를 소개한다. 이들 문서는 우리가 얼핏 생각하기에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이주가 시행됐을 것이라는 예상을 뒤집는 조항도 보여준다. 하지만 여타 문서들은 강제 이주민을 위한 정부기관의 ‘세심한’ 배려는 중앙과 지방 관리들 간 의사소통의 문제와 지방 현지 상황에 의해 실제로는 거의 실행되지 않았고, 피해는 오롯이 한인 이주민들이 감내했어야 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