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훈에서 재미로, "우키요조시(浮世草子)"
고전 소설은 주로 교훈성을 주제로 삼는다. 에도 시대 초기에 유행한 가나조시(假名草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하라 사이카쿠는 사실성과 오락성을 전면에 내세운 새로운 소설을 써낸다. 그의 작품을 우키요조시(浮世草子)라고 부르는 이유다. "우키요(浮世)"는 사이카쿠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세속적이고 사실적인 현세, 더 나아가 향락적이고 호색적인 풍속의 속세를 의미한다.
20여 편에 달하는 그의 소설은 주제에 따라 여색과 남색 등의 호색 생활을 다룬 호색물(好色物), 무사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그린 무가물(武家物), 도시의 주요 시민층이었던 상인들, 즉 조닌(町人)들의 경제생활의 여러 모습들을 그린 조닌물(町人物) 및 기타 작품군 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일본영대장≫은 일련의 조닌물 가운데 첫 번째 작품으로서, 일본 최초의 경제 소설로 손꼽힌다.
일본 최초로 상인을 논한 경제 소설
17세기 후반, 일본은 획기적인 고도성장을 기록했다.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신흥 상인들은 생산 증대와 생활 수준 향상에 힘입어 간사이 전역은 물론 에도로까지 활동 범위를 확대했고, 에도가 정치 경제의 중심이 되는 데 일조했다. 이들 신흥 상인은 일본의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부를 축적했기에 "조닌(町人)"이라 불리며 사무라이(士) 바로 아래의 사회적 지위를 획득한다. 작가 사이카쿠 역시 조닌 출신으로, 그는 일본 최초로 조닌들의 계층적 의미와 경제 활동을 직시하고, 그들이 주인공이 된 작품을 창작하면서 문학의 주제로 다루기 어려운 금전(金錢), 즉 경제 현실과 인간의 물욕(物慾) 문제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영원히 재물로 가득한 곳간
“일본영대장(日本永代藏)”이란 "일본의 영원히 재물로 가득한 곳간·창고"라는 뜻이다. 제목에서 드러내는 바와 같이, 사이카쿠는 큰 부자가 된 상인들의 치부담을 권당 다섯 편씩 6권, 총 30편의 이야기로 소개한다. 비천한 출신에서 거부가 되는 이야기, 기발한 아이디어로 부를 쌓은 이야기는 물론, 유흥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파산하는 이야기, 지나친 욕심과 부정한 행위로 몰락하는 이야기 등 다양한 상인들의 모습을 통해 상인들의 빛과 그림자를 그린다. 사이카쿠 특유의 해학과 재치 있는 표현으로 소설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인 재미를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현대 사회에도 만연한 배금주의와 인간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