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초한지(楚漢志)』로 건국하여 『삼국지(三國志)』에서 망합니다.
서양에 로마가 있다면 중국에는 한(漢)이 있습니다. 로마가 그리스 문명을 흡수하여 서양 문화의 원류를 만든 역사의 호수였다면, 한은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문명을 천하에 퍼뜨려 동아시아 문화의 꽃을 피운 역사의 뿌리였습니다.
서로마와 마찬가지로 한도 우리가 어떻게 멸망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 중 누구의 손에 의해 한의 도성이 함락되어 불타고, 마지막 황제가 참수되었는지, 아니 오백 년 제국이 무너지는 그런 역사적 순간이 있기라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서로마가 시시껄렁하게 멸망했다면, 한은 흐지부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한이 무너지면서 400년 이상 계속된 분열의 시기, 그 어리석은 시간의 지식인들도 찾아갈 것입니다. 그들을 통해 동서고금 반복되었던, 지금 이 땅의 권력자와 지식인의 관계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까 합니다.
왕망의 이중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왕망은 개혁을 위해 패륜을 저질렀고, 개혁에 대한 평가로 패륜을 이해해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역사는 오히려 그의 패륜에만 주목했고, 그 패륜으로 그의 개혁을 저평가, 아니 평가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역사는 그의 패륜만을 기록했다.
당대 지배적인 상식과 도덕 그리고 윤리마저 저버린 전과(前過) 위에 세워진 그 어떤 성과(成果)에 대해서도 그 평가가 가혹할 수밖에 없다는 역사의 절대적 기준을 왕망은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거기다 목적만이 아니라 과정 또한 중요하다는 세간의 눈대중조차 따르지 못해 결국 민심으로부터도 버림받았다.
어리석은 시간의 지식인들
한이 무너진 이후 오랜 분열의 시간, 그 어리석은 시간을 지배한 권력자들은 하나같이 성정이 꼬였다. 그 출신 성분으로 인한 콤플렉스 때문이기도 하지만, 혼돈과 혼란의 시기에 순리에 역행하며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그들의 선택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지식인들은 위정자들에게 입바른 소리를 해댔고, 또 위정자들은 그런 지식인들을 함부로 다루지 못하는 그런 관계였다. 위정자들은 켕기는 것이 있었고, 지식인들은 그것을 빌미로 줄타기를 하는 것뿐이었다.
하안은 또 헛똑똑이었다. 사마의가 특검을 맡겼을 때 패자임을 인정하고 사냥개 짓은 거부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조상과 자신을 또 분별했다. 그래서 덥석 물었다. 사마의는 일찍이 하안의 사람 됨됨이를 읽고 있었다. 그래서 미끼를 던졌다.
사마의는 조상 일당의 국정농단사건을 조사하러 다니는 하안을 보며 그렇게 기분이 좋진 않았을 것이다. 같은 족의 이중성 아니 본질을 보는 듯했을 테니까. 결국 하안은 모양만 구긴 것이 아니다. 그 역시 조상 등 일곱 집안과 함께 멸족당했다. 그는 끝내 자기모순에서 살다 갔다.
위진시대 지식인들은 염세주의자 행세하여 시인(詩人)이 되고, 광인 행세하여 철인(哲人)이 되고 싶어 했다. 그 시대가 그들을 그렇게 내몰았는지도 모른다.
참, 그때나 지금이나
이 지식인이라는 족속들의 머리 구조는 간단치가 않다.
기득권자가 되어서도 아지트에 모여 권력을 희화화하며 키득거리는 지식인,
전 정권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도 새 정권의 사냥개 짓을 마다하지 않는 지식인,
지식인은 반골일까? 속물일까?
아니면 순진한 걸까?
그를 부리는 권력자의 마음도 편치는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