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내면의 잠재성을 발견하여 이끄는 시스템
매개체로서의 ‘보드게임’에 대한 신선한 접근
기존의 보드게임은 그저 아이들, 혹은 성인들의 여가를 위한 놀이 용품에 불과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보드게임 안에 숨어 있는 체험 요소, 공평한 역할, 자유로운 방식 등에 입각한 독특한 변화 유도 시스템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는 15년간 초등교육 현장에 몸담으며 보드게임을 ‘교육 활동’의 기본적 도구 및 아이와의 소통을 위한 제1의 매개체로 활용해 그 특별한 효과를 입증했다.
교실 안에는 각양각색의 성격, 성향, 능력, 환경을 가진 아이들이 뒤섞여 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아이들 사이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그에 따른 사건이 일어나곤 한다. 이때, 많은 교사와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나무라고, 때로는 중재하며, 한 개인에게 모종의 방식을 강요하게 된다. 하지만, 의외로 이때 필요한 것은 바로 ‘한발 물러서기’다.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어림짐작으로 넘겨짚는 것이 아닌, 객관적 질문을 던져 보는 것이다. 그리고 ‘보드게임’을 통해 다시금 아이의 마음에 한 발짝 조심스레 접근한다.
보드게임 속 ‘동등한 플레이어’로서
아이의 진짜 마음을 읽는다
“보드게임을 하면 아이와 선생님이 동등한 역할을 가진다. 계급장 떼고 게임을 하는 셈이다. 게임 안에 정해진 규칙을 모두 따라야 하며, 그래야 게임을 할 수 있다. 처음에는 게임을 소개하는 사람이 이끌고 가겠지만, 두세 판 정도 하고 나면 관계는 매우 평등해진다. 그렇게 훌훌 역할을 벗어던지고 나면 온전한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평소 교육과정 내에서 나눴던 대화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살아 있는 욕구가 튀어나온다.”
저자의 교실 에피소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건이(가명)라는 아이는 활동적인 만큼, 친구들을 짓궂게 놀려 언제나 다툼의 현장 가운데에 있곤 했다. 하지만 교사의 중재가 있을 적마다 일시적 사과가 이루어질 뿐 상황은 악화되기 일쑤였다. 그런 어느 날, 저자는 보드게임 <다빈치 코드>를 통해 ‘진중함’이라는 아이의 낯선 면모를 발견한다. 이후 아이의 새로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여동생을 교실 앞까지 데려다주는 모습, 모르는 친구가 있으면 주저 않고 도와주는 모습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외면했던 아이의 면모가 보이자 친구를 놀리는 행동이 곧 친구에 대한 ‘관심’이었음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보드게임은 학생이 아닌 진짜 그 아이를 만나게 해 준다. 보드게임을 하는 순간, 교육과정이라는 안경을 벗고 학생이 아닌 그 아이의 속을 들여다보게 된다. 내가 마음을 보여 주면 아이도 마음을 보여 준다. 그렇게 마음의 길이 열리면, 게임이 끝나고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특별해진다.”
수학이 두려운 아이, 책 읽는 것이 싫은 아이…
보드게임은 곧 배움의 문턱을 넘는 열쇠
“배움은 내가 한다고 생각하지만 배움이 일어나는 순간 변하는 것은 사실 뇌다. 무엇인가를 배우고 싶을 때 ‘알고 싶다’라는 욕구가 생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게 된다. 행동한 결과가 만족스러우면 긍정적인 감정이 느껴지고, 그것을 다시 또 느끼고 싶은 욕구가 든다. 그러면 그 행동을 반복해서 하게 된다. 그리고 반복하면 잘하게 된다. 우리는 그때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본문에 따르면, 초등학교 4학년임에도 여전히 손가락을 사용해 수를 세는 유린이(가명)가 있었다. 저학년 시기의 유린이에게는 손가락을 사용해 수를 세는 것이 곧 수학에 대한 노력과 도전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아버지가 그런 유린이의 모습을 보고는 연산을 잘하던 한 살 차 동생과 비교하며 크게 화를 내셨다. 아버지의 지속적인 부정 피드백은 아이를 그렇게 ‘수학을 무서워하는 학생’으로 굳히고 말았다. 이런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양을 앞세우는 수학 과제가 아닌, 무의식 속 자리 잡은 ‘수학’에 대한 두려움 타파였다. 저자는 이를 보드게임 <크로싱>으로 해결했다. 매번 재미있는 놀이로서 접근한 덕에 자연스러운 연산 연습 과정을 겪은 아이는 시간이 흐르자 어느덧 손가락을 쓰지 않고도 수를 셀 수 있었다.
수학이 두려운 아이는 ‘수학 문제인 듯 아닌 듯’한 <수모쿠>를 통해 수학적 사고력을 얻을 수 있고, 책 읽기에 거부감이 드는 아이는 친구들과 가벼운 수다를 떠는 듯한 <독서질문카드> 게임을 통해 텍스트 속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서는 ‘소질’이 아닌, ‘그것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보드게임은 그런 면에서 배움의 문턱을 넘게 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몸으로 직접 경험한 것은 머리로만 익힌 것보다 훨씬 더 잘 기억한다. 이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감각기관과 감정을 함께 사용하기 때문이다. 강력한 체험은 마치 슬로비디오를 보는 것과 같이 세밀하게 기억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때의 소리, 맛, 냄새, 감촉까지 떠올릴 수 있다. 반면에 머리로 기억한 것은 쉽게 잊어버린다.”
보드게임은 미래의 아이가 겪을 ‘인생의 축소판’
교실·집에서 배우는 창의성, 사회성, 그리고 회복탄력성!
“보드게임은 시간·공간적 제약이 있는 현실을 보드판과 컴포넌트로 축소한 체험학습장이다. 보드게임 안에서 추리하면서 우리는 탐정이 되기도 하고 교사, 요리사, 기업가, 스포츠 선수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각 보드게임 테마에 맞게 규칙 안에서 자유롭게 체험한다. 게임 안에서는 어떤 선택, 혹은 어떤 시도든 괜찮다. 그리고 어떤 실수도, 실패도 괜찮다.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오로지 아이 스스로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를 경험하는 것이다. 즉, 아이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며 자신이 길러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배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보드게임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온전한 자기 주도권’이 있음을 강조한다. 이는 곧 아이들이 자기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결과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유도한다. 아이들은 보드게임을 하며 목표를 이루기 위한 창의적 사고를 키움과 동시에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사회성을 배운다. 더불어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 융통성을 얻을 뿐 아니라 가벼운 실패감을 여러 번 맛보며 다음 기회를 위한 ‘회복탄력성’까지 키울 수 있으니, 보드게임 교육은 그야말로 일석사조인 셈이다.
저자는 말한다. ‘누군가 자신을 믿어 줄 때 그 사람의 감추어진 고유한 능력이 깨어난다’고 말이다. 내면 깊숙이 숨겨져 있는 잠재력을 보기 위해서는 진짜 그 사람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렇게 저자는 보드게임을 통해 수많은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극도의 긴장감, 혹은 따분함만이 엿보이던 아이들의 얼굴에서 생기가 돌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형성된다. 이 밖에도 저자는 교사로서 보드게임의 전체 혹은 일부 요소를 학급 운영에 도입해 새로운 분위기를 형성하고, 아이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또한, 이 책에는 아이별 성향·환경·능력에 따라 그에 적합한 보드게임을 추천하는 보드게임 연구·상담가로서의 저자의 면모도 담겨 있으니, 일상에서의 유용한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조언에 따라 내 아이의 특성에 적합한 보드게임을 찾아 활용해 보자. 이 책은 아이 내면의 잠재성을 발견해 내고, 아이의 미래 영역을 확장하는 ‘성장의 토양’이 되어 줄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