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 기억하는 상처에 대하여
제7회 정채봉 문학상 수상자 이인호 작가의 장편동화 『어떤 세주』가 출간되었다. 『어떤 세주』는 ‘작가의 말’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작가가 언젠가 펼쳐 본 어린 시절 일기장 속 열세 살의 나를 기억하며 쓴 이야기다. 일기장 속 아이는 고백한다. “누구한테도 사랑받지 못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개미만큼 작아진다고, 차라리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이렇게 일기장에만 털어놓을 수 있는 속마음이 어느 날, 주인공 세주에게 말을 걸어왔다. 『어떤 세주』는 열세 살 세주가 마음 깊은 곳에 숨겨 둬, 자신조차 잊고 지내던 내면의 목소리 ‘어떤 세주’와 만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편의점에서 간식을 고르는 사소한 상황에서부터 친구의 화장품이 궁금해 몰래 파우치를 열어 볼까 하는 순간까지. 무언가 고민되는 상황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어떤 세주’ 앞에서, 세주는 그동안 잊고 있던 일상의 상처들과 마주하게 된다. 냄새가 난다고 놀리던 짝꿍과 나만 초대받지 못했던 생일 파티, 우연히 듣게 된 언니와 나를 비교하는 엄마의 말까지. 당시에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몰라 그냥 지나쳐 왔던 순간들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세주는 진심으로 속상해한다. 그러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천천히 걸어간다. 한때 나를 속상하게 했던 가족과 친구들 속으로.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각자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아간다
우리는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인물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하나둘씩 알게 된다.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겪게 되는 상황 속에서, 인물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저마다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아간다. 부모님의 이혼 서류로 추정되는 종이를 보며 세주의 언니는 “그런 건 애들이 안 보게 감춰 놓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스스럼없이 동생에게 말하고, 세주는 “엄마 아빠에게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라고 한 발 떨어져서 생각한다. 수용이는 도시락의 비밀을 듣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세주에게 “이모는 이제부터 자기가 엄마 노릇 해야 된다고. 그래서 요즘 나랑 자주 싸워. 이모는 이모고, 엄마는 엄마니까. 미안해할 거 없어. 몰랐잖아.”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겉으로만 보았을 때는 알 수 없는 속마음을 꺼내 놓으면서, 인물들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이야기 초반에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상황을 살피느라 속마음을 숨기기 바빴던 세주는 ‘어떤 세주’를 만나면서 서서히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연습을 한다. 같은 반 친구 채아를 부러워하는 마음은 실은 채아와 가까워지고 싶었던 거였으며, 내 비밀을 알고 있는 수용이가 신경 쓰였던 건 실은 내가 한 잘못을 고백하고 싶었던 거였다. 그렇게 세주는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나도 잘 몰랐던 나와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오직 하나뿐인 세상의 주인공들에게
세주는 평소 자신을 부려 먹어 미운 언니와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다 펑펑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속상한 마음을 숨기기 위해 서둘러 올라탄 버스에서 찔끔 눈물을 쏟기도 한다. 세주 자신도 왜 우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때마다 세주 곁에는 누군가가 있었다. 휴대 전화를 잃어버렸다고 말한 뒤, 침대에 엎드려 우는 세주 대신 언니는 어쩌다 그랬냐며 방방 뛰어 주고, 버스 손잡이를 꾹 잡고 있는 세주에게 앞에 있던 사람은 조용히 휴지를 건네준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방법이 있다면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고 싶었지만, “이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다. “아이는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잘 자라 주었으니까요.”
열세 살의 인물들은 모두 스스로의 힘으로 오늘을 살아 나간다. 그 과정에서 때론 답답해하거나 혼란스러워하지만, 이내 앞에 놓인 상황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찾아 나간다. 그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간다. ‘어떤 세주’와의 만남을 통해 오늘도 세주는 어디선가 자기 마음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오직 하나뿐인 세상의 주인공’인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OO’이 찾아오길 바라본다.
“아 참. 오세주는 ‘오직 하나뿐인 세상의 주인공’에서 따온 이름이라는 건 안 비밀이에요. 세상에 나는 오직 하나뿐이라는 거, 우리는 모두 이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거. 절대 잊으면 안 돼요.” _155p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