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가 괜찮으면, 우리도 지구도 괜찮을 것이다
쿨란스키는 우리에게 무척 친숙한 생물인 연어를 ‘지구 환경의 중요한 지표’로 삼는다. 그는 연어의 생존 여부가 지구 전체의 생존과 밀접하게 닿아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연어는 생애 한 시점에는 강물에서, 다른 시점에는 바다에서 살아간다. 이처럼 연어의 삶은 육지와 바다의 생태계가 서로 연결되는 지점에 걸쳐 있다. 그러니 연어의 삶은 지구 생태계 전체에 깊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달리 말하자면 어느 곳에서든, 어떻게든 인간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의미다. 대체로 악영향이라는 점이 문제일 것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아이디어가 비교적 최근에 대두되었지만, 자연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문명은 발전을 거듭해왔다. 연어도 마찬가지다. 인간에 의해 상처 입고, 거처를 빼앗기고, 길을 잃었다.
그럼에도 연어는 살아남았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에 잘 어울리는 동물을 꼽으라면 어류 중에서는 단언컨대 연어일 것이다. 연어의 생애를 들여다보면 감탄과 경외로 자연스럽게 마음이 흐른다. 무수한 위험에 용감히 맞서고, 온갖 장애물에도 굴하지 않으며, 주어진 사명을 다하려는 숭고한 모습은 ‘영웅’의 속성과 맞닿아 있다. 자신이 태어났던 곳으로 반드시 돌아오는 특성, 소하성(溯河性)은 신비 그 자체다. 여기까지는 연어에 대해 익히 아는 사실일 것이다.
연어가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독보적이라는 점은 생소할지도 모른다. 같은 종이면서 다른 강에서 태어난 두 연어의 DNA 차이는 두 사람의 DNA 차이보다 훨씬 크다. 하나의 종이라도 그 안에 다양한 변형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원래 태어난 곳이 아닌 장소에 고립되어도 그곳의 환경에 맞게 생애 주기나 외형까지 모든 것을 조정한다. 이처럼 끊임없이 적응하는 능력 덕분에 연어는 살아남았다. 더불어 많은 종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 왕연어, 홍연어, 은연어, 대서양연어, 곱사연어, 백연어, 스틸헤드 등 대략 8~10종의 연어가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연어들은 주어진 조건과 현실에 맞춰 살아남기 위해 변화하고 있을 것이다.
진보하려는 인간의 모든 도전과 시도가 연어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자연은 그 자체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돌아간다. 연어 또한 마찬가지다. 연어를 노리는 포식자가 아무리 많다고 한들 그들의 먹성 때문에 연어가 멸종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체중의 3분의 1만큼 연어를 잡아먹는 왜가리, 통통하게 살이 오른 연어의 내장만 노리는 곰과 바다사자가 연어라는 종의 생존에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연어에게 번식하려는 본능은 살아남고 싶은 욕구보다 훨씬 강하다. 번식할 수 있는 한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번식을 자신의 운명이라 여기므로 그저 종착지를 향해 헤엄친다. 다만, 인간이 개입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쿨란스키는 이 지점을 예리하게 짚고 넘어간다.
연어의 눈으로 보자면, 19세기 이후 인류 문명의 역사는 ‘연어 절멸의 역사’라고 해도 무방하다. 《연어의 시간》은 연어에 대한 인간들의 집요한 괴롭힘을 생생하게 전한다. 연어는 19세기 산업 혁명의 의도하지 않은 희생물이었다.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공장, 무차별적으로 살포된 DDT는 연어의 숨통을 조였다. 이외에도 벌목, 관개, 운하 건설 등 진보라는 이름으로 행했던 모든 도전과 시도들이 연어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모든 위험 요소 중에서 최악은 댐이었다. 수십 미터 높이로 지어진 콘크리트 구조물은 연어들을 가로막았다. 새로 태어나 성장하기 위해 바다로 향하는 연어도, 긴 여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는 연어도 모두 길을 잃은 것이다. 자연의 자정 능력을 초과하는 인간의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생물학자들의 우려는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연어의 개체수는 급감했고, 뒤늦게 이 사태를 수습하고자 양어장 운영, 대규모 연어 양식을 비롯해서 여러 대책을 내놓았지만 대부분 효과가 없었거나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했다. “명확하고 단순하게 자연을 다루면 거의 틀림없이 실패한다. 자연법칙은 언뜻 보기에는 단순하지만, 항상 결과를 추측하기조차 어렵게 만드는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만이 이 모든 위험을 예지했고 경고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무시당했다. 그리고 삶의 터전까지 빼앗겼다. 연어와 공생하던 유일한 공동체는 새로운 정착민들에 의해 점점 힘을 잃어갔다.
하나의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운명공동체
《연어의 시간》에서는 원주민들의 삶과 세계관을 살펴볼 수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연어를 결코 가볍게 보지 않았다. 자기 몸을 내어 사람들을 먹이는 연어를 늘 감사의 대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여러 연어 신화를 통해 남획에 대한 경고도 전했다. 원주민들은 본능적으로 최대 지속 생산량 혹은 도피자원(산란할 수 있게 포획을 피한 일정 수의 물고기)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늘 자연으로부터 받은 만큼 돌려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들의 삶이 “연어가 괜찮으면 우리도 괜찮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원주민은 자연과 문명으로 세계관을 분리하지 않는다. 하나의 세계가 있을 뿐이다. 그들이 연어를 바라보는 태도는 ‘하나의 지구’라는 관점을 상기시킨다. 쿨란스키가 이 책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다. 연어와 우리가 운명공동체라는 점이다. 더 늦기 전에 연어라는 신비로운 생물이 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도록 멈춰야 하는 것과 노력해야 하는 것들을 살펴보아야 할 때다. 바로 지금, 우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