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전태일 ‘고무 채취 노동자 치코 멘데스’
치코는 ‘아마존의 간디’로 숲의 수호자이기 전에 노동자였다. 그는 아홉 살 때부터 아마존 숲에서 자랐고, 고무나무의 수액을 채취하는 노동자로 삶을 시작했다. 열 살 남짓한 나이부터 봉제 노동자로서 살았던 전태일처럼 일찍이 생계에 뛰어들었다. 전태일과 치코 멘데스는 노동자라는 정체성 이외에도 유사한 점이 많다. 둘 다 평생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웠다. 전태일은 함께 일하던 여공이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직업병인 폐렴에 걸렸으나 강제로 해고당하는 모습을 보았고, 이를 계기로 노동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치코 멘데스도 고무 농장 주인들에게 착취당하며 노예처럼 살아가는 동료 노동자들을 지키기 위해 투쟁에 나섰다. 전태일과 치코 모두 항상 말보다 행동이 앞섰다. 이들은 자신이 ‘노동자’로서 동료들의 삶의 질을 높이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두 발로 뛰어다녔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동료들에게 근로기준법을 가르쳤던 전태일처럼 치코 멘데스도 고무 수액을 채취하면서 노동조합을 창설했고, 노동자들을 교육했다. 치코는 이렇듯 그 자신 노동자로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마존의 다른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아마존 숲을 보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는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데 투신했고 지주들과 당당히 맞섰다. 전태일이 재봉사로 일하면서 노동자를 위한 근로기준법에 눈을 뜨고 변화하는 세상을 위해 몸을 던진 것처럼.
폭력은 안 된다, 우리는 ‘엠파치’로 대항한다
치코 멘데스는 뼛속까지 숲을 사랑했다. 그는 또한 평화를 중시하고 사랑했다. 치코가 ‘자연 사랑’과 더불어 ‘인간 사랑’이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몸소 보여주게 된 배경엔 이러한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그가 브라질에서 활동했던 당시는 환경운동가를 포함하여 교회 관계자들, 비정부기구단체 활동가들이 끊임없는 암살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치코는 고무 채취 노동자조합의 지도자로서 동료들이 암살자들의 총에 스러지는 모습을 수없이 목격했다. 아마존 숲을 벌목하여 이익을 창출하려는 거대 기업과 목축업자들, 몇조 원에 달하는 부채를 갚으려는 브라질 정부는 견고한 카르텔을 형성했다. 치코는 이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치코는 동료들이 죽어 나가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결단코 폭력을 거부했다. 숲을 개간하려는 자들에 맞서기 위해 평화롭게 시위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는 윌슨 피녜이루와 함께 ‘엠파치’로 불리는 전술을 개발한다. 건기 동안 목장주는 숲을 개간하기 위해 일꾼을 고용했다. 벌목은 개간한 지역에 불을 지른 다음 시작되는데, 이때 고무 채취 노동자들이 힘을 합친다. 이들은 모두 벌목하려는 지역을 서로의 팔을 잡고 사슬 형태로 둘러싼 다음, 일꾼들을 설득한다. 이것이 바로 일명 ‘엠파치’이다. 이 시위는 평화로운 방식으로 전개되었고, 치코를 비롯한 아마존 지킴이들의 상징이 되었다.
왜 지금, 치코 멘데스인가?
1988년 12월 22일, 오후 6시 45분. 암살자가 발포한 총은 치코 멘데스를 쓰러뜨렸다. 그의 어깨에는 18조각의 파편이, 가슴에는 42조각의 파편이 박혔다. 브라질 국민들은 치코의 죽음을 애도하며 ‘아마존의 영웅’으로 추앙했다. 그러나 치코 멘데스는 사람들이 자신을 영웅으로 추대하고 존경하기를 바랐던 게 아니다. 사람들이 현재와 다른 모습의 미래가 가능하다는 것을 믿고, 변화를 위해 직접 나서주기를 원했다. 경제 발전과 성장이라는 가치에 매몰되어 자연을 끊임없이 파괴하는 행태를 멈추기를 염원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도생해야 하는 삶, 연대의 고리가 끊어진 고립된 사회에서 목숨을 부지해야 했다.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떤가? 치코 멘데스가 살던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전 세계를 집어삼킨 신자유주의 아래 노동자의 삶은 더욱더 파편화되었고, 서로를 향한 불신은 점점 더 깊어졌으며, 내가 아닌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담긴 차별과 혐오는 날이 갈수록 드세지고 있다. 치코가 태어나 자랐던 브라질의 환경이 지금 우리의 역사를 그대로 대변한다. 노동자와 선주민이 가진 자에 의해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고, 숲이라는 보물을 빼앗기고, 인간답게 살아갈 최소한의 권리마저 정부에 강탈당하면서…. 치코 멘데스는 바로 그 빼앗긴 것들을 찾아 지키기 위해 ‘먼저’ 일어선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인간에 대한 신뢰와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믿음을 품은 고귀한 희망의 불씨를 살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