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논리, 통일논리, 귀일논리로서의 하나논리
삼일논리는 하나가 셋 혹은 다수이고, 셋 혹은 다수는 동시에 하나이기도 하다는 존재론적 논리이다. 여기서 셋이나 다수는 천지인 혹은 천지만물을 지칭한다. 천은 하나이면서도 지와 인을 포함하기 때문에 셋이기도 하다. 지와 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일즉삼 삼즉일이다. 하나에서 만물이 나오니 만물은 모두 하나이다.
통일논리는 천하만물 모두 소통·연결된다는 기능론적 논리이다. 합일이란 상이한 개체를 융합시켜 새로운 하나를 만드는 통합이 아니다. 서구의 유물론적 변증법이 상정하는 정반합도 아니다. 종합도 아니다. 세상만사를 모순의 관계로 파악하기보다는 상대적 혹은 대대적 관계로 인식하여 이 “상대론”을 중도에 의해서 “중화”시킨다는 의미에서의 통일이다. 독자적 개별 존재의 특성 혹은 개별성을 무시하는 획일화나 단일화의 의미를 함축하는 통합으로서의 통일(統一)보다는 존재와 존재를, 심적으로 혹은 인식론적으로, 하나로 소통·연관시키는 통일(通一)로서 이해한다.
귀일논리는 천지만물은 모두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가치론적 논리이다. 그러나 이 말의 뜻은 천지만물 각각은 본래 그 자체가 하나성을 내재화한 ‘하나임’의 존재이므로 새로이 하나로 돌아간다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의 ‘하나임’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천지인합일을 추구하는 하나논리의 최종적 실천 목표는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현실적으로 작동하는 모든 구분과 구별, 차이와 차별, 경계와 장벽, 대립과 모순 그리고 한계와 초월을 상호 소통/연결/화합시키는 하나논리의 이론적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것이 바로 통일(通一)의 논리이다. 인간의 인식틀은 이분법적 혹은 삼분법적 사고방식을 피하기 어렵다. 이는 유용한 사고방식이지만 여기에 머물러 집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따라서 하나논리는 일즉삼 삼즉일의 삼일논리를 구사하여 하나로부터의 모든 파생과 분화를 설명하고, 이를 다시 하나로 되돌리면서 깨달음이라는 귀일논리에 이르는 것이다.
후천 정신개벽이라는 문명사적 대전환을 꿈꾸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하나논리는 깨달음이라는 동아시아 특유의 신비주의 세계를 지향하며 신인합일의 경지를 추구한다. 그러나 하나논리는 깨달음을 저 먼 곳의 유토피아적 차원에서 발견하지 않는다. 세속의 일상에서 수신수행의 과정을 통해 순간순간 수시로 만나는 자유해방의 세계 혹은 안빈낙도, 안심입명, 안분지족이라는 안락의 세계로 이해한다. 이에 더하여 이 책은 중도자비의 마음으로 사랑을 실행하면 깨달음은 성통공완(性通功完)의 경지인 도통득도, 무위자연, 인의예지, 홍익인간에 들어선다고 말한다. 사람이 자신에게 선험적으로 부여된 천지인합일이라는 ‘하나임’의 존재성을 깨닫고 하나(의 본)성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내용을 지닌 하나논리는 후천 정신개벽이라는 문명사적 대전환을 꿈꾼다. 천지인합일의 깨달음을 지향하는 정신문명의 주도하에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이 물아일체의 조화를 이루는 우주론적 전망이자 모든 차이와 구분을 연결하려는 통일(通一)의 사회이론,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하나이론이다.
하나논리의 실천적 과제: 천지인합일의 균형 회복
이 책은 우리가 현재 당면한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인간에 의한 천지인합일의 파괴에 있다고 진단하고, 후천 정신개벽을 지향하는 문명전환의 이론으로서 하나논리가 인간에 의해 파괴된 천지인합일의 균형 회복이라는 실천적 과제를 갖는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천지자연을 교란하는 인구과잉, 인간 예외주의, 탐욕과 집착으로 팽창 일로에 있는 인간 폭력성을 치유하기 위해서 허망한 행복을 공격적으로 혹은 경쟁적으로 추구하는 향락(적 소비)주의, 자유의 환상만을 심어주는 선거민주주의, 평등이라는 미명 아래 유지되는 법치주의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인간의 폭력화를 제어하는 현실적 방안을 다양하게 모색한다. 이와 더불어 깨달음이라는 자유해방의 세계를 현실적으로 보장하는 각종 자유권을 계속 확대해나가는 길을 모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