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른들이 쓰는 말 뒤에 가린 예쁜 마음들 ]
열 살도 채 안 된 어린아이들이 사귀었다 헤어졌다 하고, 데이트라는 말을 입에 오르내리는 걸 보면 되바라진 아이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냥 특별히 좋아하는 친구 정도면 될 텐데, 굳이 어른들 말이나 행동을 흉내 내는 게 탐탁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이 서로 좋아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게 되면 풋풋한 마음이 피어오른다. 좋아하는 마음을 당돌하게 잘 표현하는 아이도, 표현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해 쭈뼛쭈뼛하는 아이도 모두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이성 친구의 매력에 끌려서 마음이 콩닥거렸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 처음이 언제였는지는 제각각 다를 테고, 첫 떨림의 기억 또한 선명할지도 어른이 되면서 흐려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건, 그 마음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생겨나며 순수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마음의 움직임을 빠르다, 늦다 같은 기준을 정해 두고 속도를 맞추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마음의 크기도 마찬가지다. 다만 아이가 자기 마음의 상태를 잘 들여다보고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부모나 다른 어른들도 무턱대고 아이가 이성 친구 사귀는 걸 반대하거나 찬성하기보다는 처음 겪는 감정의 변화에 관심을 가져 주고, 아이들이 자기 마음 밭을 가꿀 수 있게 응원해 주면 좋겠다. ‘사귀다’, ‘데이트’, ‘연애’ 같은 말들은 주로 어른 세계의 말이었다. 시대에 따라 사용자의 연령이 변하기도 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어감이 달라질 수 있지만, 이런 말 뒤에 가려 있는 아이들의 예쁜 마음은 늘 변함이 없다. 특별히 누군가에게 마음이 가고, 좋아하니까 함께 신나게 놀고 싶은 것. 그게 연애라고 한다면 이들의 반짝반짝 첫 연애를 언제나 응원한다.
[ 아이도, 어른도 끊임없이 성장한다 ]
유찬이는 선생님과 친구들 앞에서 ‘오늘부터 1일’을 선언하고 첫 연애를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기뻐해 줄 줄 알았던 엄마의 반응이 영 뜨뜻미지근하다. 아빠도 딱히 반대는 안 하지만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없다. 그냥 친구에서 여자 친구가 된 해나네 집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자기랑 해나가 나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어른들이 두 사람의 연애를 반대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좀 별로다. 그렇다고 가만있기는 싫고, ‘우리 계속 사귀게 해 주세요.’ 하고 떼쓰는 건 더더욱 싫다. 어른들의 마음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찬이는 아빠에게 조언을 구하고 스스로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모색해 해나와 의논한다. 유찬이와 해나가 자기들이 얼마나 멋진 어린이인지 서로의 부모님께 알려 드리겠다고 애쓰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대견하다.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는 어른들의 생각보다 훨씬 의젓한 것 같다. 물론 그 또래의 아이들이 여전히 아기
같은 모습을 보일 때도 많아서 두 사람이 이성 친구를 사귀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들이 좋아할
수만 없었던 마음을 충분히 짐작한다. 게다가 부모님도 연애를 시작하는 자녀를 지켜보는 건 처음이 아닌가! 뭐든 처음은 어렵다. 다만 마음을 열고 아이와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