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자신을 치는 수도자처럼
아름다운 언어로 쓰여 곱고 좋은 것만 노래하는 시도 있지만, 시인의 언어에는 치열한 삶과 신앙이 감춰져 있다. 한여름 무성한 잡초처럼 어지러이 자라던 인생으로 표현한 그는 함량 미달의 목사임을 날마다 참회하는 철저한 신앙을 시어에 묻어 두었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면서도 인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과 정직하게 마주하려는 다짐이 시구마다 묻혀 있다. 하나님 앞에 성숙해지려고 애쓰는 소년처럼 부족함을 토로하는 시는 자신을 보는 거울처럼 느껴져서 도리어 위안을 우리에게 묻히고 있다.
이 책은 매일 성경을 묵상하고 되새김질하는 가운데 벌거벗은 자신을 볼 수 있도록 눈을 밝히시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시인하는 반성문이기도 하다. 목사라고 불리지만, 손가락질 받지 않기 위해 더 많이 숙이고 더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삶을 엿볼 수 있다. 긴 시간의 설교를 다시 짧은 시로 함축해서 주보에 실어 전하던 것들도 함께 모은 설교 같은 시에서도 시인의 묵상의 깊이를 엿볼 수 있다. 청중을 향하던 설교가 압축된 시에서는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지만, 그 울림은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영혼을 돌보듯 파종한 작물을 돌보는 농부 목사의 시령가
8년 전 경남 사천 정동면 예수리(禮樹里)에서 개척 교회를 시작한 시인은 평생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살려는 마음으로 농사를 시작했다. 단감과 고추와 마늘과 호박 등 온갖 작물을 부지런히 심고 가꾸면서 어르신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제는 나락 농사를 하고 마을 이장이 되기 위하여 새마을 지도자로 봉사하며 애쓰고 있지만, 여전히 자신을 허접한 농부로 고백한다. 한편 목사와 교회는 마을의 것이라는 공공신학을 꿈꾸는 시인은 마을의 모든 어르신들을 섬기고 챙기는 목사이기도 하다. 농부이자 목사로서 시인의 관심은 일 년 이십사절기와 교회력에 모아진다. 뙤약볕 아래 김을 매며 묵힌 단상과 성도들과 마을 사람들 이름 하나하나 부르며 기도할 때의 묵상이 시어로 열매를 맺었다.
이 책은 입춘부터 대한까지, 그리고 이른 봄에 찾아오는 사순절부터 이듬해 1월의 주현절까지 봄에서 시작하여 이듬해 봄까지 이어지는 시간 가운데 농사 짓는 농부의 마음으로 목회하고, 영혼을 돌보는 목자의 마음으로 작물들에게 축복을 건네는 시인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도시의 시간에 갇혀서 주말과 휴일만 기다리는 현대인들에게 목가적 풍경 속에서 절기와 교회력을 따라 주어진 대로 살아내는 시인의 삶의 모습은 시가 주는 위안을 맛보게 한다.
또다시 봄을 봄
팍팍한 삶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3년의 팬데믹이 끝나는가 싶었더니 경기 침체의 늪이 삶을 조인다. 시를 읽는 것조차 사치처럼 여겨지는 시대와 그런 세상에 매몰되어 있는 인생들에게 봄을 기대하는 시인의 시구는 ‘부러워하지 않아도 되고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위로해 준다.
“부디 / 혹한의 시간에도 / 푸르른 것들 / 부러워하지 않기를 / 고난과 헐벗음 / 부끄러워하지 않기를”
자연의 정직함과 시절의 규칙성을 확신하는 시인은 또다시 봄을 확언한다.
“풀꽃은 이렇게 / 정직하고 / 시절은 이렇게 / 어김이 없도다 / 싱그럽고 어여쁜 / 너와 나를 비집고 / 우리네 가슴 가슴 / 봄을 캐도다”
봄은 언제 왔다가 가는지 모르게 손에 잡히지 않을지언정 봄은 여름을 기대하고, 여름은 열매를 바라며, 또 추운 겨울은 나목(裸木)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서 다시 봄을 꿈꾸게 한다. 이 책의 어떤 시는 문법에 틀린 비문 같고, 어떤 곳은 맞춤법을 비껴가는 듯하지만, 시인은 시어를 고치고 또 고치면서 독자들에게 논밭에 투박하게 감추어 둔 의도를 읽어줄 것을 요청한다. 의도를 읽을 수 있으면 시는 더욱 길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