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유롭지 않을 자유가 없다!”
현실의 장벽에도 끊임없이 나아갈 방법을 모색하는 사르트르의 삶과 철학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고도 ‘작가가 제도의 일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해 많은 이를 놀라게 한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 이는 외부의 평가나 권위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삶의 주도권을 쥐고자 한 그의 사상과 실천을 뚜렷이 보여주는 결정이었다. 이 외에도 보부아르와의 계약 결혼, 카뮈와의 공개 논쟁 등 격식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파격적 행보를 통해 사상과 삶의 일치를 꾀한 그에겐 ‘자유의 철학자’라는 별명이 붙는다. 인간과 자유라는 문제에 천착해 ‘인간은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한 사르트르가 생각한 주체적 삶의 필수 조건은 무엇일까?
사르트르는 활동하던 시대에는 ‘인간은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없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 될 수 없다’고 대답하는 일군의 정신분석학자들과 구조주의자들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현실의 굳건한 장벽 앞에서 인간의 주체성을 주창하는 사르트르의 사상은 동시대 학자들에게 한물간 이야기로 취급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주체적 삶을 예찬하고 권장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또한 1970년대 권력을 비판하다 수감된 우리나라 시인 김지하를 구명하기 위해 성명에 동참하는 등 참여 지식인으로서 자유로운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여러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이처럼 인간의 주체성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 사르트르의 사상은 《구토》,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존재와 무》 등의 저서를 통해 오늘날까지 많은 이에게 삶을 향한 새로운 힘을 불어넣고 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주체적인 인생에 필요한 든든한 지적 토대를 쌓고자 한다면, 사르트르 사상의 핵심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해보자.
정교한 분석과 풍부한 예시로 함께하는 사르트르 철학의 정수
과연 사르트르는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았을까?
이 책의 1부에서는 우선 사르트르가 어떤 삶을 영위했는지 살펴본다. 여기서 주목하는 네 개의 주요 사건은 아버지의 때 이른 죽음, 청소년기의 폭력 체험, 보부아르와의 만남, 제2차세계대전이다. 사르트르의 저서에서 그의 목소리를 직접 인용한 짜임새 있는 서술은 당시의 상황과 각 사건이 이후 사르트르의 사상에 미친 영향을 긴밀히 따져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
2부에서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사르트르의 이해에 접근해본다. 사르트르 사상의 주요한 두 노선에 해당하는 저서 《존재와 무》와 《변증법적 이성비판》을 중심으로 ‘실존주의’와 ‘인간학’의 관점에서 인간에 대한 사르트르의 생각을 알아본다. 이를 통해 ‘우리-주체’, ‘대자존재와 즉자존재’, ‘의식의 지향성’ 등 사르트르 철학의 주요 개념을 익히는 한편 사랑, 무관심 등 우리가 타자와 맺는 관계에 대해서도 고찰해본다.
3부에서는 인간의 주체적 삶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들과 그 극복책을 역시 실존주의와 인간학이라는 사르트르의 시각에서 살펴본다. 인간이 자유·주체성·가능성·초월의 상태로 만나 대립·갈등·투쟁을 극복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우리-주체를 형성하기 위한 길을 모색하며,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에서 주체적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방법들을 갈래별로 정리한다.
이같이 정교하게 짜인 철학 여정에는 사르트르가 직접 활용했던 다채롭고 풍부한 예시가 함께한다.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 공공장소에서 벌어지는 애정 행각, 선수 개인의 기량은 좋은데 팀워크가 좋지 않은 축구팀 등 여러 흥미로운 예시가 이론적인 논의를 현실 세계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독자들을 돕는다.
그렇다면 스스로 주인이 되는 삶을 끊임없이 말한 사르트르는 과연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사는 데 성공했을까? 사르트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래 40여 년간 사르트르를 연구해온 저자 변광배는 사르트르 철학에서 발견한 주체적 삶의 조건들을 하나하나 나열하며, 각 조건을 사르트르의 삶과 연결해 그 실현 여부를 가늠해본다. 이러한 작업은 철학이 현실의 삶과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주체적 삶을 향한 사람들의 끝없는 노력을 뒷받침하는 지적 원동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