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맹자』 같은 옛글을 삶의 양식으로 삼을 것인가,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읽을 것인가? 당연하게 들리겠지만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옛글의 가치는 달라진다. 한문 텍스트에 대한 정밀한 해석력으로 정평이 나 있는 전호근 교수는 글자 한 자 한 자를 치밀하게 풀이하면서도 우리 삶 속에 살아 있는 ‘삶의 문법’을 발견하여 재맥락화하는 고전학자이다. 이를테면, 그는 羊(양), 美(미), 善(선), 義(의) 자를 풀이하면서 고대 동아시아 사회에서 최선의 가치로 생각한 일이 소유를 나누는 일, 즉 ‘분배’였음을 말한다. 고대 동아시아인들이 가장 중시한 가치를 가리키는 글자인 美(미), 善(선), 義(의) 자에는 모두 羊(양)이 들어가 있다. 이를 통해 보면 그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여긴 것[美]이 커다란 양[羊+大]임을 알 수 있고,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가치[善]는 양을 골고루 나누어 먹는 것〔羊+㕣〕이다. 정의를 뜻하는 義(의) 자 또한 창이나 칼 따위의 날카로운 물건으로 양고기를 썰어내는 모습〔羊+手+戈〕을 그린 글자다. 왜 썰까? 나누어 먹기 위해서다.
그는 현재의 가치를 반영하여 고전을 새롭게 읽기도 하고, 고전의 가치를 되새기며 현실을 재해석하기도 한다. 그에게 공자와 마구간 일화(마구간이 불탔다는 소식을 들은 공자가 당시 사람보다 훨씬 값어치가 나갔던 말[馬]에 대해 묻지 않고 “사람이 다쳤느냐?”라고 물었다는 이야기)는 세상의 가치 서열을 송두리째 뒤엎는 놀라운 이야기이며, 『사기』는 실패한 자들에게 바치는 사마천의 헌사다. 또 수고롭게 일한 자들의 처지를 대변한 묵자의 철학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 노동자들의 처지를 반추하며,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불길에 뛰어들어 휠체어를 타고 있던 할머니를 구한 춘천의 세 청년에게서 ‘출척측은지심’을 읽는다. 공자는 목수에게서 정직을 배웠는데, 왜 우리는 목숨을 걸고 아이들의 시신을 꺼내려고 바다에 들어간 세월호 잠수사에게서는 배우지 못하는지 탄식하기도 한다.
그는 권력화된 전통은 깨야 한다고 여기지만 선대 지식인들이 오랫동안 지켜왔던 삶의 태도는 되살리고자 한다. 암흑의 시대를 살면서도 사대부의 윤리를 체화한 퇴계 이황, 비록 실패했으나 죽을 때까지 백성의 삶을 생각한 율곡 이이, 세상은 그를 버렸으나 끊임없이 세상을 바꾸겠다는 뜻을 접지 않은 다산 정약용, 나라가 망하자 ‘평소에 읽은 글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목숨을 끊은 매천 황현의 결기를 이야기할 때는 지식인으로서 무거운 책무를 지고 있다는 자기인식과 성찰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