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배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동시와 웹툰으로 만날 수 있는 책
〈명태를 타고 온 아이〉는 1950년 12월, 어려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피란민을 무사히 구출한 기적의 배 메러디스 빅토리호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연작 동시집이다. 글을 쓴 홍정화 시인은 실향민인 외가 어른들과 어머니가 들려준 피란 경험을 어린 시절부터 촘촘히 기억 창고에 모아 왔고, 이를 요즘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시 한 편 한 편에 정성스럽게 풀어냈다. 여타 동시집과 달리, 웹툰 형식을 가미한 삽화 또한 전쟁이라는 소재가 다소 어렵게 느껴질 어린 독자들의 재미와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쟁을 겪은 할머니, 그 후손인 우리 엄마와 나, 3세대 모두의 이야기를 동시로 읽다
프롤로그 "명태를 타고 온 아이"를 포함해 총 47편에 이르는 연작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에서는 전쟁 피란민들의 후손인 현재 아이들의 일상생활을, 2부에서는 70여 년 전 피란길의 고난과 희망을, 3부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만남, 한국전쟁뿐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전 세계의 재난과 어려움 등을 순차적으로 다루고 있다. 각각의 시가 완결성을 갖추고 있기에 어느 페이지를 먼저 펼쳐도 쉽고 가볍게 읽히지만, 책을 덮을 즈음에는 세대를 아우르는 한 편의 역사 다큐멘터리를 본 듯한 감동이 묵직하게 남는다.
아이에게 알려 주고 싶은 역사,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역사
동시를 쓰는 어른 시인들의 의도는 어떤 것일까? 어린이와 시선을 맞추고 그들의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 것일까? 여러 가지 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동시집 〈명태를 타고 온 아이〉에서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함께 나누려고 노력하는’ 마음이다. 시인은 이제 어릴 적 들었던 전쟁 이야기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징검다리 같은 중간 세대의 위치에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잔혹하지만 그 안에 따뜻함도 깃들어 있는 과거에 대해 들려주고 싶어 한다. 영문도 모른 채 고향을 떠나야 했던 아이들과, 그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내밀었던 사람들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 무서워할까 봐 / 피난 이야기는 쏙 빼고 / 명태 타러 가자고 둘러댔어요./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 아이들도 명태도 / 서로를 잊지 않았어요.
- 프롤로그 ‘명태를 타고 온 아이’ 중에서 부분 발췌-
추운 겨울, 어린 자녀들에게 차마 전쟁에 대해 솔직히 말하지 못하고 이북에서 친숙한 먹거리인 명태를 빌어 피란길로 이끌었던 과거의 어른들도 어쩌면 같은 심정이었을지 모른다. 그들이 삼킨 고통스러운 마음을 대신해 아이들에게 둘러댄 말들은 마치 다정한 시어처럼 들린다. 명태는 피란민들이 타고 온 메러디스 빅토리호인 동시에, 전쟁이라는 큰 비극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해 안전한 해안가에 도달시킨 반짝이는 시간의 물결이기도 하다. 피란민 아이의 아이로 태어난 시인, 시인이 성장해 낳은 아이, 이 책을 읽게 될 모든 어린 독자들도 그 쉬지 않는 물결을 타고 온 아이들이다. 아마도 한국전쟁에 관한 보기 드문 연작 동시집으로 남을 〈명태를 타고 온 아이〉는 험난한 역사를 극복하며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나누었던 무수한 시들의 속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