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일의 상소 〈을묘사직소〉를,
가장 알기 쉬운 ‘빙고(憑考)’ 번역으로 읽는다!
조식의 〈을묘사직소〉는 조선의 유학자들에게 파천황(破天荒)의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상소는 조선의 상소 중 첫손가락에 꼽힐 만큼 유명하다. 그러나 요즘의 우리들 중 이 〈을묘사직소〉 전문을 직접 읽은 사람은 거의 없다. 무엇보다도 이 상소문을 읽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말은 알쏭달쏭하고 뜻은 어렴풋하다. 한문 원문은 말할 것도 없고 한글 번역문조차 읽기 힘들다.
한문으로 쓰인 글은 많은 전고(典故)를 포함한다. 전고란 경전이나 역사책에 나오는 사건과 인물, 과거의 제도나 관습 등을 말한다. 전해 오는 성현의 말씀이나 옛날의 사실 이야기를 근거로 삼아 현재의 일을 말하고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엄격한 관행을 따르는 상소문은 좀 더 많은 전고를 사용한다. 임금에게 아뢰는 상소문에는 조금이라도 사실과 다른 부분은 있을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전고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 〈을묘사직소〉의 기본적인 문맥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을묘사직소〉를 읽는 일의 어려움은 단지 전고 때문만은 아니다. 글과 말로 표현하는 일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조식의 표현 방식이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조식은 “말은 간략한 것을 귀하게 여긴다(言以簡爲貴)”고 생각했다. 주희(朱熹)와 같은 위대한 학자들이 유학의 이념을 밝힌 송나라 시대 이후로는, 굳이 “글을 쓸 필요가 없다(不必著書)”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제자들을 가르칠 때는 제자들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꼭 필요한 실마리만을 알려 주었다. 이와 같은 표현 방식은 〈을묘사직소〉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이에 이 책에서는 현재의 독자가 〈을묘사직소〉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글자 한 글자 가능한 한 자세하게 풀이한다.
전고의 경우, 어떤 상황에서 이 전고가 만들어졌는지 전고의 출전과 유래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전고는 500년 전의 유학자들이라면 대부분 이미 알고 있어 굳이 길게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에게는 별 다른 사전 지식이 없다면 도저히 알 수 없는, 생소하기만 한 것이다. 그러므로 해당 전고의 출전은 물론, 때에 따라서는 원문의 일부까지 인용하여 소개한다. 조식 당대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왜 이와 같은 사건이 일어났는지, 조식은 어떤 맥락에서 이 일을 언급하는지 살펴본다.
번역문의 일부로서 풀이하기도 하고 주(注)를 덧붙여 부연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축어(逐語) 번역과는 꽤 다르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주해(注解) 번역’이라 할 수도 있고 ‘빙고(憑考) 번역’이라 할 수도 있다. 주해(注解)란 본문의 뜻을 알기 쉽게 풀이한다는 말이고, 빙고(憑考)란 여러 가지 근거에 비추어 상세하게 따져본다는 말이다. 이 책은 구구절절 소상하게 풀이한다. 풀이하고 또 풀이한다. 번역서라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이다. 그러나 이 책의 옮긴 이는 지금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번역서도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본다.
〈을묘사직소〉는 땅에 발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 유학자 조식의 학문을 담고 있다. 백성의 고통을 생각하며 통곡하던 선비 조식의 애탄 절규를 들려 준다. 대장부 조식의 높고 굳센 기상을 보여준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조식의 모습을 현재의 독자들에게도 생동감있게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