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현장재난인문학인가-재난 이후의 지역문화와 피해자의 민속지」는 2011년 3월 11일 동일본에서 발생한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그 여파로 발생한 도쿄전력후쿠시마제1원전사고라는 복합적 재난에 직면한 이후 출간된 일본의 연구서(「震災後の地域文化と被災者の民俗誌-フィールド災害人文学の構築」, 2018, 新泉社)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 책은 인류학적ㆍ민속학적 관점에서 재난지역의 전통문화와 민속예능 등 무형문화유산의 ‘재난 후 부흥’이 피해자와 지역의 생활 재건 및 공동체의 부활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며 조명한 연구자들의 논고를 엮은 것이다.
참여 연구자이자 편저자 중 한 분인 다카쿠라 히로키 교수는 서론에서 ‘현장재난인문학’을 “현장 조사 방법을 이용하여 사회적 가치의 학술적 탐구를 하면서 재난부흥에 관여하는 실천적 학문”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는 또 현장 조사를 주요 연구 방법으로 삼는 ‘문화인류학, 민속학, 종교학’이 역사적인 경위와 문화적인 배경 안에 존재하는 개인과 사회가 재난 부흥을 위한 지원을 어떻게 실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지침을 제시해 줄 중요한 정보라고 강조하며, 우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재난 앞에서 왜 ‘현장재난인문학’에 눈을 돌려야 하는지를 일깨워준다.
특히 대지진과 쓰나미에 의한 재난에 더해 원전사고라는 ‘핵 재난’까지 겹친 복합재난으로 하루아침에 가족과 삶의 터전을 상실한 채 고향을 떠나 일본 각지로의 피난이 불가피해진 후쿠시마현을 비롯한 동일본의 이재민들 및 지역공동체와 연대하며 재난부흥 과정에 참여하였던 연구자들은, 각 지역의 종교 의례와 마쓰리(祭り) 같은 민속예능과 그를 위한 유형문화재(예능을 위한 용구 등)의 부흥이 지역공동체의 물리적 부흥뿐 아니라 피해자들의 정신적 치유와 관계회복 및 재건에 적지 않은 효과를 발휘하였음을 절감하였노라고 밝히고 있다. 나아가 재난과 그 부흥의 역사를 돌이키고 그 안에서 발휘되는 민속예능 등 무형문화유산의 가치를 알고 행정적ㆍ학술적 측면에서의 자료정리와 목록화 및 민속지(誌) 등을 이용한 지역주민과의 공유 작업은, 현재 인류가 직면하고 있고 앞으로 직면할 수 있는 재난에 대한 방재(防災) 및 감재(減災)를 위한 대책이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그야말로 본 연구 사업단의 아젠다인 〈동아시아 재난의 기억, 서사, 치유-재난인문학의 정립〉에서 특히 ‘서사와 치유’의 현실적 모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일본은 지진과 쓰나미, 태풍과 홍수 등의 자연재해뿐 아니라 1945년 8월의 원자폭탄에서 2011년 후쿠시마원전사고에 이르는 핵 재난의 반복과 미나마타병이나 욧카이치 천식과 같은 공해병 사건 등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는, 이른바 재난의 대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이처럼 길고도 다양한 재난의 역사를 가진 일본의 민중들이 그와 같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부흥 및 재건에 성공했는지를 보여주는, 요컨대 재난의 대응과 부흥을 위한 살아 있는 지혜의 보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본 연구 사업단의 2단계 사업의 주제 가운데 하나인 종교의례와 민속예능이 재난부흥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재난의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재난인문학적 차원에서 입증하고 있어, 그야말로 ‘재난인문학의 정립’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모범적 사례의 하나가 될 것이라 확신하는 바이다.
본 번역서의 구성과 내용에 대한 도움말을 두 가지 정도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는 구성순서에 얽매이지 말고 관심 있는 주제의 장을 찾거나 무작위로 펼쳐진 장부터 읽어도 좋으리라. 전반부인 제1부와 제2부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3대 재난피해 지역의 민속문화 및 예능의 부흥과 그 의미에 대한 현장 조사와 연구결과를 묶은 것이고, 후반부에 속하는 제3부와 제4부는 이상의 세 지방에 전해지는 재난희생자에 대한 위령이나, 재난의 피해자들이 재난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심리적ㆍ생활적 안정을 찾아가는가에 관해 서술한 것이다. 어느 장에서 어떤 주제가 논의되고 있는가는 편저자의 서론이 길라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둘째는 본 저서에는 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원전 사고에 의해 재난을 입은 일본 도호쿠 지방의 무형민속문화재와 전통적인 마을 축제에 해당하는 ‘마쓰리(祭り)’ 등이 다수 소개되고 있다. 무엇보다 재난 이후 부활의 경위와 그 의미가 사례를 통해 알기 쉽게 서술되고 있는데, 이러한 이야기들을 따라가며 흥미로운 문화재나 축제에 관해 좀 더 깊이 조사해보는 재미를 누려보길 바란다. 예컨대 본문 중에 소개된 웹사이트를 방문해보면, 가령 일본어를 모르더라도 해당 영상과 자료사진들을 통해 관련 민속문화재나 예능을 좀 더 사실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여유가 생긴다면, 우리 주변의 민속문화재와 전통 예능의 현주소를 돌이켜보고 지진(우리나라도 더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닌 만큼)이나 대규모 화재로 유실되었거나 눈부신 물질문명과 경제 우선주의에 쫓겨 망각할 위기에 놓인 우리의 민속문화와 전통 예능에 관심을 가져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