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동시로 그려내는 유니버스
동심으로 바라보는 메타버스”
동화 동시는 어린이가 보는 책이라는 상식이 지배하고 있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서열이나 능력이 낮거나 모자란다는 통념이 지배한다. 따라서 동화·동시 작가도 그러한 통념으로 인한 오해로 인해 안타까울 때가 많다.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다.
복잡하게 꼬여버린 문제의 실타래를 푸는 일을 결자해지라고 한다. 원인 제공한 사람에게 해법이 있다는 말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다. 달리 비약해서 어른일수록 동화나 동시를 가까이해야만 하지 않을까? 어린이의 눈에 어른은 단순한 문제를 크게 비화시켜 복잡하게 하는 도사이기 때문이다.
어른은 세상의 어린이에 불과하다. 매 순간 성인은 초심자에다
가 어린이일 수밖에 없다.
동화와 동시는 어른의 돌아갈 수 없는 과거 유토피아이자 순수한 눈에 비친 메타버스를 구현한 지대를 그려낸 은유이다.
작가의 순수한 눈과 가슴이 없이는 구축할 수 없는 거점인 것이다.
2023 신춘문예에도 훌륭하고 참신한 동화·동시 부문 작가들이 꿈꾸는 메타버스가 탄력을 받았다.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지표가 하루가 다르게 밀려오고 코로나19의 잔재가 곳곳에 남았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동심의 투사가 명약이 아닐까. 모두가 어른이 일으킨 것인데 동심의 눈으로 볼 때 역발상의 지혜가 떠오른다. 동심은 귀향을 꿈꾸는 노마드의 이상향처럼 회귀하기 어려운 곳이다. 누구나 꿈꾸는 지점이지만 그 지점을 터부시하고 애써 외면했던 모두의 자리였다. 그러한 장면을 설정하고 감각적 터치와 구도를 형상화 시켜 가랑비처럼 적셔주는 동화·동시 작가는 보석같이 귀하다.
동화·동시를 가까이하는 습관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한다. 아이는 초인의 표상이기도 하다. 예술의 위력을 유일한 구원의 도구로 바라본 니체는 어린이에게서 그 모티프를 발견했다.
동화·동시 작가의 발굴이 급하고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가정에 웃음이 만발하고 사회적 공동체가 살아 숨 쉬는 저력도 아이 키우는 어머니의 모성이 본성 속에 살아 숨쉬기 때문이지 않을까.
동심은 사심이 없는 순수한 이끌림의 에로스적 충동을 지닌다. 어른의 힘은 초심에서 나온다.
초심으로 돌아가면 얽히고설킨 매듭이 풀릴 수 있다.
동심의 한복판을 발견하고 머물고 걷는 사람은 허투루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있는 것을 사랑하고 불행한 사람은 없는 것을 사랑한다’라고 한다. 누구에게나 있는 동심을 사랑하는 것이 미지의 행성에 고향을 세우는 불안을 잠재울 것 같다. ‘창백한 푸른 점’ 같은 미미한 존재인 자신의 고향을 사랑하는 것은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떠날 수밖에 없는 천형 같은 운명을 안고 사는 불확실성에 대한 해답도 내가 딛고 서 있는 원형인 동심에 그 해답이 있다. 수구초심, 잠든 동심을 찾아 오래된 책장과 서점의 동화동시집에 손을 뻗어 중장년이 애독하여 힘과 지혜를 재충전하는 원년이길 다짐해 본다.
메타버스 세상은 동심에 이미 열려있다. 저 멀리 잡히지도 보이지 않는 기상천외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순수하고 훌륭한 작가의 동화와 동시 안에 새봄 꽃으로 피어있다.
이제는 꽃밭을 거닐고 향기를 맡으며 나름의 색깔로 그려나가면 된다.
새봄 동화·동시 작가의 탄생을 축하드립니다.
2023년 1월
박시연(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