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과 상실의 시대
박후기 시인이 들려주는 그림 처방전
시와 사진과 그림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박후기 시인이 이번엔 직접 그린 53점의 그림과 그 그림에 어울리는 글을 덧붙인 『그림약국』을 펴냈다.
“누군가를 생각할 때 기쁨보다 슬픔이 먼저 찾아온다면, 당신의 사랑은 어딘가 아픈 것이 분명하다”며 아픔과 상실이 지배하는 우리 시대의 사랑을 진단한 시인은 연필과 파스텔만을 이용해 그린 그림으로 상처 치유법을 일러준다. 일종의 사랑 처방전인 셈.
시를 통해서 상처의 궁극을 맛보았고, 그림을 통해서 치유의 가능을 보았다는 박후기 시인은 시의 함축이 가장 원시적인 형태로 드러난 것이 그림이라고 단언한다. 침묵은 시가 지닌 여백의 또 다른 형태이며, 그림은 이러한 시의 특성을 가장 적절하게 보여주는 장르라는 것.
세상의 모든 사랑은 사랑의 결핍으로부터 오며, 사랑의 결핍을 보충해 주는 방법 역시 사랑밖에 없다고 말하는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처세론적 처방전과 아울러,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상실감을 주고 있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처방도 함께 그려내고 있다.
이미 사랑을 시작했거나 사랑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그림과 처방전 같은 문장들
“감기처럼, 사랑은 치료약이 없으니 내 마음에 들어온 당신을 그저 앓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각자 병명을 움켜쥐고 산다. 배가 아플 땐 배를 움켜쥐고 살고, 머리가 아플 땐 머리를 움켜쥐고 산다. 그리고 너라는 이름의 병을 앓고 있을 땐 저린 가슴팍을 움켜쥐고 산다. - 본문 중에서
누군가의 당당한 모습 뒤에는 힘겨운 뒷모습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 사람 나에게 당도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불면과 떨림과 희생의 각오를 다지며 길을 건너왔을까를. 내 앞에서 환하게 웃기 위하여 그 사람 얼마나 많은 시간을 돌처럼 인내하며 살아가는지 생각해보자. - 본문 중에서
말이 없다고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며, 듣지 못한다고 해서 마음속 사랑의 느낌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 귀는 이 우주가 내는 소리의 극히 일부분만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듣기 쉽지 않은 작은 몸짓의 속삭임, 그것은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상처받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랑하고 싶다면, 먼저 귀를 기울이자. 사랑하고 있다면, 사랑하는 이가 말하는 마음의 언어를 배우자. -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