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백신을 맞을지 안 맞을지는 지지하는 정당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의 목을 조여 오는 코로나
역병, 전쟁 등 큰 재난이 일어나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면, 그 혼란을 이용하려는 세력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팬데믹으로 인한 혼란을 이용하는 것이 국가라면? 어느 누구도 자신이 속한 국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기에 더 위험한 상황이다. 정치학자 김정연 교수는 전 세계 곳곳에서 팬데믹 상황을 국가가 이용해, 민주주의가 쇠퇴하는 현상을 경계한다. 코로나 팬데믹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각국 정부는 ‘코로나-19와의 전쟁’, ‘코로나 백신 전쟁’, ‘방역 난민’ 등 전쟁 상황에서 사용될 법한 언어들을 자주 사용해 왔다. 그렇게 전쟁의 언어로 국민들의 두려움을 자극해, 안전을 위해서라면 민주주의는 잠시 미뤄둬도 된다는 듯이 반민주주주의적 조치들을 시행했다. 김정연 교수는 각국 정부에 자극적인 언어와 반민주주의적 통제보다는 민주주의적 설득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한다.
코로나 전파와 백신을 둘러싼 가짜뉴스들은 혼란 속의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정치학자 이병재 교수는 팬데믹 시국에 가짜뉴스가 디지털 매체를 통해 어떻게 전파되는지 이야기한다. 코로나 이전에도 가짜뉴스는 전염병 발병 같은 위기 상황이 일어날 때마다 널리 퍼져나갔다. 이병재 교수는 이런 가짜뉴스가 왜 위험한지 근본적인 원인을 지적한다. 바로 가짜뉴스 뒤에는 소수 집단에 대한 증오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초 스페인 독감이 유행했을 때, 미국에서는 독일 스파이들이 미국에 독감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루머가 돌았었다. 코로나 시국인 지금은 중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루머로 인해 중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이 차별당하거나 폭행당하는 일이 급증하고 있다. 가짜뉴스는 이러한 혐오를 표출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가짜뉴스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정보의 진실성을 파악할 수 있는 문해력을 갖춰야 한다고 이병재 교수는 말한다.
가짜뉴스 중에서도 특히 위험한 것은 코로나 백신과 관련된 가짜뉴스이다. 정치학자 송정민 교수는 백신 접종이 어떻게 정치적 이슈로 변질되어 갈등을 일으켰는지 분석한다. 코로나 이전에도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루머 때문에 영유아 백신, 인유두종 백신 등의 접종률이 떨어졌었다. 코로나 시국에 와서는 전 세계가 같은 병에 대한 백신을 맞게 되면서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적대적인 관계나 미덥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나라에서 개발한 백신은 거부한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에서 백신이 위험하다고 해도 백신을 거부한다. 그러면서 백신 접종률은 정체되고 사람들은 더 큰 위험에 놓인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송정민 교수는 백신을 둘러싼 갈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이익이 국민들의 생명에 우선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통렬하게 비판한다.
코로나 덕분에 발견한 비대면 정치 참여의 가능성
노년층의 코로나 블루, 트로트 가수들이 책임진다?
코로나가 바꿔놓은 세상은 다채로워
앞의 세 저자가 팬데믹으로 인한 위기 상황을 말한다면, 4장을 맡은 정치학자 김범수 교수는 팬데믹으로 인해 발견한 가능성을 말한다. 그는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비대면 정치 참여의 도구로 떠오른 메타버스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메타버스에서는 오프라인에서와 달리 빈부나 지위의 격차, 장애의 유무 같은 차이를 뛰어넘어 구성원들이 더 자유롭고 평등하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 대통령 후보 같은 높은 사람에게도 오프라인에서보다 더 자유롭게 질문을 던지고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다. 또한 메타버스에서 사이버 분신인 아바타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기에, 온라인 공간 속 익명성의 폐해를 극복할 수도 있다. 김범수 교수는 여기에서 메타버스의 정치 참여 도구로서의 가능성을 본다. 팬데믹은 민주주의에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하는 것이다.
사회학자 오주현 교수는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서 좀 더 일상적인 측면을 살펴본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어딜 가든 전자 출입 명부를 작성해야 했었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대신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 했었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에게는 전자 출입 명부를 작성하는 것도, 어린 손주들이 온라인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돕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반면 인터넷 쇼핑을 즐기고 온라인에서 트로트 가수 팬덤으로 활동하며 온라인 생활을 즐기는 고령층들도 있었다. 오주현 교수는 이런 고령층 내의 정보 격차를 조명하며, 정보 사회에서 소외되는 구성원이 없도록 지원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강도가 높았을 때 우리는 가족, 친척,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과도 직접 대면할 수 없었다. 사회학자 임정재 교수는 이러한 사회적 상호 작용의 변화가 개인의 심리에 미친 영향을 살펴본다. 코로나 발생 3년이 되어가는 지금은 코로나-19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줄어들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임정재 교수는 이에 관한 정책적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직장 내 상사나 동료들과의 갈등, 가부장적인 문화로 인해 힘들어하던 사람들이 대면 교류가 줄어든 것에 만족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코로나-19 이후에는 우리의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이 이전보다 더 느슨하고 자유로운 방향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임정재 교수는 이야기한다.
코로나 이후의 세상에서도
우리는 내일을 살아갈 수 있을까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다. 손연우 교수는 코로나 실업자 중에서도 저학력, 저임금 노동자들이 많다는 점에 주목한다. 원격 근무를 할 수 있거나 의사, 택배 기사 등 코로나 시국에도 꼭 필요한 직정의 노동자들은 코로나 시기에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 학력이 높을수록 원격 근무로 전환하기 쉬웠고 일을 그만두는 비율도 낮았다. 반대로 원격 근무로 전환하기 어려운 직종의 저학력, 저임금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거나 근무 시간이 줄어들면서 소득도 줄어들었다. 비대면 환경 때문에 오히려 일자리가 늘어났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다. 비대면 환경으로 배달 노동자 등 플랫폼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늘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노동자인지 독립 계약자인지 위치가 모호하기 때문에, 기존의 노동법으로는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이런 변화에 발 맞추어 직업 교육을 실시하고 시급히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손연우 교수는 주장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온라인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면서 오프라인 매장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경제학자 이나경 교수는 온라인 시장과 오프라인 시장의 이러한 양극화 현상을 주목한다. 온라인 중심의 유통 채널을 개척한 기업들은 코로나로 인한 위기를 이겨내고 매출을 상승시켰다. 하지만 오프라인 매장이 축소되면서 오프라인 매장의 많은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나경 교수는 급변하는 환경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상품과 서비스 자체가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한편,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은 환경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당장 팬데믹으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인데 왜 환경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건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사회적 거리 두기로 사람들과 물자의 이동이 줄어들면서 일시적으로나마 탄소 배출이 줄어들고 대기 질이 좋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코로나 때문에 쓰고 버리는 마스크도, 식당에 가는 대신 시켜 먹은 배달 음식의 일회용 쓰레기도 늘어났다. 김민정 교수는 이러한 현상들로 인해 팬데믹 상황에서 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더 커졌다고 이야기한다. 시민들부터 정부, 기업, 투자자들은 기후 변화를 걱정하고 기존보다 더 적극적으로 대응 방안을 논의하게 되었다. 김민정 교수는 우리 모두가 어떻게 하면 지구와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지 행동 전략을 제시한다. 전 지구적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소비에서나 경영에서나 정치에서나 실질적인 친환경 조치가 이루어져야 하고, 그 세 가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감소세를 보이는가 싶으면 다시 확산세가 시작된다. 어느 지역에서 감소해도 다른 지역에서는 확산된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끝나더라도 그 여파는 얼마나 오래 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코로나-19는 인류가 이전에 겪지 못했던 위기 상황을 불러왔지만, 그 덕분에 코로나 이전의 세상이 품고 있던 한계들이 드러났다. 우리는 그 한계들을 깨닫고 극복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노멀’의 한계를 넘어 ‘뉴 노멀’로 나아가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이 책은 그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