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은 누구의 것이고, 가르치지 않는 지식은 또 누구의 것인가?
학교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학교는 무엇을 하지 못하는가?
학교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교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세계적인 ‘실천교육학’의 석학이자 커리큘럼 전문가로서, 지난 100년 동안 교육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인의 작가로 꼽히는 마이클 애플 교수. 그가 쓴 《이데올로기와 커리큘럼》은 1979년 초판이 발행된 이래 교육에서 문화적 ㆍ경제적 권력 관계를 다룬 획기적인 저술로 20세기 교육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세계적인 책 20권에 선정된 교육 명저이다.
이 책에서 애플 교수는 신마르크스주의에 바탕을 둔 비판적 관점에서 교육과 경제구조의 관계, 지식과 권력의 연계를 파악하고, 학교교육이 불평등한 사회에서 경제적ㆍ문화적 재생산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낱낱이 보여준다. 또한 지배집단이 굳이 지배 메커니즘을 드러내지 않고도 사회통제를 지속하기 위해 학교를 이용해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어떻게 끊임없이 조직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학교 커리큘럼을 파헤쳐 그 안에 잠재된 이데올로기적 내용을 밝히고 있다.
교육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미셸 푸코는 학교를 군대, 병원, 감옥 등과 같이 근대 특유의 권력 장치라고 보았고, 루이 알튀세르는 학교교육이 근대사회에 지배적인 국가의 이데올로기 장치라고 보았다. 피에르 부르디외, 바실 번스틴, 새뮤얼 보울스, 허버트 진티스 등은 교육이 문화적, 계급적, 사회적인 불평등이나 격차를 재생산 또는 고정화하는 기능을 한다고 하였다. 마이클 애플 역시 계급사회에서 학교가 경제적·문화적 계급관계를 재생산하는 강력한 기관이며, 이데올로기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이라고 역할을 규명한다.
교육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교육제도의 본질적인 특성으로 교육자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정치에 관여할 수밖에 없다. 교육활동을 선진산업경제의 지배적인 의식과 불평등한 제도로부터 완전히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애플 교수가 밝힌 신념이다.
그는 이 책 《이데올로기와 커리큘럼》이 출간 40주년을 맞아 2019년에 제4판을 펴내며 서문에서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세계가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으로 더욱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고 썼다. 그리고 오랜 세월 민주주의라는 강물이 끊임없이 흐르도록 애써온 교육계 안팎의 사람들이 철저히 경멸당했다고 느껴 현 상황에 고통을 느낀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비판적인 민주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끈질긴 투쟁의 역사가 있고, 교육의 역사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판적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가로막는 교육 부문을 찾아 이를 없애려고 했던 끈질긴 노력도 함께 살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모두 과거에서 현재까지 그러한 장애물을 거둬내기 위해 행동한 사람들의 어깨 위에 서 있고, 바로 이 장애물의 실체를 밝히는 것이 일관되게 유지해온 이 책의 초점이라고 밝혔다.
‘학교에서 왜, 어떻게 특정 집단의 문화만이
객관적이고 정당한 지식이라고 가르치는가?’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지배계급은 자신의 관념에 보편성을 부여하고, 그 관념이 유일하고 합리적이며 누구에게나 타당한 것으로 표현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애플 교수는 이러한 관점을 지식, 이데올로기, 권력 간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삼았다. 사회의 지배적인 관념이 특정 계급 및 집단의 이해관계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를 밝혀내기 위해서다.
이데올로기와 커리큘럼, 이데올로기와 교육논쟁의 상호연관성 연구는 커리큘럼 분야뿐만 아니라 교육이론과 정책 전반에 걸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이 책 전체에 걸쳐 ‘학교에서 왜, 어떻게 특정 집단의 문화만이 객관적이고 정당한 지식이라고 가르치는가?’ 하는 질문을 비판적으로 탐구한다. 그래서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이 어떻게 사회 지배집단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이데올로기적 구성물이 되었는지, 학교는 어떻게 한정적이고 부분적인 지식을 진리처럼 정당화하는지 ‘비판연구’와 ‘관계 분석’을 통해 낱낱이 밝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