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를 마주한, 화가 엄마와 방송작가 딸!
아픔 속에서도 빛바래지 않는 ‘지금’의 소중함을 말하다
대구에서 활동하는 중견화가 엄마(최재숙)와 서울에서 활동하는 방송작가 딸(여지영)이 함께 엮은 책이다. 두 작가는 치매로 기억을 잃어간 할머니(故 이갑순)와 함께했던 ‘삼대 모녀의 전국 여행’을 소재로 그림과 글을 남겼다.
작가들은 치매를 앓는 가족과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여행을 하며, 그 시절을 각자의 방식으로 기록했다.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감을 즐겨 그려온 화가 엄마는 여행의 풍경을 그림에 담았고, 서울에서 10년째 활동 중인 방송작가 딸은 기억을 글에 담았다.
책의 각 장은 경주를 시작으로 청도, 제주도, 대구, 원주 등 여행의 여정을 따라 나뉘어 있다. 한 겹 쌓이면 한 겹 사라지는 아픈 기억 속 풍경을 담은 그림과 글에서는, 역설적으로 아픔 속에서도 빛바래지 않는 순간의 행복과 지금의 소중함이 느껴진다.
특히 각 장의 마지막에는 치매로 기억을 잃어간 ‘엄마의 엄마’가 직접 쓴 일기들이 더해져 눈길을 끈다. 때로는 쓸쓸하고 때로는 아이처럼 순수한 시선이 담긴 일기는, 치매 환자이자 노인이 느낀 날것의 감정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사료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 여행 에세이 《지금이 아니면》은, 치매 환자를 둔 가족들에게는 일상의 작은 행복을 잃지 않도록 은은한 지침을 제공하는 참고서적이 될 것이다.
영면에 든 갑순 씨를 바라보며 여정의 끝에 선 작가들은 “끝을 알 수 없어서 찬란히 웃었다.”는 말을 남기며, 삶은 끝을 알 수 없기에 매 순간이 찬란하고 소중하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아픔 속에서도 행복을 잃지 않는 삼대 모녀의 기록은, 힘든 오늘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주변에 놓인 행복을 발견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