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학생은 500년 전 사림들의 세계를 마주했습니다. 머나먼 기억의 동굴 속으로 사라져 묻혀 버린 세계였습니다. 그들은 삶을 낡은 글 속에 남겨놓았습니다. 사부辭賦입니다. 사부에는 자신의 삶을 말하는 부류의 글도 있었습니다. 호젓하고 당당한 삶의 기록이었습니다. 개인의 술회를 담고 있었기에 ‘술회사부’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사림파 문인의 술회사부를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철학만을 말하면 문학이 아니고, 철학이 결여되면 온전한 문학이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림파 문인들은 술회사부에 도학을 절묘하고 아름답게 실었습니다. 도학자의 긍지와 자부심을 표현했습니다. 글은 청한淸閒하고 허정虛靜하며 묘합妙合했습니다. 그들의 삶은 글에 부합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졌습니다. 세상의 모순을 지적했고, 그 과정에서 더욱 건실한 삶을 살겠다는 결심으로 그 모순을 극복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알인욕遏人慾을 실천하고 순자연順自然의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보았습니다. 도학의 아름다움이 문학으로 나타났습니다.
술회사부는 따뜻했고, 진실했습니다. 재도지기載道之器에서 벗어나려는 일탈과 변주는 문학적 변혁이었습니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사상의 전환과 그로 인한 풍요를 바탕으로 감성적이며 자유롭게 쓴 글이었습니다. 서사 대상은 자신으로, 내용은 자신의 삶으로 흘렀습니다. 과체사부라는 처세의 글에서 설리사부라는 사상의 글을 거쳐 문학으로 진화하는 과정에 술회사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문학과 철학이 통합된 결정체이기도 했습니다.
때마침, 정신자산이라는 말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정신자산은 무엇인가 질문해 봅니다. 우리의 사상체계에 녹아 행동 양식을 지배하는 그 정신을 사림파 문인의 사부에서 만났습니다. 도학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고리타분한 형이상학이 아니라, 지금 다시 찾아 익혀야 하는 우리 사상의 근본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사부의 재발견이며, 사림파와 도학의 재발견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