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공존하는 해양생물의 삶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다
그저 한 접시의 횟감으로만 여겼던 해양생물 해삼. 해삼은 어떤 동물일까? 극피동물문(門) 해삼강(綱)에 속하는 해삼은 고생대 오르도비스기에 처음 출현해 약 5억 년간 세계 바다에서 서식해 온 해양 무척추동물을 두루 일컫는 말이다. 손으로 잡으면 단단해지고, 몸통을 둘로 자르면 한 마리가 두 마리로 재생되며, 끈적끈적한 내장을 내뿜어 포식자에게서 벗어나는 불가사의한 능력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는 슈퍼 해양생물이다.
해양생물학을 공부하고, 30여 년 이상 스쿠버다이빙을 하면서 물속 해양생물과 어울려 살아온 저자 박흥식 박사가 주목한 해삼의 모습은 의외로 이런 기막힌 능력이 아니었다. 저자는 생태계 내(內) 해삼의 역할을 예의주시한다. 해삼은 온종일 바닥을 진공청소기처럼 훑고 다니면서 펄이나 모래를 먹는다. 또 해양생물의 사체(死體) 등 살아 있는 생물보다는 죽거나 유기물로 분해되는 종류를 먹고 장에서 소화한 다음 항문을 통해 퇴적물을 버린다. 온종일 하는 일이라곤 먹고 싸는 일이 전부인 듯하지만, 이렇게 ‘모래 진흙을 삼켜 유기물을 섭취하고 항문을 통해 배설물 내보내기’를 반복하는 해삼의 특성은 바다를 정화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해삼에게 ‘해저의 청소부’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저자는 중국의 높은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한 해삼의 경제적 가치에도 주목했다. 중국에서 상어지느러미, 제비집과 함께 3대 진미로 꼽히는 해삼은 그 수요가 급격히 커지고 있음에도 한정된 공급 시장 탓에 전 세계의 해삼 자원이 중국으로 집중되는 블랙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해삼이 우리에게 또 하나의 기회를 주는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기상천외한 생태에서
문화,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해삼’ 입문서
이 책은 ‘해삼’이란 해양생물이 살아가는 모습과 해삼과 관련한 생활·문화 그리고 산업 가치 등에 이르기까지 해삼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해삼 입문서다.
바다의 인삼, 곧 해삼이란 이름에 호기심을 느끼고 찾아본 자료에서 해삼에 깊숙이 빠져들었다는 저자는 모두 6편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먼저 ‘약효가 인삼에 필적한다고 하여 바다의 인삼이란 뜻으로 붙였다”는 중국 송나라 〈본초도경〉의 기록을 통해 그 연원을 추적한다. 그리고 해서(海鼠), 토육(土肉), 흑충(黑蟲), 해남자(海南子) 등 옛 문헌에 등장하는 다양한 이름과 그 유래를 나름의 근거를 들어 설명한다. 2편에서는 해삼이 다른 극피동물과 어떤 점이 같고 어떤 점이 다른지 생김새를 비롯해 몸의 구조와 기능 등을 통해 비교한다. 특히 알면 알수록 놀랄 수밖에 없는 해삼의 재생력이나 방어 능력이 발현되는 순간을 수중 촬영하여 생생하게 전달한다. 3편에서는 물속에서 조용하지만, 누구보다도 바쁘고 왕성하게 먹이 활동을 하며 ‘해저의 청소부’로서 역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4편에서는 일본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해삼 효능 연구와 우리나라의 해삼 성분 및 영양학적인 연구 성과를 상세히 소개한다. 5편에서는 해삼을 날로 먹기도 하고 말려서 먹기도 하는 등 지역마다 다른 해삼 식용 풍습을 알아보고, 식재료로서의 해삼과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해삼 요리, 해삼을 말리거나 불리는 방법 등 해삼에 관한 다양한 식문화를 정리한다. 마지막으로 해삼 생산과 양식 기술, 유통과 소비 동향을 살피면서 해삼을 대량 생산하기 위한 과제와 정책적 대안을 제시한다.
수많은 해양생물 중에 해삼을 소재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이 아주 독특한 경험이었다고 말하는 저자는 이제 인간과 공존하는 해양생물의 삶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되었노라 고백한다. 이와 더불어 자연에서 채취하는 해삼 자원의 고갈을 막고 생물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효율적인 해삼 양식 기술 확보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함을 강조한다. 저자의 바람처럼 이 책이 바다생물의 역동적이거나 아름다운 모습보다는 어느 특정 영역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는 생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