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동경의 아름다움과 그로부터 도래할 불안을 감내하고 마주하는 용기로 이루어진다. 홀로 남은 ‘나’에게 이 문장을 보낸다.”
이 시대의 마음을, ‘나’라는 당신에게, ‘우리’가 될 때까지
『시대의 마음』은 총 4부로 구성되었다.
1부 ‘시대 감각’은 문학, 비평, 주체, 노동 등의 키워드를 현시대에 비추고 또 맞추어 감각한 텍스트들을 모았다. 기후 위기, 청년 담론, 노동으로서의 문학, 비평 그 자체를 면밀히 분석하는 일은 시대를 감각하기 위한 초석이기도 하다. 특히 「약자-되기로서의 개인적 정치성과 에세이라는 언어 형식」은 독자와 저자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그 둘의 욕망이 뒤섞이는 새로운 (시)장을 분석하는 날카로운 글이다. 문학의 언어가 ‘다르게-되어야’ 하는 시점이 도래했음을 알리는 이 기민한 진단을 우리는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2부 ‘젠더 비평’에는 ‘문단 내 성폭력’ 고발 운동이 본격화된 해에 작품활동을 시작한 선우은실의 고심과 고투가 뜨거운 에너지로 응결된 글들이 모였다. 페미니즘 문학과 비평이라는 ‘경험적 사건’을 흠뻑 체화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를 통과하며 만난 이소호, 백은선, 김현 등의 작품을 다루는 동시에, 젠더와 관련한 글을 쓸 때마다 경직되거나 관성적으로 판단하지 않기 위해 내재화된 이분법과도 싸울 수밖에 없었던 시간, 그 자신과 격렬히 대결한 자취가 곳곳에 배어 있다. 더불어 퀴어-페미니즘 문학과도 긴밀하게 그러나 까다롭게 고찰되는 ‘당사자성’에 대한 사려 깊은 한 제안을 「우리가 우리의 문제에 대해 말할 때 필요한 것」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당사자성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자 할 때 우리 앞에 놓인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용과 발화의 방식을 탐구하면서도 ‘당사자성’을 협소한 것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해당 개념을 확정하는 방향이 아닌 비-확정적으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던지는 질문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이야기를 할 수 있고 해야 하나, 그리고 어떤 것은 어떻게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나. ‘우리’의 게토화를 넘어선 질문을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_「우리가 우리의 문제에 대해 말할 때 필요한 것」(204쪽)
3부 ‘나와 비평’은 시대 한가운데 위치한, ‘나’를 구성하는 ‘비평’과 ‘비평’으로 구성된 ‘나’를 교차해보는 글을 모았다. 선우은실 특유의 ‘메타 인지적 감각’을 바탕으로 평론의 외연을 확장하는 실험적이고도 힘있는 글들 중 특히 「다시 문학과 제도 구축에 대한 지금부터의 질문들」에 주목을 요한다. “우리가 문학-하고자 함은 과거의 영광을 현재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사유하고 미래를 내다보면서 더 나은 가능성을 구성하는 것”(347~348쪽)이란 문장이 “언제나 살고자 하는 문학”(359쪽)으로 가닿을 때, 우리는 ‘나’와 ‘시대’와 ‘문학’을 아우르는 작가의 비평적 야심과 진심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4부 ‘시대 마음’은 시대와 문학이라는 이 거대한 시공간을 통과하면서 필연적으로 수렴하는 ‘마음’을 담은 글을 배치했다. 김금희론 「축적 불가능한 시대의 마음」은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종잡을 수도 없지만 ‘마음’이란 말 외엔 달리 표현할 수도 없는, 개념화가 불가능한 지점을 포착해낸다. 나아가 “누구 하나의 것이 아니라 타인의 것을 모두 아우르는 사회성을 지닌”(427쪽) ‘마음’으로 확장되는, 이 책의 제목과 중핵을 모두 품은 글이기도 하다. 더불어 백수린의 단편소설 「시간의 궤적」을 다룬 「비 오는 밤의 저편」은 선우은실의 특장이라 할 수 있을 비평과 에세이가 유려하게 결속하는 강렬한 단평이다.
끝으로 양경언 평론가와 함께한 대담을 실었다. 동시대 여성 평론가 사이의 뜨겁고도 애틋한 이 대화는, 문학과 세계와 치열하게 ‘대화’한 흔적이 바로 ‘비평’이라는 근사한 증거가 되어줄 것이다.
왜 하필 폭우인가에 대한 대답 역시 구할 수 있겠다. 언니를 만나고 언니와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언니와 헤어지게 된 모든 과정의 흔적은 비를 보고, 맞고, 추억하는 동경의 흔적과도 같다. 찬란했던 시간을 슬프도록 기억하며 이 앞의 시간을 걸어나가야만 하는 것이 곧 삶이라면, 동경의 시간과 그것을 마주했던 날들을 지나 현재에 도달했을 때 과거의 어떤 장면이 앞으로의 삶을 살게 만드는 것일까. 그것은 아름다운 것을 멀리서 보던 때가 아니라 그것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때일 것이다.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외롭고 괴로운 것이 아니라는 이상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던 그 혹독한 시기일 것이다.
우리의 삶은 동경의 아름다움과 그로부터 도래할 불안을 감내하고 마주하는 용기로 이루어진다. 홀로 남은 ‘나’에게 이 문장을 보낸다. _「비 오는 밤의 저편」(4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