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과거에 대한 언어이고, 정치는 미래에 대한 언어이며, 연설은 현재에 대한 언어’라고 한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중). 이 책은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을 통해 그 시대의 법과 정치를 분석한 책이다.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미래의 언어가 함께 어우러진 책이라 할 만하다.
‘기술하되 지어내지 않는다(술이부작: 述而不作)’라고 공자는 말한 바 있다. 현란한 해석을 곁들인 2차적 소통보다 투박하더라도 그 사람의 말과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전달해주는 1차적 소통이 정치공동체에는 더욱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문 대통령의 연설문 상당 부분을 있는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저자의 글과 문 대통령의 연설이 음영과 박스 처리로 확연히 구분되기에 문 대통령의 연설만을 따라 읽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1차적 소통을 중시한 책이다.
성경의 「열왕기」와 『조선왕조실록』의 차이는 우선 분량이다. 비슷한 정도의 시간 길이를 다루면서 열왕기는 조선왕조실록의 수천분의 1 정도 분량이다. 유다와 이스라엘에서도 상세한 실록이 있었다고 하니, 차이의 핵심은 요약서의 유무라 할 수 있다. 문 대통령 재임기의 연설문 총 분량은 공개된 것만으로도 15권에 이른다. 요약서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요약서가 있을 때 곱씹기가 가능하다. 곰곰이 되새겨 볼 때,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볼 때와는 다른 속뜻이 되살아난다. 양을 줄여주지 않으면 거듭 반추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회귀적인 성찰이 행해지지 않을 때 깊이와 두께는 획득되기 어렵다. 수험 서적 요약, 전략적 요약이 아니라 반성적 요약, 소통적 요약이 긴요한 이유이다.
이 책은 문재인 대통령 5년간을 축약한 책이라 할 만하다. “헌법파괴자”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저자는 “일부 공감”이라는 장을 통해 문 대통령 연설문에서 공감하는 부분 또한 13페이지에 걸쳐 인용하고 있다. 15권 5년의 역사가 200쪽 책 한 권 속에 훌륭히 요약되어 있다. 장차 문재인 대통령 시기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이들은 먼저 이 짧은 책으로 그 시기에 대한 입문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거의 매일 이루어지다시피 하는 대통령의 연설은 살아 숨 쉬는 정치요 역사다. 한 대통령의 공적인 활동 전체는 연설문 속에 그 정수가 녹아 있기 마련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좋아하건 싫어하건 문 대통령의 연설문을 읽고 대토론을 벌여야 할 당위성이 크다. 문 대통령은 수면 아래 있던 우리 사회의 헌법적 균열을 엄청난 강도의 충격으로 드러내 주었기 때문이다.
가장 피해야 할 길은 문 대통령 시기에 대한 치열한 반성 없이 이를 대충 망각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활기를 되찾고 퀀텀 점프로 도약하자면 문 대통령이 드러낸 거대한 균열과 마주 서야 한다. 헌법적 각성과 논쟁, 국민적 성숙과 고차원적 통합 없이는 더 심각한 위기가 반드시 예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일독을 권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