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라고 물어왔던 리보에게 처음으로 괜찮냐고 거꾸로 물어온 아이. ‘괜찮냐’라는 말보다 ‘이상 없느냐’는 기계적 언어를 적용하는 게 더 익숙할 법한 로봇 리보에게 도현은 시스템에 오류를 일이키는 바이러스였는지도 모른다. 사람을 걱정시키는 건 리보가 해야 할 일이 아니었으므로. 어떻게 해야 할까. 감정 센서는 이것을 ‘그리움’이라 말했다. ‘만능책’으로 아이들에게 고민 상담을 해 주던 앤이라면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앤, 아이가 날 그리워해.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해?”
◼"그리움은 걷잡을 수 없는 재난. 만날 사람은 만나야 한다.“
◼“안녕하세요. 즐거움과 안전을 책임지는 여러분의 친구, 리보입니다. 지금은 재난 상황입니까?”
이야기는 ‘연결’을 향해 치달으며, 우리는 응원하게 된다. 밖으로 나가려 하는 리보에게 지금은 ‘(너의) 재난 상황’이 아니라고 말하는 시스템 앞에서, ‘권한 없음’이란 말만 되풀이할 뿐인 굳게 닫힌 도서관 문 앞에서, 한 번도 자신이 어떠한지를 먼저 표현해 본 적 없는 리보가 도현이가 알려 준 방법대로 자신을 표현하는 장면에서, 절망을 선택하기 더 쉬운 상황에서 간절하게 소통을 향해 나아가는 리보와 앤과 도현을, 응원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한편 ‘어린이 자료실’ 밖으로 나가 본 적 없는 앤에게 “로비에선 아이들이 들어오는 모습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다”며 리보가 어린이 자료실 밖으로 앤을 이끄는 장면, 책의 숲에서 리보에게 하이 파이브를 가르쳐 주던 도현이와 빗물에 젖어가는 도현이의 그림에 우산을 씌워 주고 싶어 하는 리보의 모습 등 수많은 반짝이는 장면들이 노란 알전구처럼 마음을 밝혀 준다.
연결은 본능이다. 연결감은 생존의 옵션이 아니라 필수 요소이다. “그리움은 걷잡을 수 없는 재난. 만날 사람은 만나야 한다.” 앤의 대사처럼 어린이들에게 고립은 치명률 높은 바이러스만큼 아니 그 이상의 재난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고립과 격리는 사회적 동선이 큰 어른보다 학교와 학원, 동네 놀이터가 사회적 활동 영역의 전부인 어린이들에게 더 가혹했다. 그렇기에 폐쇄된 도서관에 남겨진 리보의 상황은 어린이들이 더 절실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다. 해석의 모양과 질감은 달라질지라도 이 작품의 무게는 시간의 무게를 이겨 내고 언젠가 코로나19를 경험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온전히 전해질 것이다. 그것이 문학의 힘이다._유영진(아동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