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후손을 위한 뿌리다.
뿌리를 심지 않고 그 가치와 잎이 무성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올바르게 계승하고 현대화하여 내일의 유산으로 만들어가는 창조적인 장인들의 집단,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의 맛공방은 그동안 고조리서에 기반을 두어 조선의 궁중 음식과 선비 정신에 바탕을 둔 반가 음식을 연구해왔다. 연구 내용을 기반으로 우리 식문화의 정수를 탐구하고 현대인의 입맛에 맞는 레시피의 실질적인 구현에 매진해왔다. 지난 2016년, 맛공방의 연구 기록을 모아 조선 반가의 내림 음식과 잊혀가던 지역의 여러 조리법을 통섭한 첫 번째 도서 『온지음이 차린 』을 선보였다. 2022년도에는 조선의 울타리를 넘어 전통 한식의 원형을 고대에서부터 찾아보고자 하였고, 최초로 한반도를 완전하게 통일한 고려 시대를 선택하였다.
전통 음식 연구의 대부분은 관련 문헌이 다수 남아 있는 조선시대에 국한되기 쉽다. 그러나 온지음 맛공방은 이러한 부족한 문헌 자료의 한계를 극복하고 고려시대 식문화를 중심으로 고려를 전반적으로 조망하고 기록하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두 번째 맛공방 도서 『온지음이 차린 - 뿌리와 날개』는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변용되고 발달해온 한식의 원형을 시기적으로는 약 천년 전, 고려에서부터 짚어 보면서 한식의 스펙트럼을 좀 더 확장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다. 이 책은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던 고려 왕조의 수도였던 개성 음식에 주목하여 한식의 ‘뿌리’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맛공방의 여정을 담았다.
고려는 특히 공예 문화가 발전하여 비색 청자, 나전칠기, 금속 공예, 불화, 사경 등 독창적이고 자주적인 성격이 강한 문화유산이 많았던 시대이다. 고아한 정취와 풍류를 즐길 줄 아는 고려 사람들의 음식 문화 또한 다채롭고 풍요로웠다. 온지음 맛공방에서는 유물과 문헌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고려의 멋과 정신과 미학을 바탕으로, 개성 음식을 오늘날에 맞게 유의미한 메뉴로 개발하여 새로운 시각에서 한식의 원형을 제안한다.
“뛰어난 맛일수록 어김없이 담백하느니,
강한 맛은 첫입에는 끌리나 싫증 나기 쉽고
담백한 맛은 서서히 스며 오래도록 입맛을 사로잡는다.”
500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은 고려 왕조의 개성 음식은 독특한 미식 문화 양상을 띠고 있다. 고려 왕실과 귀족이 향유했던 고급 미식 문화부터, 주변국과의 교류로 얻은 개방적인 음식 문화, 그리고 국교인 불교에서 비롯된 채식 문화, 그리고 송나라에서 유입되어 독자적인 자문화로 발전시킨 차 문화까지. 그 외에도 지역성을 가진 수수한 서민 음식과 경제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상인 계층의 음식 누림 또한 고려 시대의 폭넓은 음식 문화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산과 들과 바다가 모두 인접하게 위치한 개성 지역은 고기와 곡식뿐만 아니라 해산물, 산나물, 과일 등의 식재료를 풍부하게 얻을 수 있었고 풍요로운 미식 문화가 발전하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고려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가진 개성 음식은 대체로 간을 은은하게 하여 재료 본연의 맛을 헤치지 않도록 하고 특유의 깊고 진한 ‘담백함’을 가진다. 개성 음식 속 ‘담백함’이란 짜거나 맵지 않은 슴슴한 맛을 일컫는데, 『온지음이 차린 - 뿌리와 날개』에 차례로 소개되는 레시피는 개성 음식의 담백함을 이끌어내기 위해 온지음 맛공방의 현대적인 해석을 덧입혀 완성시켰다. 이 책에서는 고려인들의 생활상이 담긴 조랭이떡국, 한국 김치 중 가장 아름답다고 꼽히는 개성보김치, 쌍화점에 등장하는 개성만두와 편수, 고기를 갈아 넣고 발효 과정을 거쳐 깊은 맛을 내는 개성장땡이, 주로 의례용 음식으로 올라온 홍해삼, 개성 명물로 알려진 오이선, 불교 행사와 왕실에서 즐겨먹었던 개성주악에 이르기까지 현재 살아 있는 개성 음식뿐 만 아니라 점점 잊혀져가는 개성 음식도 함께 소개한다.
이밖에 입맛을 돋우는 안주거리, 속을 따뜻하게 달래는 죽, 섬세한 정성이 담긴 전체요리, 고려의 수수함을 담은 면과 만두, 뜨끈한 국과 탕, 격식 차린 접대 음식, 여러 재료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찜 요리, 담백하고도 진한 맛을 내는 구이요리, 밥과 반찬, 발효와 저장음식, 그리고 달콤한 다과 레시피까지 아낌없이 소개하고 비법을 공유한다. 이를 통해 고려의 멋과 운치를 담은 온지음만의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개성 음식’을 선보인다. 그와 함께 고려 비색의 미려한 미감을 품은 공예품과 개성 곳곳을 세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지도 이미지, 그리고 고려시대라는 시간과 개성이라는 공간의 생활상과 정취를 상상하고 짐작케 하는 시 문구와 소설 구절까지도 함께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