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 이후 100년, 아름답고 논쟁적인 현대 한국미술사를 한 권의 책으로!
주례사 비평이 아닌 치열하고 성실하고 신랄한 비평의 말들!
이제 정신의 격투를 담은 전설적인 비평문들을 직접 읽는다
01. 《비평으로 보는 현대 한국미술》은 어떤 책인가?
《비평으로 보는 현대 한국미술》은 제목 그대로 미술에 대한 비평문을 모아 그것으로 한국의 근현대미술을 들여다보려는 비평문 모음집이다. 19세기 말 서구의 ‘모던 아트’가 이 땅에 도입된 이래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100년 어간의 미술 비평문 중 138편을 선별해 편집했다. 신문기사나 선언문 혹은 광고 문안 등의 텍스트들이 일부 섞여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비평문이다.
1970년대부터 한국 근현대 미술사 관련 저술들이 출간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적지 않은 관련 저술들이 나와 있지만, 현대 한국미술의 흐름을 좀 더 체계적으로 심도 있게 살펴볼 수 있는 교재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기존의 한국 근현대 미술사 관련 저술들은 방법론적으로 양식사의 틀을 크게 넘어서지 못하거나, 흐름을 구성하는 틀이 단순하고 평면적이어서 자료집 성격이 두드러지거나, 논문 모음집에 가까워 전반적인 개괄이 어렵거나, 혹은 다루는 시기가 한정되어 현재의 관심사와 충분히 연결하기 어려운 등 아쉬운 요소가 많았다.
《비평으로 보는 현대 한국미술》은 최근까지 쌓인 연구 성과에 근거하면서, 핵심 논점에 집중하여 비평문을 선별하고, 그러는 가운데 현대 한국미술의 흐름을 좀 더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끔 다양한 노력을 경주했다. 또한 가능한 한 연대를 현재와 가깝게 끌어올려 연속과 변화를 가시화하면서 현대 한국미술의 전반적인 흐름을 밝히고 있다.
02. 비평문을 선별해 모았다니 독특하다. 왜 그런 방식을 택했는가?
비평문은 해당 시기 미술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일차적이고 직접적인 근거다. 비평문은 각각의 시대에 비평가(미술계)가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질문했는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나가려 했는지 등 미술활동/작가/작품을 둘러싼 사유와 지향점, 그에 대한 입장의 차이 등을 담고 있다. 따라서 당시의 미술계 정황을 깊이 있게 알려줄 뿐 아니라, 같은 시기의 서로 다른 입장들이나 이전 이후 시기의 견해들과 비교하여 미술을 둘러싼 담론의 맥락과 계열, 연속과 변화를 선명하게 살펴볼 수 있다. 또 통상적인 미술사 서술과 달리 비평가들의 생생한 육성은 마치 당시의 미술 현장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 같은 생동감과 즐거움을 준다. 또한 해당 비평글이 전하고자 하는 논리만이 아니라 거기 담긴 개인의 구체성(문체 등)은 당사자들이 의식한 사안 못지않게 의식하지 못한 시대상황의 기미들을 감지할 수 있게 해주며, 이를 통해 독자의 해석적 상상력을 촉발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원문 그대로 소개되는 일이 드물었던 1950년대 이전의 비평문들을 선별해 실음으로써 독자들이 그동안 제목이나 일부 정보만 전해오던 전설적인 비평문들을 직접 만날 수 있도록 했다. 각 비평문들을 읽어보면 비평가나 기자, 미술작가 등 글쓴이들이 얼마나 치열하고 성실하게 자기가 직면한 당대의 미술상황을 고민하고 그것을 글로 옮겼는지 잘 느껴질 것이다. 요즘의 주례사 비평과 달리 신랄한 언어와 표현으로 자신의 미술적 사유를 전개하고 있어, 또 다른 읽는 재미를 준다.
03. 책은 어떤 방식으로 구성하였나?
편저자들은 우선 개항 이후 ‘미술’이 이 땅에 들어온 이래 1990년대 이르기까지 약 100년의 시간대를 중심으로 현대 한국미술의 흐름을 총 8개 장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각 장마다 해당 시기를 특징짓는 4-6개의 소주제를 채택하고 그에 상응하는 비평문을 선별해 실었다. 각 장의 서두에는 각 시기를 개괄하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 시대 개괄을 통해 비평문만으로는 가늠하기 힘든 해당 시기의 사회문화적 배경과 미술사적 배경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소주제 채택의 근거를 밝혔다. 또 선택된 글(비평문 원문)마다 글의 요지와 집필 맥락을 알려주는 간단한 해제를 달아, 해당 비평문들이 쓰인 맥락과 의미를 좀 더 분명히 전달하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이해가 힘든 용어나 알기 어려운 사건들의 경우 각주 등을 만들어 좀 더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으며, 각 비평문이나 해당 시기의 미술 상황을 이해하기 쉽도록 72편의 도판을 골라 실었다.
04. 구체적으로 책을 만드는 작업은 어떠했나?
책 작업은 서구식 ‘미술’이 처음 도입되는 189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100여 년을 8개의 연대기적 장으로 나누어 각각의 필자가 한 장씩 책임을 맡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서문은 이영욱이 썼고, 1장부터 순서대로 목수현, 오윤정, 권행가, 최재혁, 신정훈, 권영진, 유혜종, 신정훈이 각각 해당 장을 맡아 시대 개관을 집필하고 시대별 주요 문헌을 선별했다. 예외적으로 신정훈은 5장과 8장 두 장을 맡았고, 김경연은 모든 장에 걸쳐 ‘동양화’ 혹은 ‘한국화’라는 명칭으로 전개된 전통화단의 변천을 면밀하게 일관된 흐름으로 연결해주었다.
수록하는 비평문은 원문의 문체나 어감을 최대한 살려 소개하려 하였으며, 전문을 다 싣기 어려운 긴 글은 주요 부분을 발췌하여 수록하였다. 한자 및 해방 이전 옛 한글은 원문의 흐름을 흩트리지 않는 범위에서 현대 한국어로 옮기고 필요한 경우 각주를 두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또한 지면상의 한계로 소개하지 못한 글들은 책 뒷부분에 ‘더 읽을거리’를 목록으로 제공하여 좀 더 심도 있는 독서가 이어질 수 있도록 했다. 현대 한국어와 다른 외래어 표기의 경우 원문 표기를 그대로 두되 각주를 통해 부가 설명을 제공하고, 몇몇 유명 작가명의 경우 현대 한국어로 표기했다.
05. 제목에서‘한국 근/현대미술’이 아닌 ‘현대 한국미술’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맥락인가?
조선/한국에 서구식 미술제도가 도입된 이래 이곳 한국의 미술은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해왔다. 그리고 이같은 변화를 특정하거나 조망하기 위해 근대미술, 현대미술, 동시대 미술과 같은 용어와 개념이 사용되었으며, 시기 구분 등과 관련해서도 많은 논쟁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이러한 용어와 개념의 적합성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이 생겨나고 있다. 21세기로 들어와 시각문화 환경이 격변하고, 미술의 구성과 위상이 확연히 달라진 것이 원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근/현대미술’이 아닌 ‘현대 한국미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자 했다.
기존의 접근과 다음 두 가지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하나는 근/현대를 구분하지 않고 ‘현대’로 통합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이라는 공간을 지시하는 용어와 ‘현대’라는 시간을 지시하는 용어의 위치를 뒤바꾼 것이다. 이 두 가지 변화는 서로 연결되어 작동한다. 이 경우 우리는 서구미술의 도입 이래 이곳 한국미술을 현대라는 시대의 변천과 뒤얽히면서 연속성을 갖고 진행된 것으로 조망할 수 있다.
‘현대 한국미술’이라는 틀로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바라보는 것에는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우선 그동안 관성적으로 해방을 전후해 근/현대미술을 나누던 관행에서 생긴 난관을 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실질적으로 단절이 크지 않은 시기들을 강력한 구분선으로 나눔으로써 이에 대한 설득력 있는 기준을 제시하기 힘들었던 어려움이나, 시간이 흘러 계속해서 새로운 사회·문화적 전환이 생겨나 이러한 근/현대 구분이 포괄해야 할 시간대가 늘어나면서 발생하는 까다로움 등이 그렇다.
또한 ‘현대 한국미술’이라는 틀은 ‘한국’이라는 공간 규정을 앞세워 이곳 미술의 변화를 지나치게 ‘내적 발전’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문제점을 벗어나는 것에도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이 용법은 지난 시기 한국미술의 흐름을 지역 간의 상호 영향 관계 속에서 형성된 ‘동아시아 현대’라는 지평 안에서 살펴보기에 유리하다. 그런가 하면 100여 년간의 시대 상황을 현대라는 단일 규정으로 묶어냄으로써(물론 이 규정 안에서 우리가 8개의 시기로 나눈 것처럼 하위 범주를 활용한 시기 구분은 가능할 것이다), 현재와 과거의 미술을 연속성 속에서 심도 있게 살펴보는 일에도 적합하다. 이를 통해 그간 작가들이 이루어낸 성취들을 좀 더 입체적으로 심도 있게 살펴보거나, 혹은 굴절된 인식으로 부당하게 잊혀진 작가를 새로이 주목하는 일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