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해석을 뒤집는
완전히 새로운 복음서 읽기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고 커다랗게 쓰여 있는 팻말을 들고 돌아다니며 전도하던 무리가 있었다. 투박해 보이지만 그 짧은 문구에는 주류 기독교의 핵심 교리가 한마디로 요약되어 있다. 즉,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가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영원한 지옥에 떨어진다.”
다른 한편으로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은 사랑이다.”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조건 없는 사랑이다. 조건 없는 사랑이란 상대의 조건이 어떠하든지 차별 없이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번의 삶으로, 예수에 대한 믿음 여부라는 조건으로 인간을 심판하여 누구는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하고, 누구는 지옥으로 보내 영원히 고통받게 하는 신이 있다면, 이런 신을 ‘조건 없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조건에 따라 차별했으니 ‘조건 없는’이라는 정의에 어긋나고, 창조주가 자기에게서 나온 자녀를 영원한 지옥에 보내는 것이니 결코 ‘사랑’일 수가 없다.
이 하나의 예로 보듯이 주류 기독교의 교리에는 중대한 모순들이 있다. “죄인인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외아들인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라는 믿음을 고수하려다 보니 모순투성이 교리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 믿음은 백 퍼센트 확실한 진실일까? 예수가 3년의 공생애 동안 전한 가르침은 정말로 그것이었을까?
지은이는 그렇지 않다고, 예수가 정말 전하려 했던 가르침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선(禪)의 눈으로 읽는 복음서
예수가 정말로 가르쳐 주려 했던 진실은 무엇일까?
선(禪) 공부 모임을 이끌면서 구도자를 위한 안내서를 활발히 저술하고 있는 지은이는 선(禪)의 눈으로 복음서를 읽는다. 그의 눈에 비친 예수는 종교와는 상관없이 모든 인류에게 가장 깊은 진리를 들려주는 영적 스승이다. 그의 눈에 비친 예수의 가르침은 특정 종교의 울타리에 갇히지 않으며, 진리를 깨달은 다른 영적 스승들의 가르침과 상충하지 않으며, 모든 인간에게 참된 자유와 평화의 길, 영원한 생명의 길을 보여 주는 가르침이다.
지은이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성서를, 특히 신약의 복음서를 좋아했고, 복음서에 묘사된 예수라는 인물을 사랑했다고 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은 그의 영적 여정에서 나침반이 되었고, 그 여정은 사람의 본성을 곧장 가리키는 선(禪)의 가르침을 통해 끝맺게 되었다. 그 뒤 우연히 펼쳐 든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구절을 읽었는데,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번개가 관통하듯 전율이 일면서 그 말씀이 곧장 체험되었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 너무나 명백하게 자각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은이가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기독교만의 신이 아니다. 종교라는 관념적 틀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우리 존재의 근원, 늘 지금 여기에 있는 현존, 영원한 생명, 순수 의식 또는 붓디 또는 영(靈)인 ‘그 무엇’이다. 알 수 없는 ‘그 무엇’은 우리와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모든 것이 그 안에 있다.
“하나님은 (......) 바로 지금 이 순간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우리 존재의 근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나와 하나님에게로 돌아갑니다. 결코 대상화할 수 없는 존재, 절대적인 존재가 바로 지금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통해 보시고, 우리의 귀를 통해 듣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는 없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아십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하십시오. 세상의 시작부터 끝까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우리 존재의 근원을 돌아보십시오. 바로 지금 여기, 있습니다.” (16-17쪽)
예수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라고 했다. 주류 기독교에서는 여기에서 예수가 말한 ‘나’는 예수라는 개인을 가리킨다고 이해하며 그렇게 믿는다. 그리고 이 말씀은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라는 핵심 교리를 떠받치는 토대가 되었다. 그런데 예수가 말한 ‘나’는 정말 (사람이든 신이든) 예수라는 개인을 가리킨 것일까?
지은이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예수가 말한 ‘나’는 어떤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진리인 ‘나’, 생명인 ‘나’를 가리키며, 온 우주에 이 하나의 ‘나’, 이 하나의 빛만 존재한다고 말한다.
“복음에서 말하고 있는 ‘나’는 예수의 ‘나’이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의 ‘나’입니다. 이 세상에 ‘나’는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137쪽)
지은이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는 주류 기독교의 전통적 이해나 교리와는 매우 다른 가르침을 전한 것이며,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심오한 진실을 알려 주려 한 것이다.
예수의 진정한 가르침이 종교와 상관없이
모든 존재에게 기쁜 소식인 이유
그런데 이 책의 목적은 기독교의 교리와 믿음 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은이는 그저 복음서를 선(禪)의 눈으로 읽을 뿐인데, 그 관점이 주류 기독교의 교리와 다른 뚜렷한 차이점을 드러낼 뿐이다.
이 책은 1장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다’로 시작하여 40장 ‘다 이루었다’까지 40개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글마다 복음서의 일부 구절을 인용한 뒤 그 글을 주제로 이야기하는데, 복음서에 관한 지은이의 통찰들은 진정한 영성이란 무엇인지를 선명히 드러낸다.
지은이는 복음서에 나오는 이름들을 재정의한다. 예수가 말한 ‘나’는 예수라는 개인이 아니고, ‘하나님’은 기독교의 신이 아니며,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고, ‘구원’은 죄인이 용서받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며, ‘회개’는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이 아니고, ‘빛’은 눈에 보이는 빛이 아니며, ‘부활’은 몸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나’라고 알고 있는 것은 참된 나가 아니다. 지은이는 그 이름들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그 이름들에는 이제까지 상식적으로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훨씬 깊은 영적 의미가 있음을 보여 준다.
지은이가 읽어내는 복음서와 예수의 가르침도 완전히 신선하고 혁명적이다. 그가 선(禪)의 눈으로 읽는 복음서와 예수의 가르침은 종교와 상관없이 모든 구도자, 모든 마음공부인을 늘 지금 여기에 있는 깊은 진리로 안내하는 가르침이다. ‘돌아온 둘째 아들의 비유’처럼 우리 모두의 근원인 아버지의 집으로, 아버지에게로 돌아오도록 인도하는 가르침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모든 상상을 뛰어넘는 그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예수의 진정한 가르침이 무엇이며, 그 가르침이 어찌하여 모든 존재에게 더없이 기쁜 소식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입니다. 진리와 나는 하나입니다. 깨달음과 나는 하나입니다. 왜, 어째서 하나인지 분별을 일으키는 순간, 둘이 됩니다. 그 하나를 인식하고 체험하고 확인하려고 하는 순간, 둘이 됩니다. 그러나 그 둘 역시 하나입니다. 진실로 하나라면 하나를 알 다른 하나가 없습니다. 그 순간 하나마저도 사라집니다. 그것이 깨달음, 신앙의 완성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가 바로 그것입니다. 없지만 있는 나가 참나입니다.” (168-1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