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선지식(善知識)
종범(宗梵) 큰스님 설법집 발간
『오직 한 생각』
1. 우리시대의 진정한 선지식으로 추앙받고 있는 종범(宗梵) 큰스님의 설법집 『오직 한 생각』이 발간됐습니다.
2. 종범 큰스님은 영축총림 통도사 강주와 중앙승가대 총장 등을 역임하면서 수많은 후학들을 길러냈고 지금도 제자들과 함께 선어록(禪語錄)을 강독하시면서 때때로 대중들을 위하여 서울 불교텔레비전(BTN) 무상사, 서울 구룡사, 일산 여래사 법문 등을 통하여 수행과 포교에 진력하고 계십니다.
3. 설법집 『오직 한 생각』은 종범 큰스님이 통도사 서축암에서 2011년 10월부터 매월 한 차례씩 총 25회에 걸쳐 대중들에게 설한 법문을 엮은 것으로 일상생활의 수행은 물론 부처님의 심오한 말씀들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4. 『오직 한 생각』은 모두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 ‘청정도량 겁외춘추’에는 △청정도량 겁외춘추 △나의 옛주인 △일상수행 일용입도 △참회(懺悔)와 삼매(三昧) △나의 알맹이[眞實相]가, 2장 ‘인생과 한 물건’에는 △인생과 한 물건 △사회생활과 수행생활 △불신(佛身)과 불성(佛性) △인생과 수행 △마음공부가, 3장 ‘일 없는 사람[無事凡夫]’에는 △일 없는 사람[無事凡夫] △도맹(道盲)으로부터 해탈 △생멸신(生滅身)과 무형신(無形身) △도량불(道場佛)과 자성청정심 △행복과 마음공부에 대한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또 제4장 ‘속생(俗生)과 도생(道生)’에는 △속생(俗生)과 도생(道生) △인생 오솔길 △신심(信心) △부처님! 부처님! △생로병사 생사해탈이, 제5장 ‘심행(心行)과 심성(心性)’에는 △심행(心行)과 심성(心性) △의식과 불성 △내가 나를 보는 이야기 △중생의 영각성(靈覺性) △마음과 인생이 수록됐습니다.
5. 종범 큰스님의 설법집 발간 작업을 진행한 상좌 선지 스님은 “지난 2011년 사제(師弟) 우진 스님이 영축총림 통도사 서축암 감원(監院)으로 있으면서 은법사(恩法師)이시자 이 시대의 선지식(善知識)이신 종범 큰스님을 모시고 매월 정기법회를 봉행하기 시작했다. 서축암 정기법회는 이후 25회에 걸쳐 진행되었고, 이 설법집은 여기에서 설하신 큰스님의 감로법문을 엮은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선지 스님은 “이 소중한 큰스님의 법음(法音)이 모든 분들이 부처님과 가까워지고 조사(祖師)스님들과 친해져서 귀의처(歸依處)가 되고 해탈처(解脫處)가 되는 법연(法緣)이 되기를 발원(發願)한다.”고 강조했습니다.
6. 서축암 감원 우진 스님은 “종범 큰스님은 법(法)과 온전히 하나 되시고, 중생의 근기에 따라 설법해 주시는, 모든 출가자와 재가자들이 공경하는 분이다. 이런 스승을 모시고 있는 것은 큰 복(福)이다.”며 “갈수록 종교가 세속화되고 상업화되는 이 시점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순수하고 온전하게 전해주시는 종범 큰스님의 이번 설법집을 통해 불교의 진면목을 확인하길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7. 선지 스님을 비롯한 제자스님들은 향후에도 종범 큰스님의 감로수 법문을 설법집으로 묶어 지속적으로 대중들에게 전할 계획입니다.
[책 속으로 추가]
도는 구해서 이루는 게 아니고, 그대로 만족하는 것이 도입니다. 구하는 마음이 분별입니다. 구하는 마음 때문에 자기 집을 떠나서 객지를 떠돌며 고생 고생합니다. 순간순간에 만족하는 것이 삶인데, 우리는 구하다 죽고 만족할 줄 모릅니다. 만족하는 것이 삶입니다.
기차를 타고 가는데 옆에 앉은 할머니가 “삶은 계란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삶은 계란인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계란이든 김치든 삶은 만족하는 것입니다. 하루를 살아도 몇 만 년보다 짧지 않고, 몇 만 년을 살아도 하루보다 길지 않습니다. 이것이 무장애일법계입니다. 그런 세계를 믿고 그런 세계로 가기 위해서 분별심을 내려놓고 불성을 관찰하는 것이 불자가 가야 할 길입니다.
-126~127쪽
생각이 일어나든 밖의 것이 보이든, 가고 오고 앉고 서고, 보고 듣고 움직이고 꿈꾸고 하는 이 전체가 하나의 마음이니, ‘이것이 무엇인가?’ 하십시오. 앉아 있는 놈이나 듣는 놈이나 가는 놈이나 오는 놈이나 각자 다른 게 아니라 하나입니다. 잠자는 놈 따로 있고 노는 놈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누워 자기도 하고 일하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것이 이것 하나입니다. 항상 ‘이것이 무엇인가?’ 하십시오.
-194쪽
마음공부 하면서 좋은 일도 많이 해야 합니다. 좋은 일을 많이 해야 인도에 환생하고 천도에 상생할 수 있습니다. 이 좋은 몸을 가지고 나쁜 짓을 하면 인간과 천상 길을 스스로 막는 것입니다. 인간 몸으로 이 생사를 멈추게 하고 열반을 얻고 적멸락을 얻습니다. 보리과를 증득해서 극락세계를 눈앞에서 체험하고, 대광명을 얻어서 어둠이 없는 세계에 자유자재하는 일체 지위 없는 참사람 요사범부가 됩니다.
-196쪽
그러면 무엇으로 깨닫느냐? 현전일념現前一念, 지금 나타난 한 생각이 전부입니다. 지금 딱 나타난 듣는 것, 보는 것, 생각나는 것 그것만 찾으면 됩니다. ‘이것이 무엇인가?’ 볼 때도 ‘이것이 무엇인가?’ 들을 때도 ‘이것이 무엇인가?’ 하면 불성佛性 광명光明이 확 퍼져 나옵니다. 그것을 고목에서 꽃이 피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그래서 꽃이 피면 사물 밖에 봄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제일 중요한 것이 현재 한 생각입니다. 이것은 하늘보다 값이 나가고, 땅보다 값이 나갑니다. 이 세상에 지금 현재 한 생각보다 가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게 반야바라밀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고, 청정불성淸淨佛性입니다. 그놈을 늘 가지고 있는데 찾지 못해서 늘 생사에 허덕입니다. 그것을 딱 돌아보는 순간에 깨침의 행복의 길이 열립니다.
-224~225쪽
인생의 오솔길은 마음을 보는 길입니다. 돈을 벌려고 하는 것도 마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을 얻으려고 하는 것도 마음이 하는 일이고, 자기 뜻을 펴는 것도 마음이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밖으로 구하기만 하지, 구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249쪽
신심信心은 믿는 마음입니다. 결정심決定心이 신심입니다. 신심이 있으면 원력願力이 생깁니다. 원력은 무엇을 하겠다는 마음입니다. 나무에 비유하면 신심은 뿌리와 같고, 원력은 줄기와 같습니다. 그리고 신심과 원력에서 여러 가지 공덕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꽃과 열매와 같습니다. 그래서 신심이 근본입니다. 신심에서 원력이 생기고, 많은 공덕의 꽃이 피고, 그 공덕의 꽃이 열매를 맺어서 모든 것을 이루게 됩니다.
-262쪽
깨달음은 다른 견해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자성이 없고 연성이라는 것을 여실하게 깨닫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인연법因緣法을 깨달았습니다. 부처님이 평생 말씀하는 것은 인연법, 그 한 단어입니다. 무슨 설법을 하든지 불교에서 말하는 것은 인연법뿐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해탈의 길을 가르치신 분입니다. 그러면 해탈의 길은 무엇이냐? 인연법 밖에 해탈의 길이 있는 게 아닙니다. 여실행如實行이 해탈이고 여실견如實見이 깨달음입니다. 여실하게 본 그대로 실행을 하면, 그것이 해탈이고 깨달음입니다. 왜냐하면 여실하게 본 그대로 여실하게 행동하니까 그 여실법如實法과 내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해탈입니다. 인연법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수행修行입니다. 수행이 해탈입니다. 본 그대로 여실하게 생활하면 그게 해탈이라는 말입니다.
-280쪽
제가 통도사에서 배운 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는 그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화합과 공경으로 마음을 쓰는 법을 배웠습니다. 화합과 공경으로 마음을 쓰면 그곳이 극락세계입니다. 화합과 공경이 깨지면 불화가 생기고 서로 무시하고 공격합니다. 그곳이 지옥입니다. 모든 것이 마음이라는 거울에 비친 모습인데, 그 모든 것을 비추는 마음은 버리고, 비추어진 그림자만 좇아가는 것이 범부의 삶입니다. 내가 하늘을 보면 하늘이라는 것이 내 마음에 비추어집니다. 그런데 내 마음에 비추어진 그림자인 하늘에 집착해서 그 마음을 비춘 자기 본래 마음을 잃어버립니다. 이것을 대경미심對境迷心이라고 합니다. 상대를 대해서 자기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늘을 보는 마음을 보라는 것이 불교에서 가르치는 가풍입니다.
-370쪽
마음에는 본래심本來心과 식별심이 있습니다. 본래심에서 무언가가 나타나면 식별을 합니다. 그런데 범부들은 그 식별되어진 내용을 따라가다 보니 항상 본래심을 잃어버립니다. 부처님이나 불교의 도인들은 그 식별되는 것을 따라가지 않고 멈춥니다. 그것을 면벽面壁이라고 합니다.
무엇을 보더라도 거기에 따라가지 않고 벽을 보듯이 합니다. 보는 데 따라가지 않으니까 보는 것 자체가 벽입니다. 바다를 보더라도 바다를 따라가지 않으니까 바다가 벽입니다. 그래서 산이나 바다나 사람이나 물건의 그 여러 가지 형상이 쉽게 자기 마음속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보는 것에 자기 생각으로 ‘좋다, 나쁘다.’ 분별을 일으켜서 그것을 밀어낸다든지 끌어당긴다든지 하지 않으니까 그냥 벽입니다. 이것이 면벽이고, 면벽가풍面壁家風입니다.
-374~3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