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감정론」은 도덕철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의 첫 번째 주저다. 스미스가 생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던 책으로 그의 묘비에는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의 저자, 여기 잠들다’라고 씌어 있다.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을 이렇게 아낀 것은 이 책이 평생 천착했던 ‘도덕철학체계’(사회과학체계)의 구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스미스의 또 다른 대표작인 「국부론」도 「도덕감정론」을 알아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도덕감정론」은 스미스라는 위대한 학자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책이다.
옮긴이는 스미스가 교수로 있던 영국 글래스고 대학교 경제학과에서 “애덤 스미스의 형이상학과 과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광수 교수(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다. 스미스가 죽기 직전 대대적으로 수정 출간한 「도덕감정론」 제6판을 완역한 정본(定本)으로 국내 번역된 어떤 판본보다 스미스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좋은 삶을 고민한 도덕철학자 애덤 스미스
많은 이가 스미스를 경제학자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스미스의 일생을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도덕철학체계를 구축하는 데 집중했는지 알 수 있다. 그 첫 성과가 삶의 전반기에 해당하는 36세에 출간한 「도덕감정론」이다. 「국부론」은 삶의 후반기인 53세에 출간했는데 이를 봐도 「국부론」은 「도덕감정론」의 연장선에서 이해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잠시 스미스의 삶을 따라가보자.
1723년 영국 스코틀랜드의 소도시 커콜디에서 태어난 스미스는 만 14세에 글래스고 대학교에 입학한 수재였다. 장학생으로 뽑혀 옥스퍼드 베일리얼 칼리지에서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게 된 그는 독학으로 그리스 및 로마의 고전과 언어학 등을 공부한 후 학업을 중단하고 스코틀랜드로 돌아왔다.
범상치 않은 수재였던 스미스는 28세에 글래스고 대학교의 논리학 강좌 교수로 임명된다. 이후 도덕철학을 강의했는데 이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1759년 「도덕감정론」을 출간했다. 출간 후 많은 호평을 받았으며 프랑스와 독일어로 번역될 정도로 대중적인 명성을 얻었다. 당시 유럽의 변방으로 새로 설립된 러시아 모스크바 대학교에서 두 학생이 이 책의 영향을 받아 글래스고 대학교로 유학 왔을 정도다.
1764년 대학교수직을 사임한 스미스는 한 귀족 자제의 그랜드투어 개인지도를 맡아 2년간 프랑스에 머문다. 이때 중농주의 경제학자들과 교류하며 국민경제의 거시적 순환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은 그는 곧 「국부론」 집필을 준비한다. 이후 10여 년간 고향과 런던에서 연구와 집필만 하다가 드디어 1776년 「국부론」을 출간한다. 이 두 번째 대작의 책값은 매우 비쌌는데도 반년 만에 초판이 동날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곧 독일어, 프랑스어 등 6개 언어로 번역되며 유럽 지식인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스미스는 도덕철학체계를 완성하기 위해 윤리학 분야의 「도덕감정론」과 경제학 분야의 「국부론」이라는 두 기둥을 세우는 일에 삶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따라서 스미스를 경제학자로만 한정지어선 안 된다. 스미스는 훨씬 넓은 의미에서 ‘좋은 삶’을 고민한 도덕철학자였다.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경제적 부가 전부는 아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좋은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많은 이가 좋은 삶을 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물질적인 풍요를 꼽는다. 스미스도 「국부론」에서 사람들의 좋은 삶을 위해 경제적 풍요가 어떻게 창출되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문명의 진보를 이끌어왔는지 면밀하게 밝힌다.
하지만 물질적인 풍요가 전부는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삶을 위해 중용을 실천하라고 했고 공자는 인의를 실천하라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경제 활동을 혼자 할 순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개인이 사회 공동체 내에서 서로 협력해 경제적 활동을 한다. 당연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공감, 도덕, 협력이 빛을 발하면 사회공동체는 번영할 것이고 반대로 불신, 갈등, 폭력이 만연하면 사회공동체는 쇠락할 것이다. 이 간단한 원리는 법과 정치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결국 좋은 삶이란 ‘경제’ ‘사회 공동체’ ‘법과 정치’가 조화롭게 상호작용할 때 실현되는 것이다. 일례로 1993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노스(Douglass North)는 다양성의 가치를 수용하며 정의와 법이 바로 선 사회일수록 경제가 더 빠르게 성장한다고 주장했다.
도덕철학체계의 핵심을 이룬 동감의 원리
노스 외에도 사상사의 많은 거두가 ‘경제,’ ‘사회 공동체,’ ‘법과 정치’의 문제에 매달렸다. 특히 서양사상사에서 이러한 논의는 주로 도덕철학(moral philosophy)의 틀 속에서 논의되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학자가 바로 스미스다.
스미스는 세계를 두 가지 질서로 나눠본다. 하나는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경험적 세계이며 다른 하나는 추론으로 알 수 있는 심층적 세계인데 이 두 세계는 복합 다층적이고 중첩적이며 상호작용한다. 이 중 심층적 세계야말로 사물 특유의 본질 또는 실재의 세계인데, 실재의 세계에서 작용하는 힘들이 경험적 세계를 움직인다.
“우리의 도덕적 능력이 기초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라고 상정되든 간에, 즉 그것들이 이성의 일정한 변형에 기초하든, 도덕감각이라고 불리는 본래적 본능에 기초하든, 아니면 인성의 다른 어떤 원리에 기초하든 간에, 그것들이 현세에서의 우리의 행동을 안내하고 있다는 점은 믿어 의심될 수 없다.” _ 378쪽
이러한 방법론을 따라 스미스는 자신만의 도덕철학체계를 세운다. 이 체계는 ‘윤리학’ ‘법학’ ‘경제학’으로 구성되는데 각각 ‘사회(공동체)의 세계’ ‘법과 통치의 세계’ ‘경제의 세계’에 대응하며 이 세계들의 배후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도덕감정론」은 이 중 윤리학에 해당하는 저서로서-‘사회(공동체)의 세계’뿐만 아니라 ‘법과 통치의 세계’ ‘경제의 세계’에서도-우리가 일상적으로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내리는 도덕 판단의 배후 메커니즘을 추적한다. 따라서 「도덕감정론」은 도덕철학체계 전반을 다룬다고 해도 무방하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동감(sympathy)의 원리’를 강조한다. 타인에게 동감을 얻으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자기 통제, 신중, 적절한 박애, 자혜 등 사회를 기품 있게 하는 모든 덕목을 낳는다. 이러한 ‘사회(공동체)의 세계’는 ‘법과 통치의 세계’에서 타인의 권리와 사회질서를 존중하도록 하는 이념의 토대를 쌓는다. 또한 ‘경제의 세계’에서는 지나친 이기심과 탐욕보다 사회적 준거를 따르는 경제활동을 지향하도록 한다. 즉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으로 설명하는 ‘사회(공동체)의 세계’와 ‘동감의 원리’는 그의 도덕철학체계에서 핵심을 이룬다.
진정한 동감의 실현은 단순한 연민을 넘어선다
스미스에게 동감은 사회적인 본능으로 작용하는 ‘보편적인 도덕감정’이다. 연민이나 동정, 단순한 감정이입과는 전혀 다르다. 이타심도 아니다. 스미스는 이기심에도 동감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간단한 사례로 가족까지 내팽개치고 남을 돕는 사람의 행위에 동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일지라도 적정한 범위 안에서만 한다면 동감하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의 예시로 자주 언급되는 빵집 주인이 도덕적인 이유다.
물론 동감은 기본적으로 감성적인 체계에 속하며 다른 사람의 희로애락을 함께 느끼는 능력이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속담은 스미스식 동감에도 적용된다. 다만 중요한 건 스미스가 동감의 기준으로 ‘적정성’(propriety)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예를 봐도 알 수 있다. 아무리 이타적인 행위라도 적정하지 않다면 동감할 수 없고 이는 그 행위가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적정성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공정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를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인류가 축적한 경험을 통해 공정한 관찰자를 마음속에 상정할 수 있다. 이 상상 속의 관찰자가 어떤 행동에 동감한다면 그 행동은 겉으로 보기에 이기적이든 이타적이든 곧 도덕성을 획득했다고 볼 수 있다. 공정한 관찰자가 행동의 도덕성을 적정성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공감하며 ‘승인’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공정하고 불편부당한 관찰자가 우리 자신의 행위를 검토하고자 하는 방식대로 자신의 행위를 검토하려고 노력한다. 만일 우리 스스로를 공정한 관찰자의 상황에 위치하고 우리의 행위에 영향을 준 모든 열정과 동기에 완전히 공감한다면, 우리는 이 가상의 공정한 재판관의 승인에 동감함으로써 우리의 행위를 승인하게 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이 공정한 재판관의 부인에 공감해 우리의 행위를 비난하게 된다.” _ 284쪽
스미스는 동감과 공정한 관찰자가 인류 본래의 도덕감정으로서 다른 본성이나 열정을 통제하고 억제할 수 있다고 보았다. 무엇보다 이기심과 탐욕이 사회 공동체의 조화와 질서를 깨지 못하게 조절함으로써 좀 더 올바르고 적정하며 정의로운 발전을 가능케 한다. 바로 이것이 “신이 우리의 내면에 설정해놓은 대리인들이 공표하는 신의 명령과 신법으로 간주”해야 할 동감과 공정한 관찰자의 진정한 의미다.
인지과학에서 행복경제학까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스미스 도덕철학
오늘날에도 많은 학자가 「도덕감정론」과 동감 및 공정한 관찰자 개념을 연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199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현대 경제철학의 거두 센(Amartya Sen)이 있다. 그는 ‘정의론’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불평등과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데 꾸준히 정진해온 학자다. 센은 복지 또는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선 단순히 부와 소득을 늘리는 차원이 아니라 그 외 다양한 가치(안전, 자유, 교육, 보건, 사회적 안전망 등)를 향유하거나 구현할 수 있는 개인의 기본적 능력을 고양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면서 이런 문제 해결엔 자원이나 평등 같이 획일적이고 특정한 하나의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기존의 정의론보다 스미스의 공정한 관찰자 개념이 더 유용하다고 지적한다. 보편적으로 존재하면서도 각 개인의 특성과 차이를 반영한 공정한 관찰자는 복잡한 현실 속의 다양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등장한 행복경제학이나 시민경제론 역시 「도덕감정론」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행복경제학은 20세기 후반 들어 부는 최고도로 증가하는데도 행복은 증가하지 않는 문제가 대두하면서 부상했다. 스미스는 낮은 욕구단계에서는 물질적 풍요로움이 행복에 불가피하게 중요하지만 이것이 가장 고차원적인 행복을 줄 순 없다고 말한다. 대신 동감이야말로 다양한 욕구와 열정을 조율하며 상호배려와 호혜 및 선행의 가치를 퍼뜨려 사회구성원들에게 더 큰 행복을 준다고 보았다. 또한 시민경제론에서는 관계 속의 행복이나 상호성을 인간의 주요 욕구와 동기로 본다. 스미스에 따르면, 동감에 따른 상호성의 본능이 자기이해추구 본능, 조건부적 헌신과 참여 동기 등과 함께 작용하며 사회적 소통, 협력과 선행을 가져올 때 사회는 더불어 잘살게 되고 행복감을 더 크게 느낀다(이러한 내용은 최근 세계 학계에서 진행 중인 종(種) 전체의 생존과 관련된 이기심-이타성 및 다차원적 선택 논쟁에도 해당하는 흥미로운 주제다).
최신 융합학문인 인지과학도 스미스의 연구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신경생리학적 관점에서 뇌의 작용을 다루는 인지과학의 연구들은 동감을 중심으로 한 도덕감정의 메커니즘에 호의적 평가를 내렸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등을 통해 살펴보니 뇌의 (인지체계는 물론) 감정체계가 도덕 판단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는 세계 인문학계의 ‘감정으로의 전회’(emotional turn)에 큰 바람을 몰고 왔다.
이처럼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은 살아 있는 고전으로 현대의 많은 이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사회적 불평등이 심해지고 불안해진 미래 때문에 ‘헬조선’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그 어느 때보다 상호성의 행동과 정의가 필요한 우리 사회에서 「도덕감정론」이 적지 않은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본다.